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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 반복되는 역사 끝내야

공자는 “덕(德)으로 원한을 갚는다면 어떻겠습니까”하는 물음에, “그렇다면 덕은 무엇으로 갚을까? 덕으로 덕을 갚고, 올바름으로 원한을 갚는 게 옳지!”라고 대답하였다. 원한에 대하여 그것을 원한으로 갚는 법, 올바름으로 갚는 법, 덕으로 갚는 세 방법이 있는데, 덕으로 원한을 갚는 방법은 바로 노자적인 방법이겠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도 통하는 이야기인데, 종교적으로는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지극히 어려운 이상론에 가깝다. 

그 이상론을 뺀다면 공자가 말한 ‘올바름으로 원한을 갚는’ 방법이 가장 중도적이고 현실적인 올바른 길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원한으로 원한을 갚는 방법은 결국 원한의 증폭을 가져오게 마련이고, 끊임없는 보복의 순환이 예상되는 가장 낮은 방법이 될 것이다. 물론 근원적으로 말하자면 원한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지만, 인간의 세상에 갈등과 투쟁이 있는 한 원한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에, 그것이 증폭되고 순환되는 악순환을 막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는, 특히 최근세사에는 깊은 한들이 형성되는 근본적이고 비극적인 갈등구조가 너무도 많이, 또 깊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 가장 깊은 뿌리는 민족 분단과 민족상잔의 전쟁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남과 북이 전혀 상대를 용인할 수 없는 극단적인 양극화 상황에서, 상대방을 완전히 없애버려야만 한다는 극단적인 사고 형태를 온 민족의 심성구조에 심어 놓았다. 그 때문에 자신과 다른 존재를 악(惡)으로 규정하고, 서로의 다툼이 공동의 선(善)을 지향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악의와 한을 생산하는 구조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원한들의 증폭이 계속 일어나고, 좌와 우의 갈등이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 비극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어온 것이다.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계속 치달려가는 역사, 이 상황이 계속되면 또 얼마나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 되고, 또 그것이 얼마나 원한을 증폭시킬까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의 일만 보더라고 이런 우려가 전혀 쓸데없는 기우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것이 너무도 표면에 나서고 모든 것을 앞서는 것으로 드러나면 ‘한풀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진보적인 정권에서 과거의 잘못을 척결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향해야 할 큰 방향성을 흐릴 정도로 ‘한풀이’ 색깔을 띠어서는 안 되는 것 또한 분명하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지만 몇몇 진보적인 분들로부터도 그런 우려를 들었을 때, 무언가 또다시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 방식이 될 것 같아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보수 진영의 극단적인 반응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광주’라는 또 다른 ‘한’의 근원에 대하여 정말 선을 넘는 막말을 하는 보수의 행태는 그 자체로 소름끼치는 광기의 행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광기를 불러들인 데는 이 정권의 ‘한풀이’적인 행태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양쪽 진영으로부터 돌팔매를 맞을 것이라는 것 또한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돌팔매를 던지는 심성 밑바닥에 앞에서 말한 왜곡된 심성구조가 있다는 것 또한 바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툼이야 그 자체로 나쁜 것일 수 없다. 갈등과 다툼이야말로 발전의 원동력이다. 그렇기에 그것이 발전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퇴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 우리 정치에 ‘근본적인 같음을 바탕으로 다름을 지향한다는’(‘주역’) 대승적인 인식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특히 올해는 남북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대하고도 중대한 원년이 될 수 있으며, 또 되도록 만들어야 할 때이다. 이런 때에 우리가 함께 지향해야 할 커다란 목표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근본적인 같음’을 찾는 의식을 바탕으로 원한이 증폭되는 역사가 계속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tysung@hanmail.net

 

[1484 / 2019년 4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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