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집과 세속의 인연을 떠나 불가의 문에 들어서는 것을 출가라고 한다. 하지만 결코 단순히 집을 떠나 절에 들어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종교적 의미를 갖는 출가는 명예, 권력, 그리고 욕망과 번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때 오롯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출가에 3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가족과의 생활에서 결별하는 육친출가(肉親出家), 일체의 육체적 욕망으로부터 떠남을 의미하는 오온출가(五蘊出家), 번뇌와 업보·무명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법계출가(法界出家)가 그것이다. 결국, 겉으로 아무리 삭발염의하고 수행자의 모습을 갖추었어도 속으로 세속적 번뇌와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면 출가자라고 할 수 없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하여 초발심을 잊지 않기 위해 수많은 출가자들이 거듭거듭 자신을 돌아보며 출가의지를 재점검 하는 것이다.
‘버려서 얻은 단 하나의 자유’는 속박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난 우리 시대 스님 23인의 출가기다.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불교 언론에 몸담기도 했던 유응오 작가가 모든 존재가 덧없이 흘러가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의 자유를 찾아 나선 스님들의 출가 사연과 수행담을 전하면서 크게 버림으로써 크게 얻은 자유의 길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저자는 “법정 스님이 ‘속박의 굴레에서 떠나고, 무뎌진 타성의 늪에서 떠나고, 집착하는 마음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출가’라 말하고, 오현 스님이 ‘출가자는 그가 진리라고 믿는 세계로부터도 떠나야 한다. 독단과 편견은 자칫하면 자신과 이웃을 오류와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다. 그러므로 출가자가 독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법계출가’라고 했는데, 이러한 출가 정신을 지녀야 하는 것이 비단 출가자만은 아닐 것”이라며 스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재가자들 역시 법계출가의 정신을 간직하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엮었다.
저자는 선시(禪詩)를 통해 깨달음의 경지를 전한 오현 스님, 탱화로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만봉 스님, 범음과 범패로 불교음악의 맥을 이은 동희 스님, 지리산 공비소탕 작전에 참가했다가 인생의 고(苦)를 체감한 뒤 출가한 월서 스님, 남로당 당수 박헌영의 아들로 6·25전쟁 내내 빨치산을 따라다니다 불법에 귀의한 원경 스님, 6남매가 모두 출가한 본각 스님, 어머니를 따라 출가한 탁연 스님 등 23명 스님들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어떻게 버리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자유를 얻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스님들을 통해 전하는 그 스승들의 이야기에는 불교의 진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바른 수행은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비록 태어남과 죽음이 있지만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생사가 따로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한 나를 찾는다면 1시간 또는 하루, 아니면 한 달 후에 죽는다 해도 문제 될 게 없다. 바른 수행을 한다면 병들거나 아픔에 시달린다 해도, 죽음을 맞이한다 해도 문제 될 게 없다.’
숭산 스님이 제자 대봉 스님에게 일러준 이같은 가르침을 비롯해 동선 스님의 스승 도명 스님, 동희 스님의 스승 송암 스님, 정휴 스님의 은사 월산 스님 등 선지식들이 제자들에게 일러준 이야기는 또 다른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곡절 없는 인생사가 없듯, 스님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스님들은 그 삶에서 통찰의 지혜와 자유를 얻었다. “이 책에 실린 스님들이 수행자로서 가장 모범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저자 말처럼, 책 속 스님들이 가장 모범적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엮으면서 저자가 전체를 집약해 전한 말은 삶을 곱씹게 한다.
“바깥의 꽃잎이 떨어질 무렵이면 새로운 꽃잎이 안에서 피어납니다. 떨쳐버릴 수 있어야 새로이 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법계출가의 정신은 채움이 아니라 버림에 목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완미(完美)의 찰나 허공에 흩어지는 티베트의 모래 만다라처럼, 인생의 모든 가치는 소멸하고자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만5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484 / 2019년 4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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