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500년 흥망성쇠 역사 속으로
1. 2500년 흥망성쇠 역사 속으로
  • 김현태 기자
  • 승인 2019.04.08 13:34
  • 호수 148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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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에서 보살사상 탄생까지…대승불교 꽃 피운 실크로드의 심장

실크로드 중심 중앙아시아 심장
동서의 문화 교차하고 융합한 곳
문명·상업 발달하며 세계 각축장

알렉산드로스왕 헬레니즘 전파
후손들 그리스계 박트리아 세워
인도 아쇼카대왕 포교단 파견

월지족 쿠샨왕국의 카니슈카왕
불교 받아들여 간다라미술 탄생
실크로드 따라 한반도까지 전달

8세기 이후 이슬람 문화권 편입
14세기에는 티무르 대제국 건립 
1991년 독립하면서 현재 모습

​​​​​​​법현·현장·혜초 스님 걸었던 길
아스팔트 깔리고 표지판 세워져
선지식 흔적 좇아 그 길에 서다
다양한 문화가 교차했던 우즈베키스탄 사막 위 실크로드에는 2500년간 이뤄진 흥망성쇠의 역사가 차곡차곡 덧씌워져 있다. 황량한 사막을 따라 법현, 현장, 혜초 스님이 법을 찾아, 법을 전하러 걸었던 이 길에 아스팔트가 깔리고 표지판이 세워졌다.

아득히 먼 옛날, 길이 열렸다. 도로도 이정표도 없는 길이었지만 동서의 문화가 만나 교차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표와 바람을 좇아 이 길에 올랐다. 이 길 주변에서 동서고금의 중요 문명이 발아했고 이 길을 타고 개화했다. 또한 이 길에서 세계사적 사변들이 전개됐고 수많은 민족과 국가의 흥망성쇠가 반복됐다. 고대 오리엔트문명에서 그리스·로마제국, 페르시아제국에서 이슬람제국, 중국의 선진시대에서 몽골제국, 인도의 마우리아왕조에서 티무르제국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에 기록된 주요한 일들이 모두 이 길에서 전개됐다. 인도에서 발현한 불교도 이 길을 따라 중국을 거쳐 대륙의 끝자락 한반도까지 전해졌다.

‘실크로드’로 이름 붙여진 이 길의 심장, 중앙아시아의 중심에 우즈베키스탄이 있다. 중국의 서쪽끝을 벗어나 터키를 거쳐 지중해로 이어지는 길.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던 고대의 상인들을 따라 전해진 두 대륙의 문화는 이 땅에서 서로를 배우고 닮아갔다. 중국 천산산맥서 발원해 장장 1437km를 흘러가는 아무다리야강과 2136km를 내달려 비옥한 강변을 만들어온 시르다리야강 사이에 위치한 우즈베키스탄은 과거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과 가축을 사육하는 목축민, 그리고 오아시스 주변에 농사를 짓는 정착민들의 땅이었다.

비옥하지만 건조한 기후 탓에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도시가 생겨났고, 동서문명의 십자로라는 지리적 이점은 문화와 문명 그리고 상업의 발전을 가져왔다. 한편 이러한 지리적 이점은 끊임없는 외세 침략의 원인이 됐다. 우즈베키스탄 수탈의 역사는 기원전 6세기 이란의 아케메네스왕조의 침입에서 시작됐다. 아케메네스왕조의 일부였던 우즈베키스탄은 200년 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군대에게 정복됐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점령은 이곳에 그리스 문화에 동양의 문화가 더해져 새롭게 탄생한 헬레니즘이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됐다. 알렉산드로스 사망 후 이땅의 지배자는 셀레우코스왕조, 다시 박트리아왕국으로 바뀌어갔다. 

그리스계 왕국인 박트리아는 한때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인도까지 진출하는 등 대제국으로서 세력을 떨쳤고, 오랫동안 동방 헬리니즘의 기수로 역할을 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시행한 광범위한 계획정책을 계승한 박트리아의 왕들은 정착지마다 거대한 성곽으로 둘러싼 신도시를 건립했다. 우즈베키스탄의 최남단 테르메즈에는 당시 세워진 ‘캄피르테파’가 남아 있어 과거 알렉산드로스 시대 계획도시의 모습을 유추하게 한다.

박트리아는 특히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기원전 3세기 인도에 첫 통일제국을 세운 아쇼카대왕은 불교를 국교를 삼았고 스리랑카, 미얀마를 비롯해 마케도니아, 그리스, 북아프리카 등 유라시아 전 지역에 불교포교단을 파견했다. 이 같은 연유로 박트리아 역시 불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고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 밀린다왕문경)’을 통해 그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문답형식으로 구성된 ‘나선비구경’은 밀린다왕과 나가세나 비구의 대담을 통해 윤회와 무아에 관한 가르침을 전한다. 여기서 밀린다는 기원전 2세기 박트리아를 통치했던 실존 인물 메난드로스왕으로 알려져 있다. 합리성과 논리성을 추구하는 그리스 철학으로 무장한 밀린다왕은 당시 불교에 큰 관심을 가졌고, 인도불교를 대표하는 나가세나 비구와의 토론 끝에 결국 불교에 귀의했다.

박트리아는 북방 유목민족의 잦은 침입으로 점차 쇠락해갔다. 이런 가운데 기원전 2세기 중국 서북지구 간쑤성(甘肅省)에 살던 월지족이 흉노에 쫓겨 중앙아시아 페르가나 분지에 정착한다. 결과적으로 박트리아는 월지족의 급습으로 기원전 145년경 멸망한다. 월지의 또 다른 명칭은 ‘토하르(Tohar)’로 원래 우즈베키스탄의 원주민 부족이었다. 월지족은 초창기 실크로드의 중심인 사마르칸트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채 100년도 지나지 않아 부족은 쿠샨, 수안미, 히시, 후미, 후안미 등 다섯 집단으로 분리됐다. 이 가운데 쿠샨이 나머지 부족들을 통합하며 점차 강력한 왕국으로 발전했다. 

카다피즈에 의해 문을 연 쿠샨왕국은 3대 왕인 카니슈카 때 전성기를 맞았다. 카니슈카왕은 오늘날 인도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까지 영토를 사방으로 확장하며 당시 로마, 파르티아, 한나라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다. 쿠샨이 번영하던 시기 공동경작과 경제, 무역, 금융이 발전했고 사상적·예술적 문화가 정착지를 중심으로 번성했다. 특히 카니슈카왕은 아쇼카대왕에 비견될 만큼 불교를 적극 수용해 후원했다. 그는 수많은 탑을 건립하고 화폐(동전)에 부처님의 모습을 새겨넣는 등 불교 보호와 전파에 힘썼다. 또 파르슈와 존자의 건의에 따라 제4차 결집을 단행해 ‘아비달마대비바사론’의 집대성을 도왔다. 쿠샨왕국의 중심지였던 테르메즈에는 당시 건립된 카라테파, 파야즈테파, 달베르진테파, 주르말라 대탑 등 여러 불교 사원터가 남아있다.
 

세계사의 각축장이었던 우즈베키스탄은 다양한 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알렉산드로스 시대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테르메즈의 ‘캄피르테파’.
언덕 전체가 불교 사원이며 현재도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불교유적지 ‘카라테파’.
구약성서에 나오는 욥의 샘이 위치한 부하라의 ‘차슈마 아유브’.
이슬람 이전 부하라의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 불교, 유대교의 평화와 공존의 의미를 담아 네 개의 미나레트로 구성된 ‘초르 미노르’.

쿠샨왕국을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박트리아의 헬레니즘에 불교를 더해 탄생한 간다라미술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간다라 이전 불교는 부처님을 대신해 연꽃이나 보리수나무, 수레바퀴 등의 상징을 사용했으나, 쿠샨왕조에 이르러 사람 모습의 불상이 조각됐다. 이 같은 배경에는 당시 토착종교인 조로아스터교가 창조신 아후라마즈다를 조각해 숭배했던 것에 기인한다. 새로운 종교인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예경의 대상이 필요했고, 이에 부처님의 모습을 조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함께 조로아스터교의 빛의 신은 영원한 광명의 ‘아미타불’, 페르시아 물의 여신 아나히타는 ‘관세음보살’, 태양신 미트라는 ‘대세지보살’의 모티브가 되어 보살사상이 출연한다.

부파불교 시대를 거치며 철학적 깊이를 더한 불교는 이곳에서 다양한 종교·문화와 만나며 보살사상과 불상 조성 등 대승불교의 특징을 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쿠샨왕국을 통해 꽃을 피운 대승불교는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을 거쳐 한반도, 그리고 섬나라 일본에까지 전해졌다. 

4세기 말 쿠샨왕국의 부흥기는 끝나고 만다. 쿠샨왕조는 사산왕조의 페르시아에게 정복됐으며 이후 5세기 에프탈, 6세기 투르크, 8세기 아랍의 아바스왕조에 의해 차례로 지배를 받으면서 이슬람 문화가 곳곳에 스며든다. 이를 계기로 우즈베키스탄 주요 도시에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와 신학교 마드라사, 첨탑 미나레트, 영묘 등 새로운 양식의 종교 건축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부하라는 수니파 이슬람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219년 몽골제국의 징기스칸이 이 지역을 장악하면서 다시 한 번 큰 변화를 겪어야 했다. 이후 차가타이 칸국의 영토로 편입됐지만 14세기 말 투르크계 무슬림 아무르 티무르가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우즈베키스탄은 다시 무슬림의 나라가 된다.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은 16세기 유목 우즈벡 민족이 대거 이주해 터를 잡으면서 비롯됐다. 이마저도 19세기 러시아가 침탈하고, 러시아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70여년간 소련의 공화국으로 존재했다.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소련의 붕괴를 계기로 독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양한 문화가 교차했던 우즈베키스탄 사막 위 실크로드에는 2500년간 이뤄진 흥망성쇠의 역사가 차곡차곡 덧씌워져 있다. 도로도 이정표도 없었던 이 길엔 아스팔트가 깔리고 표지판이 세워졌다. 모습은 변했지만 무역상인들의 고향 타슈켄트, 티무르의 푸른 도시 사마르칸트, 이슬람 성지 부하라, 쿠샨왕조의 중심 테르메즈로 이어진 이 길은 동진의 법현, 당나라의 현장, 신라의 혜초 스님이 법을 향해 그리고 법을 위해  걸었던 그 길이다. 그리고 오늘 선지식이 지나간 그 흔적을 좇아 역사 속 흐려진 불교의 기록을 더듬으며 그 길에 오른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484 / 2019년 4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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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자 2019-04-10 14:35:04
우즈베키스탄 불교...기대됩니다. 연재 잘 찾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