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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삼사화합과 촉의 문제 ②

촉의 실재 여부따라 인식구조 견해 달라져

삼사화합 결과로서 촉은
다양한 심리작용의 계기
단순 명칭에 불과한 촉은
객관 실재로서 존재 안해 

‘구사론’에서 삼사화합과 촉의 문제는 인식의 구조와 수행론적인 맥락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사실 이는 마음의 구조나 인식의 생기과정에서 심리작용 등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예컨대 일상적으로 인식의 활동이나 심리적인 문제를 객관적으로 관조하고 성찰할 때, 삼사와 촉의 문제는 수행론적인 맥락에서 심도 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때 관건은 삼사와 촉의 긴밀한 관계와 그 시간성의 문제가 중요하다. 즉 인식의 구조상, 촉 이전의 인식은 언어가 개입되기 전의 ‘제1차적 인식’으로, 촉 이후는 언어가 개입된 ‘제2차적 인식’으로 이해된다.

먼저 유부와 세친의 견해 차이를 정리해 보면, 유부는 인식의 생기에 관여하지 않는 삼사를 인정한다. 즉 유부는 근․경․식의 삼사는 동시에 존재하고, 현 찰나에 삼사가 인식의 생기에 관여할 때 비로소 다음 찰나에 삼사화합의 결과로서 촉이 생긴다는 것이다. 반면에 세친은 인식의 생기에 관여하지 않는 삼사는 없는 것과 같다고 하며, 식이라고 할 때는 이미 근과 경에 연하여 생겨난 식을 말하는 것으로 이때 삼사가 화합한 자체를 촉이라 부른다. 요컨대 세친은 전 찰나의 근과 경에 연하여 현 찰나에 식이 생기는 것이고, 식이 생김과 동시에 촉이 있다는 것이다. 이때 촉은 명칭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하여 ‘구사론’에서 유부와 세친은 촉(觸)과 수(受)·상(想)·사(思)의 관계를 동시생기(俱起)로 볼 것인가? 아니면 차제생기(繼起)로 볼 것인가? 라는 점에서 서로 이견을 보인다. 예컨대 유부와 세친 간의 다음과 같은 대론은 ‘saha’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라는 문제에 기인한다. “유부: 만약 촉 이후에 수가 생기는 것이라면, ‘계경’의 ‘눈과 색을 연하여 안식이 생기고 삼사가 화합하여 촉과 함께 수·상·사가 생기한다’는 경설을 [당신은] 어떻게 해석하는 것인가? 세친: 경은 수·상·사의 동시생기(俱起)만을 말할 뿐이지, 촉과 수·상·사의 동시생기(俱起)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 ‘함께(saha)’라는 말은 ‘동시성’과 ‘계기성’을 지시한다. [예를 들면] 경은 ‘인자함과 함께 행하여 염각지(念覺支)를 닦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다의성(多義性)을 가진 말)은 [촉과 수·상·사의 동시생기(俱起)를 나타내는] 근거가 아니다.”고 말한다.

요컨대 유부는 경설의 ‘동시생기(俱生, sahajātā)’라는 말에서 ‘saha’라는 말을 동시성으로 파악하여 촉과 수·상·사의 동시생기를 주장한다. 반면에 세친은 ‘saha’라는 말을 계기로 보아 촉과 수·상·사의 차제생기를 주장한다. 이러한 해석방식의 차이만으로는 구기와 계기를 주장하는 유부와 세친의 근본적인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한편 세친은 삼사화합이 되지 않는 식(識)을 인정하지 않으며, 삼사화합을 촉이 아닌 다른 것으로 부를 수 있다면 촉과 수·상·사의 동시생기(俱起)를 인정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삼사화합과 별개로 촉을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유부가 삼사화합이 일어나지 않는 삼사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촉이 없는 식의 생기를 말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유부가 말하는 촉은 세친이 지적하듯이 삼사화합을 지칭하는 단순한 명칭은 아니라, 삼사가 인과관계에 포함된 것이 촉이라는 점에서 수․상․사 등의 다양한 심리현상들이 생겨나게 하는 계기를 만드는 심리작용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결국 유부와 세친의 삼사화합과 촉의 문제에 대한 입장은 인식의 구조상 서로 차이를 보인다. 즉 삼사와 촉에 대한 유부의 견해는 제1찰나에 안근-색경-안식이 있고, 제2찰나에 촉.수․상․사 등이 동시에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때 유부는 수행론적인 맥락에서는 촉이 일어나지 않는 제1찰나 상황만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세친의 견해는 제1찰나에 안근-색경, 제2찰나에 안식-촉, 제3찰나에 수․상․사가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때 안식이 생기할 경우 반드시 촉이 함께 일어나는 점에서 유부와 다른 입장을 표방한다.  

김재권 능인대학원대학교교수 marineco43@hanmail.net

 

[1484 / 2019년 4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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