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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30년 여행 끝내고 돌아오는 봉은사 일주문

기자명 이병두

성보, 제자리 찾는 계기 되기를

1880년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
무관심 속에 이곳저곳 떠돌아
부끄러운 역사 성찰의 기회로

1972년 봉은사 일주문.
1972년 봉은사 일주문.

지난 3월28일, 참석 대중이 많은 거창한 행사는 아니었지만 조계종 역사에 의미 있는 행사가 있었다. ‘봉은사 일주문 환지본처를 위한 협약’ 체결식. 일주문이 본래 있었던 서울 강남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과 10여 년 가까이 이 일주문을 잘 지켜준 양주 오봉산 석굴암 주지 도일 스님이 총무원 문화부장 현법 스님과 함께 활짝 웃으며 “아무 조건 없이 일주문을 봉은사로 환지본처(還之本處)한다”는 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조선 중후기에 꺼져가는 한국불교의 불씨를 살려냈던 봉은사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에 뒤이은 혼란기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외부 충격과 요인에 끌려들어가 엄청난 변화를 강제 당하였다. 조선시대 수십 채에 이르던 전각은 거의 사라지고, 승과(僧科)를 시행하던 승과평(僧科坪)의 드넓은 땅은 1970년대 초반 공익 개발을 내세운 정부의 압력을 받아 헐값에 빼앗기고 말았다.

이 어려운 상황을 힘들게 헤쳐 나가며 적응하는 과정에서 본래 자리를 떠난 성보도 많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1880년대에 처음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하는 일주문으로, 1986년 불사를 추진하는 소임자들의 무관심 또는 무지로 봉은사를 떠나 경기도 양평 사나사를 거쳐 2011년에는 다시 양주시 오봉산 석굴암으로 이사를 다니는 불편을 겪었다. 이 불이문에도 생명이 있을 터인데 자신의 뜻과 아무 관계없이 이사를 다니는 어려움을 겪게 했던 것이다.

최근 봉은사가 중창불사를 추진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현양(顯揚)하는 사업을 펼치는 동시에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반성‧성찰하며 현재 일주문이 옮겨져 있는 석굴암의 협조를 부탁하였고 석굴암에서도 흔쾌히 반환에 동의하여 정식 합의에 이른 것이다.

이 사진은 1972년에 찍은 봉은사 일주문이다. 왼쪽에 보이는 시멘트 벽돌 건물의 쓰임새가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하다. 채 5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오늘날의 봉은사와 비교하면 “이곳이 정말 봉은사였다고?”하는 물음이 나올 것이다. 이 사진을 보면 1960년대 말까지도 대중들이 먹을 쌀이 모자라 인근 보육원에서 빌려와야 할 정도로 봉은사 살림이 어려웠다는 증언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울 시내에서 봉은사에 가려면 뚝섬으로 가서 나룻배를 타고 다녔고 그래서 사람들이 ‘뚝섬 봉은사’라고 불렀던 시절이다. 봉은사의 변화도 그렇지만 절 주변 풍경은 옛말 그대로 ‘뽕나무 밭’[桑田]이 ‘하늘을 찌르는 고층 건물들 집중지역’[碧海]이 되었다.

숱한 성보들이 이런저런 사연으로 절을 떠나 국내외에 흩어져서 박물관이나 수집가의 창고에서 ‘성보가 아닌 미술품 대접’을 받고 있는데, 이번 봉은사 일주문 귀환은 이런 분위기를 바꾸는 데 기여할 것이다. 불교계에서도 ‘잃어버리거나 약탈당한 성보를 되찾는 일’뿐 아니라 ‘본래 다른 사찰에 있던 성보를 제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적극적인 불사’를 펼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84 / 2019년 4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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