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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키케로의 자연법

기자명 김정빈

공화정 시기에 ‘국가는 인민의 재산’이라 말하다

그리스로마시대 이름떨친 웅변가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언변 탁월
정치적인 연설, 법정에서 변론 등
세가지 수사학에서 최고 실력가
인간이 법적으로 평등하다 근거 
자연과 일치하는 이성에서 제시

키케로(Cicero, BC. 106~43)는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요, 연설가이자 저술가이다. 하지만 그는 정치가로서는 당대의 카이사르나 폼페이우스에 미치지 못하고, 철학자로서는 전대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연설가이자 저술가로서, 그는 위대한 서양인을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큰 업적을 남겼다.

원로원 계급 다음을 차지하는 기사 계급 신분으로 태어난 키케로는 법정에서의 변론으로 이름을 떨쳤다. 또한 그는 로마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연설가이기도 했다. 그리스·로마 시대에 이름을 떨친 웅변가는 매우 많은데, 그중에서 여덟 명이 유명하고, 다시 그중에서 데모스테네스와 키케로가 가장 유명하다.

베레스(수퇘지)는 시칠리아의 법무관으로, 비리가 발각되어 시민들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그때 카이킬리우스라는 해방 노예가 시칠리아 사람을 제쳐 두고 자신이 고발자가 되려 했는데, 그는 유대교인이었다. 유대교인들은 돼지를 더러운 짐승이라고 여겨 그 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를 배경 삼아 키케로는 카이킬리우스에게 “대체 유대인은 돼지와 왜 그리 인연이 많은 거요?”라고 물었다.

웅변가 호르텐시우스는 베레스의 벌금을 낮추는 데 도움을 주는 대가로 베레스로부터 상아로 만든 스핑크스를 받았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키케로는 변론 중에 말을 빙빙 돌렸고, 호르텐시우스는 그런 키케로를 향해 자신은 수수께끼를 잘 풀지 못한다며 비아냥거렸다. 그때를 기다려 키케로가 말했다. “집에 스핑크스를 두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수수께끼를 잘 풀지 못할 수 있소?”

로마 사람들은 염치없는 사람을 ‘굵은 목’이라고 빗대어 말했다. 바티우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목 여기저기에 혹이 나 있었다. 그는 성질이 사나운 데다가 법정에서 건방지게 행동하곤 했다. 그가 법무관인 키케로에게 무언가를 요청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자 자기가 법무관이라면 그런 정도의 요구는 다 들어줄 거라고 했고, 그에 대해 키케로가 말했다.

“당신처럼 굵은 목을 가졌다면 나도 그렇게 했을 거요.”

이에서 보듯이 키케로는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말을 하는 데 능수능란했다. 또 그의 언어를 비트는 기법과 재치 있는 말들은 배심원들로 하여금 사건의 본질을 잊어버리게 할 정도였다.

어느 때 풍문이 좋지 않은 한 귀족이 상대편 변호를 맡은 키케로에게 “당신의 아버지가 누구요?”라고 묻자 키케로는 “당신 어머니가 대답하기 곤란할 것 같아서 나는 당신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지 않겠소”라고 말했다. 아버지에게 독이 든 과자를 건네주어 고소를 당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가 키케로에게 ‘쓴소리’를 한마디 하겠노라고 하자 키케로는 “자네의 과자보다 차라리 그걸 먹는 게 더 낫겠네”라고 말함으로써 그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키케로는 세 가지 수사학, 즉 정치적인 연설, 법정에서의 변론 및 공중 행사에서의 웅변에 있어서 자타가 인정하는 대가였다. 그는 대중연설에 있어서 모든 면을, 즉 목의 관리와 호흡조절, 어조의 변화, 몸가짐, 표현, 눈썹의 움직임, 몸짓, 보폭, 눈물 등까지 세심하게 배려했다. 그러나 그가 웅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이성과 경험이었다.

그는 다양한 어휘를 구사했고, 각 단어가 가진 음운 효과를 잘 이용했다. 문장의 리듬은 자연스러웠으며, 간결한 아티마 식 문체와 풍요로운 아시아 식 문체를 적절히 혼합했다. 후에 웅변에 대한 연구로 이름을 남긴 롱기누스는 그의 연설을 이렇게 평가했다.

“번져나가는 불길처럼 키케로는 온 들판을 넘실거리며 뻗쳐간다. 그의 내면에서 타오르는 풍부하고 끊임없는 그 불은 그의 마음대로 이번에는 이쪽에 또 이번에는 저쪽에 나뉘고 번갈아가며 연료가 공급된다.”

그러나 정말로 키케로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가 남긴 라틴어 저작물들이다. 그는 철학·수사학·정치학·문학 분야를 망라하는 많은 저작을 남김으로써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새로운 사상을 창시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있는 다양한 사상들을 정리하여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중세 이후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로마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키케로의 저작을 통과해야 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공화정이 제정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산 사람으로서 여러 작품을 통해 공화정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피력했다. 그 가운데 우리는 불교인으로서 그의 자연법사상에 주목하게 된다. 먼저 그는 “국가는 인민의 재산”이라고 말한다. 국가는 정의와 공동선을 위해서 사람들이 모인 체제라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그 최초의 원인이 “자연이 인간에 심어준 어떤 종류의 사회성”이라는 사실이며, 이것이 국가를 지탱하는 법률의 근거로서의 자연법사상으로 이어진다.

키케로는 스토아학파의 주장에 근거하여 인간은 법적으로 평등하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를 “자연과 일치되는 올바른 이성”에서 찾았다. 현실적인 법률에 앞서 이미 자연에 존재하는 그 법은 “모든 국가와 시대에 적합한 영원하고 불변한 법”이다. 이 자연법사상으로부터 오늘날 세계인이 운영하고 있는 민주주의 정체가 성립해 있음을 생각할 때, 비록 느슨하고 덜 구체적이기는 하지만 키케로의 자연법사상에는 근현대적인 성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불교로 돌아와 생각해보면, 자연법사상은 불교가 진리를 법(法, 다르마)이라고 부르는 것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여래가 오거나 오지 않거나 간에 법은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며, “여래는 다만 그 법을 깨달아 열어 보이는 것뿐”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전자를 여법(如法), 후자를 교법(敎法)이라 이름 붙인다면 자연법은 여법, 실정법은 교법과 거의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다만, 키케로는 자연법이 신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고, 그것을 이어받아 미국의 독립선언서조차도 맨 첫 구절부터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말한다. 이때의 신은 기독교가 말하는 야훼일 수도 있고, 특정 종교의 신이 아닌 궁극의 실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신이 인격성을 가졌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신은 인격적인 궁극적 실재이고, 불교의 법은 비인격적인 궁극적 실재이다. 우리는 그 법을 향해 나아가는 불제자로서, 그것이 우주·자연·세계 자체에, 또는 나의 몸과 마음에 선재해 있음을 믿는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84 / 2019년 4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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