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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횡설수설과 투기와 시다림

기자명 현진 스님

횡설수설, 부처님이 중생 근기 살펴 설법한 데서 유래

일상서 사용하는 말 가운데
불교에서 유래된 용어 많아
부정적 의미가 담긴 투기도
스승의 제자 지도법서 유래

“아내가 복부인이라 땅 투기를 하는데, 요즘 사정이 좋지 않은지 며칠 잠꼬대로 횡설수설하더니 결국엔 오늘 아침에 병원에 입원했어. 그 바람에 나도 시달려 잠을 설쳤다네.”

친구와 대화하는 이 사람의 말 가운데 과연 몇 개의 불교용어가 들어있을까? 어차피 천년 이상 이어진 불교문화 속에서 있다 보니 알게 모르게 우리말 가운데 많은 단어들이 불교에서 유래된 것은 당연하리라. 야단법석(野壇法席)이나 이판사판처럼 이미 누구에게나 귀에 익은 말 외에도 뜻밖의 단어들이 제법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불교용어라는 것은 불자에게도 생소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투기와 횡설수설은 그리 좋지 않은 의미로 흔히 쓰이는 말인데, 정작 그 본래 의미는 그렇지 않다. 우선 투기(投機)는 스승이 가르치고 제자가 배울 때 스승과 제자 사이에 근기(根機)가 투합(投合)하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스승이 어렵게 제자의 눈높이를 맞추거나 제자가 스승의 높은 경지를 힘들게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제자는 스승이 한 가지만 일러줘도 열 가지를 스스로 알아내고, 스승은 백 마디 말보다 여법한 행동거지로 제자를 자연스레 이끄는 경우를 말한다. 그래서 근기가 투합하면 대박이요 투합하지 않으면 쪽박일 텐데, 그 조합이 복부인과 땅이거나 사기꾼과 돈인 경우만 남아있는 셈이다.

횡설수설(橫說竪說)은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 중생의 근기를 살펴서 가로세로 고운 비단직물을 짜듯이 이리저리 고려하여 듣는 이의 수준에 맞게 잘 설명해주시는 것을 가리킨다. 중국에선 아직까지도 이 말이 나쁜 의미가 아닌, 이리저리 설득하거나 설명을 반복해서 무엇을 알게 한다는 좋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병원에 입원하다’ 할 때의 입원은 입사원(入寺院)의 준말이다. 고달픈 세상살이의 고뇌를 덜거나 마음의 병을 고치러 절을 찾거나 아예 출가해버린다는 말에서 육신의 병을 다스리기 위해 병원에 들어간다는 표현이 나온 셈이다. 어쩌면 굳이 그렇게 봐서 그렇지, 입원을 그저 입병원(入病院)의 준말로 보면 불교용어라고 할 것까지는 없긴 하다.

그런데 동사인 ‘시달리다’는 말은 명사인 ‘시다림’에서 온 것이며, 온전히 인도적이며 불교적인 색채를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국에는 망우리가 있고 중국에는 북망산이 있듯이 인도에는 시다림이 있는데, 모두 큰 도시 인근의 공동묘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부처님께서 계시기도 했던 마가다국 왕사성 북문 밖에는 시체를 버리는 숲이 있었는데, 조장 혹은 풍장의 흔적을 지닌 곳으로 왕사성 인근에선 가장 서늘한 곳이라 한림(寒林), 그곳 말로 시따와나(śītavana)라 불렸다. 그래서 불가에선 망자를 위한 장례의식이나 설법을 시다림이라 한다. 명사에서 동사가 나온 이 말은 을사년에 맺은 치욕적인 조약에 빗대어 ‘을씨년스럽다’란 말이 생긴 것과도 유사하다.

이에 반해 제법 아는 이들도 불교용어인 것처럼 여기는 점심(點心)은 정작 불교설화를 통해 유명해진 보통말일 뿐이다. 하루에 아침저녁 두 끼도 버겁게 먹던 시절, 그 중간에 허기를 달래기 위해 먹는 간단한 음식을 일러 점심이라 했다. 마음에 살짝 불기를 지핀다[點火於心]란 의미인데, 우리의 기력이 열기와 관련되어 있음을 적절히 표현한 말이다.

‘점심’이란 이 단어는 ‘금강경’의 “과거의 마음도 현재의 마음도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는 구절과 관련하여 당나라 덕산 선사와 떡을 파는 노파의 일화를 통해 불가의 공안으로도 소개되어 있다. 노파의 한마디로 마무리한다.

“그럼, 스님! ‘금강경’을 많이 읽으셨다니,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마음을 모두 얻을 수 없다 하였는데 스님께선 어느 마음에 불기를 지피시려고 떡을 드시고자 합니까. 답을 주시면 그저 공양을 올릴 테고, 답을 못하시면 굶고 그냥 가셔야 합니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484 / 2019년 4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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