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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복잡계로 보는 음식의 힘

기자명 고용석

밥상의 자비는 더 큰 자비로 이어져

세상은 우주적 복잡계 일부
불안정성 가장자리서 격변
음식, 가장 원초적 패러다임

전쟁의 근원은 정치와 역사에서, 지진은 지구과학, 산불은 날씨와 생태계에서 찾기 마련이다, 그러나 복잡계 물리학의 시선은 일관적이다. 임계와 격변 즉 패턴이다. 패턴이 발생하면 개별적 요소나 조건은 무의미해진다. 지구온도가 임계점을 지나면 온실가스 방출이 없더라도, 여러 요인의 복합작용으로 지구시스템의 자정작용이 멈춰 인류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찜통지구가 불가피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조현상도 없이 발생하는 대규모 지진이나 임계점을 지나면 회복탄력성이 무너져 대규모 멸종이나 회복불능으로 이어지는 생태계와 인간의 몸도, 마의 10초벽을 깨지 못하다가 누가 깨자 그 후로 쉽게 기록갱신이 가능한 것도 복잡계로 이해할 수 있다.

정치와 경제, 역사도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 복잡계이다. 이 그물망이 불안정성의 가장자리에 놓이게 되면 격변이 일어난다. 1914년 사라예보에서 한 운전자가 길을 잘못 들었다. 혼잡한 도심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다. 하지만 그 차에는 제국의 황태자가 타고 있었고 마침 그곳에 있던 세르비아 청년이 그를 암살했고 유럽은 곧바로 1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다. 이는 다시 3000만 명이 죽는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작은 불씨 하나가 인류역사를 뒤바꿀 거대한 연쇄폭발을 부른 것이다. 당시 유럽이 일촉즉발의 임계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소련연방의 붕괴나 보스니아와 나치독일의 비극, 르완다의 대학살 등도 복잡계로 보면 단순하다. 민족중심주의의 끔직한 패턴이 스스로를 추동하는 에너지를 얻어 개인이 무의미해진 것이다. 물론 개인의 행위가 실재를 만들면서 시작된다. 그것이 피드백을 거듭하면서 강화된 사회적 흐름을 형성하고 이 흐름에 주변도 몸을 맡기게 된다.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는 패션유형을 만들고 신경질적인 집단행동, 광신적인 교단, 민족주의적 열광, 주식시장의 병적인 투기열풍을 창출하는데 한 몫 하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숨겨진 사회적 흐름을 타면 그런 것조차 있는지도 의식 못한다. 특히 음식은 가장 원초적이고 무의식적 차원에서 문화적 가치와 패러다임에 참가한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식사를 통해 음식을 둘러싼 복잡계 패턴에 항시 노출된다. 그 패턴에 가담하면서 문화의 보이지 않는 전제들과 가치를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길들여진다. 문화적 미망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이유이다.  

복잡계 물리학은 사태의 특정원인보다는 사태를 발생케 하는 배경 즉, 사회 뒤로 숨어있는 조직화와 패턴에 주목한다. 모든 패턴은 집단적 성질을 띠고 임계상태에서는 모래알 하나조차 큰 변화를 촉발한다. 모든 게 터질만한 시기에 터지는 법이다. 항시 신·구·의를 새롭게 할 일이다. 패턴의 숨은 힘을 감지 못하면 언제나 의도하지 않는 결과에 헤매게 된다. 이는 역사 전체에 걸쳐 사회와 정치를 다루는 인간의 운명이었다. 패턴이 얼마나 생산적인가는 우리의 깨어있는 정도에 달려있다.

이 세상 또한 우주적 복잡계의 일부이다. 라디오 수신기가 전파신호를 받으면, 전류가 신호안의 질서와 일치해서 흐르게 된다. 곧 수신기가 인류수준 너머의 유의미한 질서를 인류수준 운동으로 가져오는 이치다. 인류는 우주적 진실을 노래하는 새로운 차원의 패턴을 인류공존의 지혜로 진화하는 와중에 있다.

모든 생명은 신성하며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고 우리가 생명의 그물을 찢어놓는다면 그 덫은 곧 우리의 존재자체에 구멍을 뚫어놓는 짓이라는 인식이다. 이 패턴에의 동참은 복잡다단함을 있
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단순함과 이 인식의 질에 근거한 음식선택이 요구된다. 음식만큼 증폭·재생산하는 매개체는 없기 때문이다. 밥상에서의 자비는 더 큰 자비를 끌어오며 만물과 연결되는 자각도 커지는 긍정적 피드백을 형성한다.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484 / 2019년 4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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