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수행 강나영-상
사경수행 강나영-상
  • 법보
  • 승인 2019.04.09 10:09
  • 호수 14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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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치이다 존재·인생에 의문
교리·수행 배우면서 점차 변화
108배·관세음보살보문품 사경
자리이타 발원으로 하루 시작
61, 자성월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매일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다.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용히 108배 올리고, ‘천수경’을 읊는다. 그리고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을 한 자 한 자 마음에 새기듯 사경한다. 내면의 흐름과 마주하는 소중한 순간이다. 한 자 한 자 경전에 있는 부처님 말씀에 자신을 비추고 참회해본다. ‘자리이타’의 발원이 익어가는 시간들이 쌓여가고 또 그렇게 하루의 문을 연다. 

언제 어디서부터일까. 아니면 어떤 인연이었을까. 내 삶에서 부처님과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부처님오신날 절에 몇 번 가본 것 이외에 특별한 인연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 어린 시절 추억들이 내 가슴 속에 조그마한 불법의 씨앗이 된 것이었을까. 결혼식 날짜를 잡아놓고 이것저것 준비하던 시기, 하루는 시어머니께서 부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결혼 전 절에 가서 3주 동안 기도를 하면 살아가는데 모든 것이 원만해 진다고 하더라. 한번 해 보겠니?”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결코 불쾌하거나 낯설지가 않았다. 흔쾌히 답을 했다. 친정 부모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3주 동안 기도를 하겠노라 발심했다. ‘부처님은 누구실까?’ 궁금증이 일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길게 보이는 그 기도 여정에 불쑥 몸과 마음을 맡겼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화엄성중이 어떤 존재인지도 몰랐다. 그저 입으로만 따라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면서도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구름에 가려진 산사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공양시간보다 더 기다려지는 그 행복함과 따스함을 누리는 자체에 푹 빠져 보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철없는 3주간의 기도였다. 

그러나 분명, 그 어린 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부처님 도량에 종종 찾아갔던 인연은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면에 꽁꽁 숨어있던 불성의 씨앗이 싹을 틔우는 데 큰 밑거름이 된 것 같다. 기도를 회향하고 결혼식을 올렸고, 자연스럽게 재적사찰을 갖게 됐다. 불자로서 신행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토대가 생긴 셈이다. 

하지만 신혼의 달콤함은 잠시였다. 아이들 낳고 여느 가정처럼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른 채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나갔다.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동안 기댈 곳 없이 헐떡이는 내 삶 한 구석에서 마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정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도대체 난 누구지?’ ‘왜 평범함 속에 행복을 다 누리며 살 수 없을까?’ ‘인생은 무엇일까?’ ‘다음 생에는 어떻게 되는 거지?’ 

삶은 의문 투성이었다. 해결되지 않는 물음표 사이로 불쑥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었다. 더 갖고 더 채우려는 욕심을 이기지 못해 탐욕이 자랐다. 어느새 훌쩍 크고 무거워진 탐욕과 분노는 순간순간 나를 짓눌렀고, 너무 힘이 들었다. 

그때였다. 일어나지 않는 일에 매달려 허덕이며 괴로워하는 번뇌를 가라앉게 할 그 해답을 찾아 헤매던 그때. 불성의 씨앗은 싹을 틔우려고 몸부림쳤다. 말 그대로 때마침 재적사찰에서 부처님 일대기부터 몇 년에 걸쳐 교리강좌가 진행되었다. 이 강좌에 등록해 불교공부를 시작했다. 주지스님과 강사진의 가르침 덕분에 체계적인 불교공부를 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간이었다. 

졸업 후 2010년 경부터는 집에서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108배 참회기도를 하고 ‘금강경’ 독송, ‘법화경’ 사경을 이어갔다. 이 기도를 통해 스스로 변화되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뾰족했던, 모난 돌처럼 생긴 마음의 모양이 조금씩 둥그러지고 따뜻해지고 있음을 경험할 수 있었다. 수행으로 나름 내면의 변화를 느끼던 시기, 언제나처럼 매일 아침을 108배, ‘금강경’ 독송, ‘법화경’ 사경으로 이어가던 2년 전이었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 기운을 그대로 확장하여 이번에는 ‘법화경’ 속에 있는 제25품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우리말로 108번 써보고 싶다는 발원이 생겼다. 

 

[1484 / 2019년 4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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