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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정끝별의 ‘봄’

기자명 김형중

고승의 장엄한 다비식과 사리 보며
아름다운 인생을 만끽하자고 노래

잉걸불 속 남아있는 사리에서
허망·무상 대신 화중생련 목격
따뜻한 봄에 새싹이 소생하듯
새 생명의 환생 느끼도록 읊어

불 들어갑니다!

하룻밤이든 하루 낮이든
참나무 불더미에 피어나는 아지랑인듯

잦아드는 잉걸불 사이
기다랗고 말간 정강이뼈 하나

저 환한 것
저 따뜻한 것

지는 벚꽃 아래
목침 삼아 베고 누워
한뎃잠이나 한숨 청해볼까

털끝만 한 그늘 한 점 없이
오직 예쁠 뿐!

고승의 시신을 불에 태우는 다비식 광경이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 그리고 참나무 장작불은 시신을 시나브로 태우면서 차츰 불길이 졸아들고 잦아들었다. 하룻밤이 지나고 다 타지 않은 장작불(잉걸불) 속에서 환하고 따뜻한 기다란 정강이뼈 하나가 나왔다. 유골이다. 이것이 고승의 몸인 법체(法體)에서 나온 사리(舍利)이다. 수도승은 이 사리를 얻기 위해 평생 홀로 밤을 새우면서 염불을 하고, 경전을 읽고 또 새벽이 올 때까지 참선 수행을 한다. 

시인은 이 사리를 보고 허망함이나 무상을 느끼지 않고 “저 환한 것/ 저 따뜻한 것”이라고 읊고 있다. 불 속에서 핀 연꽃을 본 것이다. 정강이뼈에 핀 영롱한 사리꽃을 본 것이다. 부활이다. 불길 속에서 연꽃이 핀 것이다. 화중생련(火中生蓮)이다. 

시인은 후반부에 “지는 벚꽃 아래/ 목침 삼아 베고 누워/ 한뎃잠이나 한숨 청해볼까”라며 아름다운 봄의 축제에 빠져 들었다. 벚꽃의 꽃잎이 떨어지고 있는 공원 아래서 낮잠을 청해 본다. 세상은 온통 꽃의 축제요, 꽃 무덤이다. 온 우주가 예쁜 봄꽃으로 장식한 화엄세계이다. 시인은 죽음을 한뎃잠으로 표현했다. “꿈과 같은 한 평생”이다. 죽음을 초월한 생사가 본래 하나이다. 사유의 통이 큰 시인의 세계이다.

한 소식 깨달음 얻어 마음 문이 열리니 온통 아름다움뿐이다. ‘유마경’에서 “마음이 아름다우니 온 세상이 아름답다”고 한 경지이다. 시인은 “털끝만한 그늘 한 점 없이/ 오직 예쁠 뿐!”이라고 찬탄하고 있다.

정끝별(1964~현재) 시인의 ‘봄’은 전반부 스님의 다비식 장면에서 근엄한 장송곡이 울려 퍼지다가 후반부에서는 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고 있다. 시인은 ‘인생은 결코 죽음으로 허망하게 끝나지 않는다.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예쁘고 청정한 봄꽃들이 만발하고 있다. 아름다운 인생을 노래하고 만끽하자고 노래하고 있다. “저 정강이뼈에서 피어나고 있는 환하고 따뜻한 꽃을 보라”고 외치고 있다. 아름다운 부활의 꽃이다. 

시인은 ‘봄’의 시에서 인생을 노래하고 있다. 인생은 참나무 장작 불더미 속에서 하룻밤 자고나면 말간 정강이뼈 하나만 남는다. 꿈 같고 아지랑이 같이 허망한 인생이다. 그러나 따뜻한 정강이뼈(사리)에서 봄에 새싹이 소생하듯이 다시 환생하고 부활한다. 봄이 되면 아름다운 벚꽃이 피어 흩날리는 꽃길에서 한뎃잠 자는 것이 또한 일장춘몽 한 인생이다. 꽃은 피었다가 지고 또 봄이 되면 피어난다. 새 생명의 환생을 느끼게 하는 비유와 상징이 뛰어난 걸작이다.

죽음의 미학이다. 죽음이 문득 예뻐졌다. 죽어야 새로운 생명인 아이로 다시 태어난다. 죽어야 더러운 죄업도 무거운 업장도 모두 불 속에서 소멸되고 한 줌의 흰 재로 정화된다. 
시인은 이화여대 교수다. 24세에 ‘문학사상’에 시로 데뷔하였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평론으로 당선된 후 시 쓰기와 시 평론의 양검을 쥔 한국시단을 대표하는 반짝이는 끝별이다.


김형중 동대부여고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84 / 2019년 4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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