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법성게’ 제20구: “번출여의부사의(繁出如意不思議)”
32. ‘법성게’ 제20구: “번출여의부사의(繁出如意不思議)”
  • 해주 스님
  • 승인 2019.04.09 10:58
  • 호수 14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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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이 중생의 근기 맞게 일어나므로 불가사의

번출의 여의함이 불가사의
여의를 번출함이 불가사의
두 가지 뜻으로 해석 가능

부처님 가르침이 여의이고
근기에 따라 설해짐이 번출

​​​​​​​부처님의 해인삼매 경계를
뭇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보법으로 펼쳐 보이는 것
자재함이 헤아리기 어려워 

‘법성게’ 제20구인 “번출여의부사의(繁出如意不思議)”는 두 가지 번역이 가능하다. 하나는 “번출의 여의함이 불가사의하다”이고, 다른 하나는 “여의를 번출함이 불가사의하다”이다. 

‘번출’이란 ‘번다하게 나타낸다’ ‘번다하게 나타냄’ 이라는 의미이다. ‘여의’란 ‘뜻과 같이 자재하다’ ‘뜻과 같이 자재함’이다. 즉 “번출의 여의함이 불가사의하다”란 “번다하게 나타내는 것의 자재함이 헤아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의를 번출함이 불가사의하다”란 “여의를 번다하게 나타냄이 헤아리기 어렵다” 또는 “여의를 다양하게 나타냄이 헤아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 전자의 경우 무엇을 번출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 ‘여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먼저 의상 스님이 도인의 뜻을 통틀어 해석한 설명에 의하면 번출 된 것은 세 가지 세간이다. 삼세간(三世間)을 번출하는 것이다. 

문. 어째서 도인에 의거하였는가? 

답. 석가여래의 가르침의 그물에 포섭되는 삼세간[三種世間]이 해인삼매로부터 번다하게 나타난 것임을 표현하려고 한 때문이다. 

삼세간이라는 것은 첫째는 기세간이고, 둘째는 중생세간이며, 셋째는 지정각세간이다. 지정각이란 부처님과 보살이다. 삼세간이 법을 다 포섭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논하지 않는다. 자세한 뜻은 ‘화엄경’에서 설하는 것과 같다. (‘일승법계도’)

해인삼매에 의해 번출하는 것이 삼세간이니, 이 세 가지가 모든 것을 다 포섭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기’에서는 기(器)와 중생은 마땅히 세간이라고 하겠으나, 지정각은 이미 세간을 벗어난 것인데 어째서 세간이라 하는지를 묻고 있다. 그것은 비로소 정각을 이룬 때[時] 가운데[中] 삼세간의 법이 뚜렷이 밝게 나타나기 때문에 세간이니, 말하자면 때[時]는 세(世)이고 가운데[中]는 간(間)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삼세간의 법이 해인삼매로부터 번다하게 나타난 것은, 전체가 본래 해인의 체를 여의지 않으니 삼세간 법이 곧 해인인 것이다. 

이 삼세간은 곧 십신(十身)이고, 융삼세간은 십신무애이다. 십신이란 중생신·국토신·업보신·성문신·독각신·보살신·여래신·지신(智身)·법신·허공신이다. 이중 중생신과 업보신은 중생세간이고 국토신과 허공신은 기세간이고 여타는 지정각세간에 거두어진다. 기세간은 의지할 바의 곳[所依處]인 의보이고 지정각세간은 교화하는 주체[能化主]이며 중생세간은 교화받는 대상[所化機]이나, 의보와 정보가 둘이 아니고 불·보살과 중생이 다르지 않다. 삼세간이 다 융삼세간불이니 중생이 부처이고, 국토가 부처몸이다. 두두물물이 십신무애의 부처님인 것이다. 

보살은 부동지(不動地)에서 중생의 좋아함을 따라서 이 열 가지 몸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하게 되며, 또 여래신에 열 가지 몸이 있음을 안다고 한다. 이 십불에 대해서는 마지막 구절에서 살펴보기로 언급한 바 있다.

위 인용문에서 본 것처럼 삼세간이 다 부처님의 교망소섭(敎網所攝)이다. 부처님이 가르침을 펴시는 일이 자재하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여의이고 “여의를 번출함이 불가사의하다”라고 “번출여의부사의”를 해석할 수 있다. 
 

경남 합천 해인사 전경.

“‘여의를 번다하게 나타냄’이란 해인정으로부터 일어나는 가르침[敎]을 여의로 삼는다. 이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부처님의 뜻에 칭합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중생의 뜻에 칭합하기 때문에 ‘여의’라 이름한다. ‘불가사의하다’란 불가사의한 내증[內訂]으로부터 일어나고, 불가설의 중생 수에 응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법기’)
“‘번다하게 나타낸다’ 등이란 순간순간마다 여의의 가르침을 일으켜 미래가 다하도록 쉼이 없기 때문이다. 또 다만 일념에 법계를 온전히 거두어들여 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가사의하다’고 말한다.” (‘진기’)
“‘여의를 번다하게 나타냄’이란 여의의 가르침의 붉은 인(印)이 근기에 응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대기’)
‘여의’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본 삼대기의 설명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중생의 근기에 맞게 일어나므로 불가사의하다는 것이다. 해인정은 바다에 도장을 찍은 듯 일체 사물이 다 나타난다는 비유에 의한 불해인삼매이다. 바다만이 아니라 깨끗한 물이면 강이나 못이나 그릇에 담긴 물에도 일체 색상이 다 나타난다. 그러나 물은 스스로 분별함이 없으니 보살의 삼매도 스스로 분별함이 없다. (‘현수품’)

부처님의 해인삼매처럼 보살의 삼매도 그러하니, 해인삼매의 힘에 의한 보살행이 모두 이타행이다. ‘초발심시변정각’이므로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의 보살도가 다 이타행인 것이다. 

균여 스님도 ‘여의’를 일음의 가르침[一音敎]으로 정의하고 있다. 

“‘여의’란 곧 일음의 가르침이니, 비유하면 큰 바다에 여의주가 있기 때문에 만물을 윤택하게 하고 여러 진귀한 보배를 비내려 일체를 이익되게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해인삼매 가운데 일음의 여의한 가르침으로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원통기’)

부처님의 일음(一音)을 ‘반시’에서는 도인이 한 줄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 일음이 바로 여래성기음(如來性起音)이다. 부처님의 음성은 일음이지만 중생의 근기 따라 다름을, ‘반시’에서 도인이 한 줄이나 구불구불 54각인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번출여의부사의”에 대한 설잠 스님의 해석은 위의 전후 두 가지 측면이 다 반영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전자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먼저 해인삼매(海印定) 가운데서 일어난 법[所起之法]은 어떤 형상이며, 설해진 가르침[所說之敎]은 어떠한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해인정 가운데서 일어난 법은 성(性)도 아니고 상(相)도 아니며 이(理)도 아니고 사(事)도 아니며 부처[佛]도 아니고 중생(衆生)도 아니며 참[眞]도 아니고 거짓[假]도 아니나, 설해진 가르침은 곧 성(性)이고 곧 상(相)이며, 곧 이(理)이고 곧 사(事)이며, 곧 부처이고 곧 중생이며, 곧 참이고 곧 거짓이다.” 

위에서 해인삼매로부터 번출된 것이 삼세간임을 보았는데, 여기서는 성·상, 이·사, 부처·중생, 참·거짓 등 서로 상대적으로 보이는 법 즉 보법(普法)으로 제시되고 있다. 성이 아니면서 곧 성이고, 상이 아니면서 곧 상이며, 내지 참이 아니면서 곧 참이며, 거짓이 아니면서 곧 거짓이다. 해인의 형상은 곧 형상이 아닌 무분별의 형상이다. 모습이 나타나지 않은 영불현(影不現)이 곧 영현(影現)의 해인으로서 동시구족이다. 

이어서 ‘법계도주’에서는 ‘여의부사의’를 일음과 교설의 특징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 소리[一音]로 펼쳐 말하지만 부류를 따라 각각 다르며, 부류를 따라 각각 다르지만 한 소리에 원만하게 섭수되어, 중생의 갖가지 마음으로써 중생의 갖가지 성품을 설한다. 식정(識情)으로 도달할 바가 아니며 사량으로 미칠 바가 아니니, 그러므로 ‘여의부사의’라고 하였다.” 

이것은 ‘여래의 한 음성가운데 한량없는 음성을 내어 중생들의 차별한 마음을 따라 두루 이르러 그들로 하여금 해탈케 한다. 중생의 마음 그릇이 다르므로 차별하나 여래의 음성은 분별이 없고 동일한 해탈의 맛이다’ 등의 ‘보왕여래성기품’(‘여래출현품’) 교설과 부합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체 중생의 갖가지 음성과 말도 다 여래의 법륜 굴리신 교설을 떠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번출여의부사의”의 경계를 설잠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서 고기 물지 않으니/배에 가득 공연히 달빛만 싣고 돌아온다.” (‘법계도주’)

이 게송은 어부송(漁父頌)으로 알려져 있는, 당나라(800년경) 선자덕성(船子德誠)이 읊은 사구게의 후반부 두 구를 인용한 것이다. 전반 두 구는 “천자나 되는 낚시줄을 곧장 드리우니, 한 물결이 일자 만 물결이 따라 인다.(千尺絲綸直下垂 一波纔動萬波隨)”이다. 

밤이 고요하니 밤이 밤이 아니다. 물이 차가우니 물도 물이 아니다. 고기가 물지 않으니 고기가 고기가 아니다. 고기가 없으니 어부가 할 일이 없어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온다고 하겠다. 
중생이 중생이 아니니 삼세제불이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중생교화의 이타행도, 구제받는 중생도 다 환과 같으며 본래 둘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법성게’ 전체를 법성과 관련시켜 해석한 유문 스님은 이타의 교화가 일미 법계의 융통무애한 법성 도리를 열어보여서, 법성 원융의 자기 법신을 볼 수 있게 하므로 번출함이 자재하다고 한다. 

이상에서 “번출여의부사의”란 부처님이 해인삼매 경계를 중생들의 근기 따라 삼세간의 보법으로 펼쳐 보이는 것이 자유자재함이 헤아리기 어렵다고 찬탄한 게송임을 알 수 있다.

해주 스님 동국대 명예교수 jeon@dongguk.edu

 

[1484 / 2019년 4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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