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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Circulation

기자명 임연숙

인연 고리로 연결된 삶 생각하다

크고작은 원형 모인 입체작품
반복적 행위로 생각 집중시켜
원들 모임 무념무상세계 닮아

권봄이 作 ‘Circulation(27)’, 80×80×5cm, 종이, 2019년.
권봄이 作 ‘Circulation(27)’, 80×80×5cm, 종이, 2019년.

우연히 만난 권봄이 작가의 작품 ‘Circulation’은 단순하고 명료한 색감으로 이 봄에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더구나 크고 작은 원형의 조형이 기분을 명랑하게 한다. 칼같이 쌀쌀한 바람 틈으로 햇볕은 따뜻하다. 그늘이 아닌 햇볕이 비추는 길로만 다니면, 봄이 온 것을 실감하고 이 새로움이라는 단어에 마음 뿌듯이 기대감도 올라간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에 대한 기대감. 생애주기의 연령대마다 계절에 대한 느낌도 다르고, 마주하는 삶에 대한 태도나 일을 풀어가는 자세도 달라진다. 

‘Circulation’이라는 단어는 ‘순환’이다. 원(circle)들이 모여 하나의 꽉 찬 화면을 만들어 내는 이 그림을 보면서 떠올리는 단어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이다. 그림을 바라보면서 각각의 원의 형상에 집중하면서 그저 아무 생각이 없는 진공된 시간을 잠시나마 갖고 싶은 마음이다. ‘무념무상’이라는 말은 쉽게 하지만 경험하기에는 어려운 말이다. 새순이 돋고 꽃이 막 피어나는 이 계절에 꽃 정원을 연상하게 하는 색감과 단순한 원형의 조형은 그저 바라보고 아무 생각 없이 마음과 머리를 비우게 한다.

아직 영아티스트라 할 수 있는 작가는 조각을 전공했고, 이 작품도 들여다보면 입체의 원형들이 모여있는 입체 작품이다. 작가는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거나 할 때 휴지나 얇은 종이를 돌돌 마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그러한 반복적인 행위의 습관은 생각을 집중하게 하고 소외감이나 불안감들을 떨쳐버리는 치유의 효과가 있었다. 이 무한의 반복적인 행위와 노동은 작가에게는 하나의 즐거움으로 작용했고, 작가 자신을 표현하는 작품의 도구로 발전할 수 있었다.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무념무상이라는 단어는 작가의 작품 제작 과정에서도 작가와 체화된 공통된 감정이다. 작가는 얇은 종이를 사용하고 있다. 자연에서 만들어진 종이를 사용하는 것은 형태와 재질을 통해 우리가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현대의 작품들이 크고 기계적이고 산업화되는 경향에 반해 다른 한편의 작가들은 지극히 수공적이고 노동집약적이고 노고가 담긴 경향을 보여준다. 바느질을 한다거나, 세밀하게 작은 물건들은 붙인다거나 심지어 가는 머리카락을 붙여 묘사한다거나 하는 이러한 행위들은 근본적으로 예술이 갖고 있는 유희적인 요소의 새로운 해석처럼 보인다. 예술은 놀이이자 치유 방편의 순기능을 갖고 있다.

작은 원에서 시작해 하나의 구조가 되고 이것들이 모여 조형을 이루는 과정에서 작가의 쾌감과 예술적 유희가 느껴진다. 우리가 땀 흘려 일했을 때 무언가 완성해 냈을 때의 쾌감과 비슷한 무언가 이뤄냈다는 쾌감 같은 것일 거다. 종이를 말면서 색감을 염두하지 않을 수 없다. 색의 조화를 고려하면서 배치된 원들의 조합은 무념무상의 그 세계와 닮아 있다. 이 색들은 리듬을 탄다. 밝고 경쾌하지만 원색적이지는 않다. 중저음의 목소리 톤처럼, 가라앉은 내면을 표현하듯이 차분하게 경쾌하다. 

영아티스트지만 자신의 경험과 느낌에 솔직하게 다가가는 모습과 끝까지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어 표현해낸 결과물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느낄 것 같다. 삶 속에서 관계도 그렇고 생각도 그렇고 순환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원과 원이 만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연의 고리로 연결되는 삶을 생각하게 하는 그림이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예술교육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84 / 2019년 4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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