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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군함도’ 해저탄광에 수장된 넋들이여 부디 극락으로”

  • 교계
  • 입력 2019.04.14 00:17
  • 수정 2019.04.14 10:09
  • 호수 1486
  • 댓글 0

관음종, 일본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위령재 봉행

4월13일, 우베시 사고해역서
종단 첫 단독 추모행사 개최
강제징용된 조선인 등 183명
고인 극락왕생·유해발굴 기원
한국 ”관심 기울이겠다“ 답변

대한불교관음종(총무원장 홍파 스님)은 4월13일 일본 야마구찌현 우베시 조세이(長生)탄광 추모광장에서 ‘일제강점기 조세이탄광 희생자 위령재’를 봉행했다. 2017년 이후 관음종이 주관한 세 번째 위령재였다.
대한불교관음종(총무원장 홍파 스님)은 4월13일 일본 야마구찌현 우베시 조세이(長生)탄광 추모광장에서 ‘일제강점기 조세이탄광 희생자 위령재’를 봉행했다. 2017년 이후 관음종이 주관한 세 번째 위령재였다. 저 멀리 원통 모양의 숨구멍 피아가 보인다.

“말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고, 역사라는 알람표 위에 갈겨 쓴 낙서처럼 인간집단 속으로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존재, 한여름에 흩날리는 눈송이와도 같은 존재. 그 존재는 현실인가 꿈인가, 좋은가 나쁜가, 귀중한가 무가치한가?”(오스트리아 작가 로베르트 무질 ‘통가’ 중)

그들은 한여름에 흩날리는 눈송이도, 꿈도 아니었다. 봄날 흩날리는 꽃잎이자 현실이었고, 귀중하고 가치 있는 생명이었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이자 아픔이었다. 저 바다 아래 광맥에서 석탄 캐던 광부들이 있었다. 수면 위로 솟아있는 숨구멍 ‘피아’가 그 증거였다. ‘피아’는 갱도의 환기와 배수를 위해 설치된 둥근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갱도가 무너지던 날, ‘피아’로 숨 쉬던 조선인과 일본인의 육신은 수장됐다. 현해탄 너머 이역만리에 강제로 끌려와 고역 치르던 조선인들의 죽음 역시 강제됐다. 함께 수장된 일본인들까지 그 넋이라도 건져야 했다.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대한불교관음종(총무원장 홍파 스님)은 4월13일 일본 야마구찌현 우베시 조세이(長生)탄광 추모광장에서 ‘일제강점기 조세이탄광 희생자 위령재’를 봉행했다. 2017년 이후 관음종이 주관한 세 번째 위령재였다. 이번엔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하 조세이역사모임)’과 함께하던 추도식과 분리, 단독으로 준비했다.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이 조계종 어산종장 동희 스님과 영산작법연구회, 유족회, 주호영 국회 정각회 명예회장, 아랑가야금단 등 추모단 60여명을 이끌었다. 조세이역사모임 등 일본 관계자들도 동참하면서 한일 사부대중 150여명이 조세이탄광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일본인들이 ‘조선탄광’이라고 부르던 이름에서 유래된 조세이탄광은 일본 야마구찌현 우베시에 위치한 해저탄광이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석탄 캐는 일을 해야했던 조선인 징용자가 대다수였다. 77년 전인 1942년 2월3일 갱도가 붕괴되면서 183명이 사망, 조선인 136명과 이들을 감독하던 일본인 47명이 수장됐다.

영산작법을 행하는 스님들이 바라춤과 나비춤으로 결계를 치고 도량을 청정하게 한 뒤 불보살들을 모셨다. 살풀이가 영령을 달랬고, 어산종장 동희 스님이 화청으로 넋을 위로하고 왕생극락을 발원했으며, 극락무는 영령들을 극락으로 안내했다.
영산작법을 행하는 스님들이 바라춤과 나비춤으로 결계를 치고 도량을 청정하게 한 뒤 불보살들을 모셨다. 살풀이가 영령을 달랬고, 어산종장 동희 스님이 화청으로 넋을 위로하고 왕생극락을 발원했으며, 극락무는 영령들을 극락으로 안내했다.

추모단은 사고해역서 피아를 바라보며 간단한 의식을 치렀다. 이후 현장에서 추모비가 세워진 추모광장까지 장엄염불로 영령들을 인도했다. 그리고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던 영산회상이 아픈 역사의 현장에 펼쳐졌다. 영산작법을 행하는 스님들이 바라춤과 나비춤으로 결계를 치고 도량을 청정하게 한 뒤 불보살들을 모셨다. 관음종 총무부장 도각 스님이 고혼을 도량으로 초청했다. 살풀이가 영령을 달랬고, 어산종장 동희 스님이 화청으로 넋을 위로하고 왕생극락을 발원했으며, 극락무는 영령들을 극락으로 안내했다.

홍파 스님은 “종교와 사상을 초월해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현장에 간절한 심정으로 서 있다”며 “외면한 역사는 묻히고 만다. 이제 바닷속 영령들을 수면 위로 그리고 고향의 품으로 보내드려야 한다”고 추모했다.

한국불교계 힘만으로는 부족했다. 관음종이 4년째 봉행하는 위령재였지만 한일 양국 정부와 언론의 관심은 미미한 실정이다.

주호영 국회 정각회 명예회장은 “영화 ‘군함도’를 통해 탄광에 징용된 조선인들의 고통스러움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며 “철저히 은폐됐던 조세이탄광 희생자들의 유골 수습과 올바른 역사 기록을 위해 한일 양국 관계자 모두가 더욱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선표 주히로시마 총영사 역시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는 누구나 꺼려할 혹독한 환경 속에서 강제노동에 내몰린 사람들의 비극을 대변하는 인권 문제이자 인간 비극의 한 사례”라며 “국경과 민족을 넘은 가슴 아픈 사고로 목숨 잃은 한국과 일본 사람들을 모두 애도한다”며 한일 양국의 인류애를 요청했다.

70여년 전부터 일본과 탄광회사가 묻어버린 진실은 쉽게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다. 태평양전쟁 발발 2개월 만에 발생한 참사에 일본과 탄광회사는 국민 사기저하를 이유로 자국민과 강제징용된 조선인의 죽음을 탄광과 함께 묻었다. 유가족 접근을 막았고 서둘러 인근 서광사에 희생자 위패를 마련하고 일부 유족들에게만 위로금을 지급했다. 결국 일본이 패전한 1945년, 조세이탄광은 폐광됐고, 그 안에 수장된 희생자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양심적인 역사학자 야마구치 다케노부씨가 1976년 세상에 처음 진실을 알렸고, 1991년 부당한 인권침해 행위에 시민단체 조세이역사모임이 발족하고 활동을 전개하면서 전모가 밝혀졌다. 조세이역사모임은 2013년 사고해역 500m 떨어진 집을 매입해 추모비를 세우고 추모광장을 조성했다. 최근 외교부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조세이탄광 현지 방문을 요청,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다.

이노우에 료코 조세이역사모임 공동대표는 “강제연행, 강제징용 같은 비극의 현실을 조세이탄광 희생자로부터 배워야 한다”며 “일본 정부와 2번의 간담회를 갖고 유골발굴과 반환 등 현지조사를 위해 노력 중이다. 희생자들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을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에서 우베시를 찾은 유족들이 수몰된 친지들에게 차를 올린 뒤 절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우베시를 찾은 유족들이 수몰된 친지들에게 차를 올린 뒤 절을 하고 있다.

조세이탄광 갱도 붕괴로 3일 동안 물기둥이 솟구쳐 오르던 숨구멍 ‘피아’를 보며 오열하는 유가족들이 있었다. 1993년부터 조세이역사모임과 추모의식을 해오고 있는 유족들은 이날도 망망대해에 덩그러니 솟은 ‘피아’만 바라봐야 했다. 손봉수 사무국장이 대독한 김형수 한국조세이탄광희생자유족회장의 인사는 차라리 절규였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석탄을 캐다 수장돼 77년이란 세월을 바다 밑 진흙 속에 묻혀 한 많은 세월을 보내고 있는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 말을 잇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하루속히 유골 발굴에 앞장서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어머니가 8살때 할아버지가 조세이탄광에 수장됐다는 송정미씨의 눈시울은 위령재 내내 붉게 젖어있었다.
어머니가 8살때 할아버지가 조세이탄광에 수장됐다는 송정미씨의 눈시울은 위령재 내내 붉게 젖어있었다.

사부대중의 간절함은 스님들의 천도의식과 혼연일체가 돼 사고해역을 장엄했다. 청소년들로 구성된 아랑 가야금단의 구슬픈 가야금연주와 스님들의 장엄염불은 영령들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반야용선이었다. 몇해 전 돌아가신 어머니 사진을 들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사고해역에 처음 방문한 유족 송정미(61, 대지혜)씨가 붉어진 눈으로 탄식을 토했다.

“피아를 보고 있자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답답했을지, 제 가슴이 너무 답답해요...”

이날 위령재가 봉행된 우베시에는 봄이 완연했다. 그러나 1942년의 겨울에 멈춰 버린 조세이탄광의 바다 밑은 찼다. 희생자들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 남겨진 이들에게 봄은 아직이었다.

우베=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486 / 2019년 4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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