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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이탄광 희생자 유족회 양현 부회장

  • 교계
  • 입력 2019.04.14 10:21
  • 수정 2019.04.14 10:22
  • 호수 1486
  • 댓글 0

“바닷속 가족 유골 반드시 고향 땅에 모셔야”

양현 유족회 부회장.
양현 유족회 부회장.

“저 숨구멍(‘피아’)과 갱도를 지지하는 갱목 하나 믿고 해저탄광에서 강제노역을 하셨을 텐데….”

양현(73) 한국조세이탄광희생자유족회 부회장은 조세이탄광 사고해역에 찾을 때마다 삼촌의 고역스럽던 과거를 떠올려본다. 1993년 처음 이곳에서 추모행사를 갖고자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널 때도 마찬가지였다. 긴 시간 배를 타면서 느낀 답답한 심정은 강제징용자 신세로 검은 바다 건너편 이역만리로 실려 온 삼촌의 심정을 헤아리기도 했다.

“삼촌의 이름은 양임수입니다. 아버지에겐 3형제가 있었는데 둘째였지요. 할머니에게서만 듣던 삼촌 이야기를 이곳에서 애써 떠올려 보지만 삼촌은 저 바닷속 깊은 곳에 계시네요.”

1939년부터 조세이탄광에 끌려온 조선인은 3년 동안 총 1258명.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일찍 이주해 광부로 일하는 조선인도 있었지만 대부분 강제로 징용됐다. 이곳에서 수몰사고를 당한 조선인 희생자 136명은 제각각 고향이 다르다. 경남 32명, 경북 68명, 전라 7명, 충남 8명 등이다. 연령대는 20대 73명, 30대 29명, 40대 24명, 10대와 50대가 각각 4명이었다. 고향이 포항인 앙현 부회장의 삼촌은 19살의 나이로 고된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조세이탄광은 거미줄처럼 막장이 이어져 해저로 10km 넘게 뻗어 있고, 갱도가 얕아 지나가는 배의 엔진음이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탄광회사는 해저채굴 제한구역에서까지 석탄을 캐게 했으며, 더 많은 생산량을 위해 갱도를 지지하는 나무 일부를 제거하기도 했다. 어쩌면 사고는 예견된 일이었다.

“그나마 관음종 등 한국불교계의 노력으로 예전보다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게 돼 천만다행입니다. 유족들의 바람은 그저 찬 바다에 있는 우리 가족들의 유골이 고향 땅에 묻히는 것 뿐입니다.”

우베=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486 / 2019년 4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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