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4일 오전 10시, 서울 돈암동 흥천사길을 오르는 이경옥(81) 할머니의 발걸음이 부산하다. ‘서둘러 흥천사를 가야 한다’며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마음 같지 않다는 분위기다. 매년 흥천사(회주 금곡 스님) 경로잔치에 참가했다는 이경옥 할머니는 “돈암동에서만 수십 년 살았는데, 요즘처럼 좋은 날이 별로 없었다”며 “흥천사가 말끔히 정돈되면서 새로운 공원이 생겼고, 사찰에서 지역주민들에게 늘 좋은 일을 하니 이보다 좋은 것이 또 어디 있느냐”고 했다.
같은 시각, 흥천사 입구는 노인잔치에 참가하려는 어르신들로 북적였다. 이날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었지만 뱀이 똬리를 틀 듯 흥천사 전각을 돌아 내려온 어르신들의 긴 행렬은 일주문을 넘어 돈암2동 주민센터 앞까지 이어졌다.
‘꿈이 이뤄지는 도량’ 돈암동 흥천사 경로잔치는 이미 지역의 명물이 된 지 오래다. 2011년 흥천사를 조계종으로 귀속시킨 회주 금곡 스님은 이듬해부터 지역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경로잔치를 시작했다. 혹서기와 혹한기를 제외하고 매년 4~5차례 경로잔치를 열어 어르신들에게 점심공양을 올리고, 사찰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물세트를 나눴다. 비록 흥천사 복원 불사로 사찰 재정이 넉넉하지 않지만 금곡 스님은 경로잔치를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스님은 늘 “흥천사가 새롭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애정과 관심 덕분”이라며 “비록 넉넉하지는 않지만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공양 한 끼라도 올리겠다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금곡 스님은 이날도 아침부터 절 입구로 나와 어르신들을 맞이했다. 스님은 “비도 오고 날씨도 추운 데 이렇게 많은 어르신들이 흥천사를 찾아주셔서 고맙다”며 “점심공양을 맛있게 드시고 선물도 많이 받으셔서 늘 기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고 인사했다.
흥천사는 이날 경로잔치를 위해 새벽부터 자원봉사자들이 나와 임시공양간과 사찰 전각 주변에 대형 천막을 설치하고, 경로잔치를 찾은 어르신들에게 점심공양을 올렸다. 또 커피와 라면, 떡 등을 담은 선물 2000인분도 따로 준비해 한 분 한 분에게 나눠줬다.
돈암동 인근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정군자(82)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해 외부활동을 잘 하지 않지만 흥천사 경로잔치는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다”면서 “흥천사가 지역주민들을 위해 이렇게 좋은 일을 많이 하니 불자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마음 같아서는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싶은데 이렇게 선물만 받아가니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정릉 2동에 산다는 김문자(78) 할머니도 “흥천사 경로잔치에 3년째 참여하고 있다”면서 “요즘 가정에서는 어른들을 잘 모시지 않는 데 절에서 이렇게 좋은 일을 많이 하니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고 했다.
이날 흥천사 경로잔치에는 이승로 성북구청장을 비롯해 유승희 국회의원, 김춘례 서울시의원, 임현주 성북구의원, 정수영 돈암2동장, 박상찬 돈암2동 주민자치위원장, 김영희 전 주민자치위원장 등도 참석해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한편 흥천사는 이날 이승로 성북구청장에게 이웃돕기성금 1000만원도 전달했다. 이에 성북구청은 “흥천사가 관내 어려운 이웃을 위해 꾸준한 나눔으로 힘든 이들에게 등불이 되어주었다”며 “밝은 성북구를 만드는 데 기여한 공이 크므로 성북구민의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모았다”며 감사패를 전달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486 / 2019년 4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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