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
  • 정리=남배현 모과나무 출판사 대표
  • 승인 2019.04.16 13:30
  • 호수 14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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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생각 일어나기 이전 본마음에는 번뇌망상 자체가 없습니다”

도신 선사, 호북성 황매현에
사조사 개산 1000여명 수행
신심 나는 조사들 심지 법문
스승들의 헌신으로 이어져

도신은 달마와 혜가, 승찬 등
선대 조사들 일군 논밭에서
농사지어 캐기 시작한 제자

물들지 않은 그 마음 관찰해
마음 편안케 하는 안심법문
이곳에 오면 지극한 가르침
이어진 것에 환희의 감사함
혜국 스님이 3월31일 황매현 사조사에서 도신 선사의 가르침에 대해 법문하고 있다.

사조도신(四祖道信, 580~651) 대사는 부처님의 혜명을 잇고 모든 중생들에게 심지법(心地法)을 전해주시고자 호북성(湖北省) 황매현(黃梅縣) 쌍봉산 자락에 사조사를 조성하고 법을 펼치셨습니다. 바로 이곳이 사조사(四祖寺)의 조사전으로 아주 의미가 큰 도량입니다.

우리가 화두를 받을 때 제일 먼저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 내용은 ‘달마대사께서 인도에서 중국 땅에 무엇을 가지고 오셨습니까’라는 의미입니다. 달마대사께서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분은 양나라 초대황제였던 무제(武帝)입니다. 그 당시까지 중국에 부처님 법이 어찌 전해졌습니까? 걸어서 걸어서 인도에 가서 화엄에 대해 배워온 사람은 화엄종을 세워서 가르쳤고, ‘법화경’을 배워온 사람은 ‘법화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하며 서로 교리만 가르쳤을 뿐 우리 마음을 가리켜 ‘부처’라고 하는 법은 아직 중국에 들어오기 이전이었습니다. 

심지법(心地法)이 들어오기 이전이기 때문에 인도에서 부처님 법을 직접 이어받은 대단한 분이 오셨다 하니 양무제가 한걸음에 달려 나옵니다. 양무제는 출가를 세 번이나 한 분입니다. 출가를 했던 양무제는 왜 속가로 갔습니까? 황제로 왜 다시 돌아갔습니까? 그 당시는 출가한 분을 다시 모시고 가려면 엄청난 돈을 내고 모시고 갔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대신들이 얼마나 황제를 존경했는지 ‘당신 같은 황제가 아니면 안 된다. 반드시 다시 모셔야 한다’ 하며 돈을 모아서 바치고 억지로 모셔가기를 세 번이나 한 그런 분입니다. 양무제는 부처님 법이 좋아서 살생을 금했고 사찰을 아주 많이 건립하고 출가승을 많이 배출하였습니다. 그러한 선행이 엄청난 복전이 된 것은 틀림없는 인과일 겁니다. 

그러나 달마대사는 무엇 때문에 중국에 오신 분입니까? 그런 속세의 복을 아무리 많이 지어서 잘 살아도, 하물며 도솔천에 태어나더라도 그 복이 다하면  떨어지고 또 떨어지며 반복합니다. 이렇게 반복하는 삶을 윤회라고 합니다. 달마대사는 생사윤회에서 벗어나서 두 번 다시 생사를 반복하지 않는 우리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걸 알려주려고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다른 건 일체 귀담아 듣지 않고 당신이 그날 당장 사약을 받는다 해도 본래 부처님께서 전하려고 했던 그 법 하나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것을 교리적으로 잘 나타낸 것이 바로 ‘금강경’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러한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법화경’과 ‘열반경’을 8년 동안 설하셨습니다. 그럴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금강경’을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공(空)의 도리를 21년 동안 설하셨습니다. 21년 동안 부처님은 공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거울에 비추면 그것은 비춰진 그림자이듯이 전부다 우리 마음이 비춰진 환영(幻影)이고 공이라는 가르침을 21년간 가르치셨기 때문에 ‘법화경’ ‘열반경’을 8년 만에 설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공은 바로 부처님의 핵심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진공묘유(眞空妙有), 일체의 분별이 끊어진 자리를 말합니다. 이 지구상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 가운데 위대한 것중 하나는 그 당시 태양신, 나무신, 올림푸스신, 제우스신 그런 신들을 뭉쳐서 하나의 유일신, 여호와를 만든 것입니다. 그 유일신을 만든 것은 실로 위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신학자들이나 앞서가는 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일신만 있으면 내가 옳다 네가 옳다 하면서 끝없이 전쟁이 일어날 것을 관(觀)하시고 부처님은 500년 전에 이미 공을 설하셨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부처님이 공성(空性)을 설하셨기 때문에 1000년 뒤에 인도에서 ‘0’(제로)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큰 수라 할지라도 ‘0’을 곱하면 ‘0’이 됩니다. 그것은 인류의 지혜에 관한 혁명적 발견입니다. 부처님이 공을 설하지 않았으면 인도에서 ‘0’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0’을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전하려고 달마 스님께서는 바로 동쪽으로 오신 겁니다. 

양무제는 인도에서 너무나도 위대한 스님이 오셨다는 말에 남경까지 한걸음에 달려오셨습니다. 남경 계명사라는 절까지 내려옵니다. 우리 순례대중들이 천동사에서 본 글자가 있었는데 무엇입니까? ‘출제호진(出諦虎震)’이라, ‘황제가 한번 출현하니 우레 소리 진동하는구나!’라는 의미입니다. 그 당시 황제라는 사람은 우리의 생명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눈이 부리부리 한 달마대사가 황제를 떡하니 쳐다보니 양무제가 고개를 못 들었다고 합니다. 양무제가 달마대사에게 물었습니다. 

“그 동안 내가 부처님을 위해 쌓은 공덕이 이런 정도인데 그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

달마 대사가 대답했습니다. 

“아무 공덕이 없습니다.”

그냥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법을 전하려고 왔다면 “정말 복을 많이 지었네요”라고 했을 것인데, 달마대사는 “마음 깨닫는 법이 아니면 언젠가는 그 무엇이든 없어진다”라고 한 겁니다. 부처님이 전한 그 마음 법인 허공은 고려 때 허공이나 조선 때 허공이나 지금의 허공이나 만년 뒤 허공이나 변하지 않습니다. 오직 변함없는 그 마음 하나 전하려고 왔기 때문에 그 외에 무슨 공덕이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양무제로서는 참으로 기가 막혔을 겁니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부처님 법에서 이렇게 극악 무식한 놈이 있나, 아무리 큰스님이라지만 뭐 저런 놈이 있나 싶어서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냐, 제일 위제는 무엇이냐,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달마대사는 ‘확연무성(廓然無聲)’ 딱 네 글자 외에 말을 하지 않습니다. 확연해서 너니 나니 할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공의 세계는 당신 물음의 자리가, 그 자리가 그 자리이기 때문에 누구누구니 분별하면 이미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리 답을 하니 양무제가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을 겁니다. 알아듣지 못하니 달마대사는 소림사로 발길을 옮깁니다. 달마대사는 오직 이 법 하나 전해지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고 수백만 명이 있더라도 그 법 하나 전하지 못하면 자기는 죽은 목숨이기 때문에 소림굴에서 9년 동안 앉아서 면벽수행에 매진합니다. 여기서 9년은 마음의 9년이지 굴 안에서의 세월 9년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일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오직 공성의 법 하나만 전하겠다고, 그 일념으로 9년을 있었는데 이조혜가(二祖惠可, 487~593) 스님이 찾아옵니다. 눈 위에서 온몸이 얼어서 오른쪽 팔을 끊어야 할 정도가 된 혜가 스님은 믿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꽉 차있는 상태가 되어 잡념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혜가 스님을 본 달마대사는 “너는 누구냐? 너는 죄가 많아서 깨닫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 죄를 한번 가지고 오너라”라고 이릅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도리를 물었는데 혜가는 이에 답하지 못했습니다. 달마대사는 과연 몇 명한테 참선법을 전했을까요? 정말 몇 안 되는 사람에게만 참선법을 전합니다. 대도인이라는 소문은 크게 났지만 도량을 열지 못하고 가셨습니다. 혜가 스님도 마찬가지로 도량을 열지 못했습니다. 삼조승찬(三祖僧璨, ?~606) 스님까지도 참선법을 펼치지 못하셨습니다. 

바로 사조도신 스님이 여기 황매현 쌍봉산에 오셔서 1000명의 수행자들이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는 화두 참선이 없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안심법문이라 합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법문, 즉 본래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 본마음에는 번뇌망상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바닷물 자체에는 파도가 없다, 파도란 바닷물이 바람에 의해서 약간 모양이 변형됐을 뿐이지 파도가 아니라 바닷물이 변형된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번뇌망상으로 죄를 지어봐야 원래 마음은 부처바다라는 마음에서, 습관이라는 바람에 의해 잠깐 환영이 일어날 뿐이지 그것은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입니다. 바로 여기서 법문이 시작합니다. 

그러한 지혜의 안심법문은 오조홍인 조사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오조사가 멀지 않습니다. 사조도신 스님과 오조홍인 스님이 동산에서 법문했기에 동산법문, 안심법문이라 합니다. 화두(話頭) 참구 전에 바로 마음을 직관하는 그것은 먼저 스승에 대한 철저한 믿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생각 일어나기 이전 그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물들지 않은 그 마음을 바로 보라는 가르침으로 깨닫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조사선이라 합니다. 

이후 조사선을 통해 깨달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기 시작합니다. 당나라 때 와서는 말만 따라가고 직접 실천해서 깨닫지를 못합니다. 송나라 때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스님에 이르러 이렇게 하다가는 깨달음에 관해 큰일이 난다 해서 깨달았는지 점검하게 됩니다. 깨달은 견지에서 보면 똑같이 알 수 있으니 이제는 숙제를 내 깨달음을 점검하게 됩니다. ‘한 손바닥에서 나는 소리가 무엇이냐!’ ‘뜰 앞에 잣나무니라!’ 하고 말하니 깨닫지 않고는 알아듣질 못합니다. 스승의 말을 듣고 그 가르침으로 깨닫는 조사선에서 폐단이 생겨 깨달은 말만 앵무새처럼 외우니깐 몰록 깨달은 분이 자기 마음을 보여준 걸 화두라고 합니다. 대혜 스님 때 와서 간화선이 정형화 됐을 뿐이지 조사선과 간화선은 본래 하나입니다. 

신심 나는 심지법문은 달마대사에서 다시 혜가 스님으로 이어집니다. 그 후 삼조승찬 스님이 좌탈했습니다. 초조, 이조, 삼조 스님들은 홀로 그렇게 수행에 전념하다가 입멸하셨습니다. 그러한 역대 조사님들의 희생과 가르침들이 모이고 이어져서 바로 이곳 사조사에서 안심법문이 나온 겁니다. 선대 조사님들의 희생이 없는 법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달마, 혜가, 승찬 스님께서 도신 대사로 하여금 바로 이곳에 도량을 세워 1000여명의 대중이 모여 수행하게 했고, 오조홍인 대사 역시 사조사에서 스승을 모시고 살다가 바로 옆으로 갔습니다. 그 당시 가르침을 우리는 조사선 법문이라 하고 앞서 말했듯이 동산법문, 안심법문이라고도 합니다. 이 도량에 오면 그러한 지극한 법의 이어짐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사조도신 대사가 선대 스승 세 분이 일군 논밭에서 농사를 지어 결과물을 캐기 시작한 장소가 바로 사조사입니다. 여기에 사조사의 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조사를 참으로 좋아합니다.

정리=남배현 모과나무 출판사 대표 nba7108@beopbo.com


이 법문은 혜국 스님과 함께하는 중국선종사찰 순례 기간 중인 3월31일 사조사 조사전에서 있었던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의 법문을 정리 요약한 것이다.

 

[1485 / 2019년 4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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