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말, 고귀한 습관
사랑스러운 말, 고귀한 습관
  • 금해 스님
  • 승인 2019.04.16 15:01
  • 호수 14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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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나 표정으로 상처 주기도 해
뛰어난 ‘말하기 모범’ 은 부처님
부지런히 독송해 배우고 익혀야

한 달에 한 번 있는 명상법회는 자신을 관하는 수행 시간이며, 동시에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 놀이 시간입니다. 

처음 만나는 이들과 인사 나누고 서로를 소개해 주는 첫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의 파트너와 10분 정도의 짧은 미팅을 하고, 그 후 형식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파트너를 소개합니다. 그러던 중, 굳은 얼굴로 앉아있던 한 보살님이 부담스럽다며 참가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파트너는 물론, 모두가 어쩔 줄 모르며 당황했습니다. 

사실,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저는 소개하는 파트너보다 말하는 본인을 더 많이 봅니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와 말투, 표정, 몸의 동작에서 그의 성격이나 마음 상태 등을 알게 됩니다. 그의 성향이 소극적인지, 적극적인지를 알고, 마음의 방향이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를 압니다. 사투리를 쓴다면 어느 지역에서 자랐는지까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말 속에는 이토록 많은 것이 담겨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필릉가바차’라는 수행자가 있었는데, 아라한과를 성취했으며 신통력에 자유자재 했습니다. 그는 탁발을 위해 항하강을 건널 때마다 강의 여신에게 “이 종년아, 내가 건너갈 수 있도록 강물을 둘로 갈라놓아라”라고 외쳤지요. 여신은 그의 모욕적인 말에 기분이 나빴지만 아라한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 항상 강물을 둘로 갈라 길을 내주었습니다. 

어느 날, 여신은 참다못해 부처님께 필릉가바차가 자신에게 욕을 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부처님은 필릉가바차를 불러 여신에게 참회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바로 참회하며 “이 종년아! 내가 사과하니, 나의 참회를 받아라”라고 말했습니다. 여신은 더욱 화를 냈고, 주변 사람들은 그를 비웃으며 조롱했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입을 막으며, 어쩔 줄 몰라 했지요. 

그때 부처님께서는 “필릉가바차의 말투는 500번의 전생동안 계속, 가장 높은 계급인 바라문으로 살면서 아랫사람을 하대한 업의 습관 때문이다. 업신여기거나 교만한 마음에서 그런 것이 아니니 이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신은 그제서야 그를 오해했음을 알았습니다. 

우리들은 자신의 말하는 습관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말투나 표정, 행동으로 인해 서로 오해하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마음이 아무리 다정해도 말이 거칠면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말을 아무리 잘해도 마음이 깊지 않으면 사귐이 길지 않습니다.

명상법회 참석을 거부했던 보살님을 아이처럼 보듬으며 대화를 끌어가니,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 했습니다. 법회가 끝날 때쯤에야 대중들은 보살님의 거부가 싫다는 뜻이 아니라 내성적인 성격 때문인 것을 알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했던 말이니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람 사귐에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랑스럽게 말하고, 고귀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참되고 깨끗한 인연으로 오래 마주 이야기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금해 스님

부처님은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자비로운 사랑으로 고귀한 가르침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니, 가장 뛰어난 ‘말하기 모범’은 바로 부처님입니다. 부처님 말씀인 경전을 부지런히 독송하고 배우고 익힌다면 사랑스러운 언어로 말하는, 가장 고귀한 구업(口業)을 얻게 될 것입니다.


금해 스님 서울 관음선원 주지 okbuddha@daum.net

 

[1485 / 2019년 4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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