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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이모님 막내딸의 두 모습

기자명 이제열

“영정 속 엄마가 무섭게 쳐다보잖아”

가족 사랑 독차지한 막내딸
엄마 죽자 비통함에 몸부림
밤에 영정 무섭다며 호들갑
사람들 마음도 이와 비슷해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었더라도 죽은 이후에는 가까이 하기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살아서는 느끼지 못한 혐오와 두려움이 죽음 앞에서 일어난다. 예전에 이모님 장례를 치르면서 있었던 일이다.

이모님은 아들을 다섯이나 낳고 여섯 번째에 그토록 바라던 딸을 낳았다. 늦게 얻은 귀한 딸이었던 만큼 이모님은 물론 가족들로부터 무척이나 사랑을 받았다. 어느덧 그 딸이 장성해 시집갈 나이가 됐는데 이모님이 숙환으로 세상을 떠나게 됐다. 워낙 술을 좋아했던 이모부가 어린 아이들을 남겨놓고 일찌감치 돌아가셨기에 이모님은 남편도 없이 자식들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그렇기에 자식들 슬픔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중 가장 슬퍼한 것은 막내딸이었다. 딸은 어머니를 잃은 비통함에 몸부림치고 통곡했다. 보는 사람들이 안쓰러움을 넘어 모두들 딸을 걱정할 정도였다.

예전에는 장례를 병원이 아닌 고인이 살던 집안에서 치렀다. 누구나 당해보면 실감하듯 장례를 모신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이모님 장례도 다를 리 없었다. 장례 마지막 날에는 너무 힘이 들다보니 상주들과 친인척들이 이 방 저 방에 몸을 뉘어 잠들을 청했다. 눈을 붙이기 위해 잠시 전등들도 꺼놓았다. 불빛이라고는 시신이 모셔진 안방의 작은 촛불뿐이었다. 나도 마루 한쪽에서 웅크리고 누워 잠들었다. 시끌벅적했던 낮과는 대조적으로 무척이나 적막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이모님 시신이 모셔진 안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엄마, 나살려!” 바로 막내딸 목소리였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사람들의 시선이 안방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공포에 질려 울부짖는 막내딸 모습이 보였다.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두려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사람들은 이런 막내딸 행동에 이구동성으로 놀라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그 대답이 참으로 황당했다.

“왜들 나만 저 방에 남겨두고 혼자 자게 하냐고? 눈을 떠보니까 아무도 없고 영정사진 속에 엄마가 날 쳐다보잖아! 너무 무서워!” 사람들은 막내딸의 이런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그때 우리 어머니가 막내딸에게 꾸짖듯이 이렇게 말했다.

“왜 엄마 귀신이라도 나왔니? 혼자 가기 싫어서 너 데리고 간다더냐? 네 엄마가 네 꼴을 보면 어떻겠냐? 네 엄마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리 호들갑이야? 삶과 죽음의 길이 이렇게 다르구나!” 그러자 막내딸은 이런 우리 어머니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면서 “이모는 왜 그런 말씀하세요? 더 무서워 죽겠네.” 하였다.

죽음은 인간과 인간 사이를 그렇게 갈라놓는다. 조금 전까지도 엄마 죽었다고 절규하던 막내딸 마음은 무엇이었으며, 죽은 엄마가 무섭다며 놀라 뛰쳐나온 막내딸 마음은 또 무엇이었을까? 생과 사의 경계를 두고 보여주었던 막내딸의 모습은 실상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이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생명의 실상을 바로보지 못하는 무명과 존재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래는 존재에 대한 갈애와 집착에 사로잡혀 이 세상에서 떨고 있는 인간들을 본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다양한 존재에 대한 갈애와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죽음의 입구에서 울고 있다. 내 것이라고 집착하며 허우적거리는 그들을 보라. 물이 말라가는 개울의 물고기와 같다. 이것을 보고 내 것을 버리고, 존재에 대한 집착을 만들지 말고 정진하라.”

중생은 생명의 무상함을 알지 못하고 나[我]와 나에 속한 것들[我所]이 실재한다고 착각한다. 또한 나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갖가지 괴로움을 당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혐오는 결코 죽음에 있지 않다. 단지 죽음을 바라보고 죽음을 맞이하는 중생의 마음에 있을 뿐이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85 / 2019년 4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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