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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우공의 통찰력 없음

기자명 김정빈

“미련하여 아무것도 못하니 죽일 필요도 없구나”

자신의 동맹국 친다고 하는 데도 
구슬과 말 선물 보자 동조한 우공
자국 통과해 친다는 적국의 계책
궁지기도 알만한 수인데도 속아
죽일 필요 없을만큼 통찰력 부재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춘추시대, 우(虞)나라는 강대국인 진(晉)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약소국이었다. 언제 진나라가 쳐들어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우공은 그 역시 약소국인 괵(虢)나라와 화친을 맺고 만일의 경우 서로 구원하기로 맹약하였다.

괵공은 성정이 교만하고 싸우기를 좋아했다. 그가 자신보다 약한 주변 지역을 약탈하자 침략당한 지역 사람들이 진나라에 가서 괵국을 토벌할 것을 청했다. 진헌공(晉獻公)이 순식(荀息)에게 대책을 묻자 순식이 말했다.

“우국과 괵국이 서로 화친을 맺고 있는 상태에서 괵을 칠 수는 없습니다. 먼저 괵국의 힘을 약화시켜야 합니다. 괵공은 여색을 탐한다고 하니 그에게 미녀 수십 명을 보내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그는 여색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고 충신을 물리칠 것이니, 그때 괵국을 치면 손쉬울 것입니다.”

그 계책을 받아들여 헌공은 미녀들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쳐 괵으로 보냈고, 괵공은 그때부터 미인들과 음주가무를 즐기기 시작했다. 헌공은 한편으로는 괵국과 화친을 맺고 다른 한편으로는 융적(戎狄)에게 선물을 보내면서 괵국을 공격하게 했다. 헌공이 순식에게 물었다.

“지금 융과 괵이 대치 중인데, 이때 괵국을 치면 어떻겠소?”
“먼저 우나라부터 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군에게는 아끼는 보배구슬과 천리마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들을 선물로 주시면 우공의 마음이 크게 동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가장 아끼는 보물이오.”

순식이 웃으며 말했다. “주군께서는 장차 우나라를 차지할 예정 아닙니까?”

순식의 계책을 받아들여 헌공은 순식에게 구슬과 말을 주어 우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우공은 헌공이 자신의 동맹국인 괵국을 치려 한다는 말을 듣자 대노했다. 그러나 헌공이 보내온 선물을 보자 마음이 달라져 기쁜 기색이 가득했다. 그가 구슬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런 선물을 보낸 것은 바라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이오.”
“괵국이 우리나라 남부 촌락을 침범해오곤 합니다. 그래서 귀국을 통과하여 그들의 배후를 치고자 합니다”

우공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려 하자 궁지기(宮之奇)가 반대했다.

“저 진나라는 이웃나라를 공격하여 자기 것으로 만든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진은 괵보다 열 배나 강하오. 지금 그 강한 진국을 얻었는데, 약한 괵국을 잃은들 무엇이 해롭단 말이오?”

우공의 허락을 얻은 헌공은 이극(里克)을 대장으로 삼고 순식을 부장으로 삼아 전차 400승을 동원해 괵을 토벌하게 했다. 군마가 우국을 통과할 때 우공이 찾아와 자신도 진군과 함께 괵국 토벌에 참여하겠노라고 하자, 순식이 말했다.

“그보다는 하양관(下陽館)을 헌납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하양관은 우리 관할이 아니라 괵국의 관할입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제가 전차 100승을 드릴 테니 그 안에 병사들을 숨겨 둔 채로 하양관에 가서 융적을 치는 데 도움을 주러 왔다고 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이 귀공을 받아들일 터이니, 그때 병사들과 함께 내응하시면 저희가 밖에서 공격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전략에 따라 이극과 순식은 쉽사리 하양관을 취할 수 있었다. 괵공은 다른 곳에서 융적과 싸우던 중 하양관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수도인 상양(上陽)으로 돌아왔다. 진군이 상양을 포위하고 넉 달을 떠나지 않자 괵공은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이극은 병을 핑계삼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우국의 수도에 머물렀고, 머지않아 헌공이 도착했다. 우공은 헌공을 맞아 교외로 나가 사냥을 즐겼다. 그때 우공에게 사람이 달려와 성중에 불이 났음을 알렸다. 놀란 마음으로 급히 성으로 돌아가던 중 그는 피난 가는 백성들을 통해 성이 진군에 의해 점령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자신의 성에 도착하자 성 위에서 진군의 장수가 말하는 것이었다.

“지난번에는 길을 빌려주시더니 이번에는 성까지 빌려주십니다 그려.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화가 극도로 치민 우공이 병사들에게 성을 공격할 것을 명령하려는데, 또 한 사람이 달려와 보고했다.

“후군이 진나라 군대에 의해 차단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우공은 진나라에 철저하게 속은 것을 깨닫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해 마지않았다. 그때 헌공이 도착하여 만나기를 청했다. 우공이 어쩔 수 없이 나아가자 헌공이 웃으며 말했다.

“과인은 지금 예전에 귀공에게 빌려 준 구슬과 말을 되찾으려고 온 것이오.”

헌공이 우공을 죽이려 하자 순식이 말렸다.

“우공은 미련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이 말을 받아들여 헌공은 우공을 죽이지 않고 다른 구슬과 말을 보내어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나는 귀공이 길을 빌려준 은혜를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오.”

선(禪)은 ‘발아래를 비추어봄(照顧脚下)’을 말하고 위빠사나(vipassana)는 ‘있는 그대로 봄(如實知見)’을 말하는데, 조고각하와 여실지견은 오늘날 ‘통찰’이라는 말로 대체되어 더많이 쓰이고 있다.

문제는 ‘이 뭣고?’를 들고 ‘신수심법(身受心法)’ 알아차리기를 수행한다고 해도 지금의 방식으로는 현실적인 통찰력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필자는 선과 위빠싸나를 수행함으로써 실제 생활에 유용한 통찰력을 얻은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선과 위빠사나를 수행하여 선정의 깊이나 지극한 행복감을 말하는 사람은 있어도, 우공이 처한 상황에서 헌공의 계략을 간파해내는 통찰력을 얻었노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수행자 이전에 한 사람의 현실인으로서, 우리에게 더 먼저, 더 긴요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통찰력이다. 수행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일 수는 없다. 우공의 어리석음을 철저하게 분석해내는, 헌공의 교묘한 언사를 밝게 들여다보아 결코 남에게 속지 않는 선사 내지 명상 대가를 보고 싶다.

그런 선적 경지에 이르지 못한 선사는 선사가 아니고, 그런 명상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명상 대가는 명상 대가가 아니다. 그들은 자기 세계 안에서 마음을 논하고 깨달음을 말하는 좁은 스승, 반쪽 스승, 허약한 스승들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수선법(修禪法)과 위빠사나법을 보강하는 길을 다양한 각도에서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85 / 2019년 4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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