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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하고 다른 사람 속이면 오만이 싹틉니다

중국 정공 스님의 '무량수경청화' 법문 ㊹

거짓말은 성실하지 않으며 
이간질하는 말은 시비불러
거친 말은 사람 존엄 훼손
​​​​​​​
큰 거짓말 하면 아비지옥행
양심 가책도, 여론 비난도
거짓말하는 이는 외면할 뿐

정공 스님은 사회적으로 큰 거짓말을 하면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거짓말하는 사람은 습관처럼 양심의 가책도, 여론의 비난도 외면한다고 강조한다. 

“세상 사람들은 선행을 닦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이간질하는 말과 거친 말, 거짓말과 현혹시키는 말로써 착한 사람을 미워하고 질투하며 현명한 사람을 헐뜯고 부모님께 불효하고 스승과 어른을 낮추어 보아 버릇없이 굴며 친구에게 신의가 없어 성실하다고 인정받지 못하느니라.(世間人民不念修善 兩舌 惡口 妄言 綺語 憎嫉善人 敗壞賢明 不孝父母 輕慢師長 朋友無信 難得誠實)” 

이 단락은 거짓말의 악을 말합니다. 거짓말은 성실하지 않습니다. 성실하지 않으면 도를 닦아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도를 닦으려면 진성심이 있어야 합니다. 말이 성실하지 않고 마음이 헛된데 어떻게 도업을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없으면 사회에서 발을 딛고 생존할 수 없습니다. 한 때는 속일 수 있으나 오랫동안 속일 수는 없습니다. 

‘이간질하는 말’은 시비를 부추기고 ‘거친 말’은 사람의 존엄을 해치며 ‘거짓말’은 고의로 사람을 속입니다. ‘현혹시키는 말’은 교언영색으로 지혜가 없고 변별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듣기에 좋은 말을 하면 종종 속아 넘어갑니다.

현혹시키는 말은 그 범위가 매우 넓은데 광고도 그 한 부류입니다. 음악 영화 연극 중에서 그 내용이 사람을 속여서 살생과 도둑질 음행을 짓도록 만드는 것은 모두 현혹시키는 말입니다. 동양의 옛날 예술은 생각에 사특함이 없음(思無邪)을 표준으로 삼았습니다. 말하자면 연극 소설은 모두 사회 대중을 교화하고 충효절의를 드러내는 일종의 대중교육이었습니다. 따라서 연극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사회가 긍정적으로 향하도록 이끌었고 대중에게 선한 것은 무량한 공덕이 있지만 그 반대이면 악업을 짓는 것이라 가르쳤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기는커녕 그를 시기하여 해치고 파괴할 방법을 궁리합니다. 덕행이 있고 지혜가 있는 사람은 한편으로는 선한 영향을 미쳐 풍속을 바꾸고 한편으로는 사람의 본보기가 되어 그 공덕이 매우 큽니다. 그러나 착한 사람을 미워하고 질투하여 허물어 버리고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루지 못하게 하며 공덕을 따라 기뻐하지 않으며 오히려 방해하니 그 죄는 무겁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스승을 존경하며 진리를 소중히 여기면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남을 속이면 부모님과 어른을 속이고 존경하지 않으며 오만불손하게 굽니다. 이런 사람은 이익만 있으면 악한 짓도 서슴지 않고 이익이 없다면 완전히 배척합니다. 부모님과 가족조차도 알아보지 못하고 눈앞의 작은 이익만 탐합니다.

우리의 지혜와 기술은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서 얻습니다. 이는 자신에게 큰 은덕입니다. 부모님과 스승님의 은덕을 모르는데 어찌 친구에게 신의가 있겠습니까? 오늘날 사회는 확실히 이와 같아 사람과 사람이 사귀고 나라와 나라가 교류함에 있어 모두 도의가 없고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됩니다.

“그들은 스스로 존귀하고 잘났다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진리가 있다고 말하느니라. 또한 제멋대로 행동하고 위세를 부리며 다른 사람의 인격을 침범하여 그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공경하기를 바라면서 스스로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할 줄 모르느니라.(尊貴自大 謂己有道 橫行威勢 侵易于人 欲人畏敬 不自慚懼)”

거짓말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속이는 가운데 오만이 생깁니다. 이 같은 오만을 불법에서는 비만(卑慢)이라 합니다.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높고 훌륭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는 가운데 강렬한 오만이 생깁니다. 이런 사람은 절집에서는 선정을 얻지 못하였는데 선정을 얻었다고 하고 지혜가 열리지 않았는데 지혜가 열렸다고 합니다. 이는 모두 큰 거짓말에 속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큰 거짓말을 하면 삼보를 무너뜨려서 그 과보로 아비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이런 사람들은 속세에서는 권세를 믿고 제멋대로 날뛰며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침범합니다. 그런 사람의 목적은 실재로 간단하여서 다른 사람이 그를 공경하길 바라고 명성과 이익을 추구합니다. 이들은 스스로 양심의 가책도, 여론의 비난도 아랑곳하지 않아서 보고도 못 본 척하며 멋대로 행하고 잘난 체합니다.

“그들은 조복시키거나 교화시키기 어렵나니 늘 교만한 마음을 품고 있어 전생에 지은 복덕으로 아무 탈 없이 살고 있지만 금생에 악업을 지어 그 복덕이 다 소멸되면 수명이 다해 죽을 때 여러 악업에 에워싸여 돌아가느니라.(難可降化, 常懷驕慢. 賴其前世, 福德營護. 今世爲惡, 福德盡滅. 壽命終盡, 諸惡繞歸)” 

이들은 굴복시키기도 변화 개조시키기도 어렵습니다. 항상 오만한 태도를 보이고 아만에 빠져 자신을 높입니다. 이렇게 행세하는 악인은 현재 사회에서 여전히 지위와 부와 세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왜 과보를 받지 않을까요? 이는 전생에 닦은 복보가 매우 크고 이번 생에서 지은 악이 아직 무르익지 않아 과보가 아직 나타나지 않아서 입니다. 

과거 생에 큰 복보를 닦아 본래 일백년을 누릴 수 있지만 악을 저질러 오십년에 다 누리고서 복보는 점차 줄어듭니다. 이는 천지신명이 주관하여 그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업력에 속합니다. 악의 업력이 강해지고 선의 업력이 점차 약해져 선업이 악업을 감당하지 못하고 악업의 과보가 갈수록 강렬해집니다. 강한 것이 먼저 받고 강한 것이 먼저 끌고 가는 것이 이치입니다. 

수명이 다할 때 기다려 악업이 나타나면 반드시 악한 과보를 받습니다. 금생과 과거생의 원친채주(怨親債主)는 목숨 빚이 있으면 목숨을 요구하고 금전 빚이 있으면 금전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염불인은 자신이 수학하고 보시한 공덕을 회향하여 위로는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사중은혜를 갚고 아래로는 누겁의 원친채주에게 삼악도의 괴로움을 구제하여야 합니다. 내가 일생일세에 닦은 것은 모두 빚을 갚음에 있습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는 공양하고 빚을 진 사람에게는 빚을 갚으면 자기 도업에서 수 많은 장애를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사실진상입니다. 이를 진정으로 이해하면 용맹정진할 수 있습니다.

보리심을 발하고 일향으로 아미타불을 전념하여 정토에 태어나길 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한줄기 온당한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정코 성공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진정으로 세세생생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보답하고 우리와 원한을 맺은 중생을 도와서 불도를 이룰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체중생과 맺은 원한을 풀고 싶다면 우리는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여야 합니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485 / 2019년 4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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