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직지 고향 흥덕사를 폐하라

  • 데스크칼럼
  • 입력 2019.04.22 10:44
  • 수정 2019.04.23 06:05
  • 호수 1486
  • 댓글 0

흥덕사지 금당 복원했다지만
보도블록 깔린 장식용 불과
‘직지 정신’인 불교는 배제

‘세계기록유산 우리문화의 자랑 직지’를 표방하는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최근 명칭 변경 등 중장기 발전계획 마련을 위해 연구용역을 추진한다고 한다. 13만1288㎡에 지정한 직지문화특구에 흥덕사지를 중심으로 고인쇄박물관, 근현대인쇄전시관, 금속활자전수교육관과 같은 시설이 들어서고 이를 아우르는 새로운 명칭 변경도 고려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흥덕사지의 새로운 복원은 고려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 흥덕사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금속 활자본인 직지가 만들어진 역사적인 장소다. 통일신라시대 창건돼 고려말 화재로 폐사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흥덕사는 1984년 청주시 운천동 택지 공사 과정에서 절터가 발견됐다. 다음해 이곳에서 ‘흥덕사’라는 명문이 새겨진 청동 금구(金鼓)가 발견되면서 직지가 탄생한 고향임이 밝혀졌다.

세간의 지대한 관심 속에 곧바로 사적지(제315호)로 지정된 흥덕사지는 복원이 추진됐고, 1992년 4만990㎡의 부지에 80㎡(24평)의 금당(법당)이 세워졌다. 흥덕사 원형을 알 수 없기에 금당은 고려시대 대표 건축양식인 부석사 무량수전을 본떠 만들었고, 석탑은 충주 미륵리 삼층석탑을, 불상은 보물 98호 충주 철조여래좌상을 모본으로 150cm 높이의 철불좌상을 조성했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복원 정비된 흥덕사지를 방문했던 불자라면 흥덕사라는 절터[寺址]가 죽음의 터[死地]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겉모습만 금당 모습을 갖추고 있을 뿐 현판이나 주련 하나 걸려 있지 않으며, 점안식도 갖지 않은 부처님이 탱화도 없는 공간 안에 덩그러니 모셔져 있다. 절과 기도를 할 수 있는 마룻바닥 대신 울퉁불퉁 깔려 있는 보도블록을 보는 일도 민망스럽다. ‘불교성지가 아닌 사적지’라는 논리 앞에서 흥덕사 금당은 불교정신이 철저히 배제된 ‘전시용 건축물’로 존재할 뿐이다. 흥덕사 복원에 참여했던 문화재 전문위원조차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지닌 절의 기능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고 단순한 관광용으로 복원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로서 종교와 문화 기능이 상실된 사찰복원은 진정한 복원이 될 수 없다”고 통탄하기도 했다.

고인쇄박물관이 주관하는 캠프에서도 ‘직지의 고향’이라는 말이 참담할 정도로 불교는 철저히 가려진다. 미국 내 한국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오는 6월 열리는 한국문화 전통 체험에서 청주박물관, 청주 향교, 서울 창덕궁, 독립기념관 등을 돌아보고 전통옷 입기, 예절교육, 다례와 다식 체험, 전통혼례 관람 및 체험 등 프로그램이 진행되지만 정작 참선체험이나 사찰순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흥덕사지가 새롭게 복원돼야 한다는 목소리는 학계나 불교계에서 일찍부터 있어왔다. 고려말 선승 백운경한 스님이 무심선(無心禪)을 표방하고 고려사회를 불국토로 개혁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직지를 편찬했음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용환 충북대 교수는 “흥덕사지 복원은 무심의 가치를 재발견해 ‘사람의 마음이 본래 청정하여 깨끗해짐을 깨닫고 마침내 부처를 이룸’을 공동체로 현실화하는 것”이라며 직지의 정신을 대중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복원 방법과 의미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또한 지자체 등 관련 단체의 무관심과 반발로 번번이 무산되고 말았다.

이재형 국장

고인쇄박물관은 자신들 홈페이지에서 “직지의 위상이 곧 흥덕사의 위상이며, 흥덕사의 위상이 곧 직지의 위상에 직결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흥덕사지에서는 백운 스님과 직지의 정신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곧을 직(直)’에 ‘손가락 지(指)’의 직지(直指)는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본래 성품을 보고 부처를 이룬다’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의 줄임말이다. 배우는 자는 손가락에 머물러 있지 말고 달을 봐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런데 ‘직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달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인쇄술 제작지라는 손가락에만 매달리고 있는 셈이다. 참으로 놀라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엉터리 복원은 하지 않은 만 못하다. 흥덕사지 금당을 저리 흉물스럽게 방치하려면 차라리 없애라. 그것이 직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mitra@beopbo.com

[1486 / 2019년 4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