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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모리 슈워츠의 경험 벗어나기

기자명 김정빈

“세상에 매달리지 마라, 영원한 건 없기 때문이지”

교수 재직 중 루게릭병 진단받아
마지막 강의서 학생들에 병 고백
문병 온 제자에 죽음 과정 강의해
“죽음이 불행을 의미하지는 않지”

그림=육순호

1979년 봄, 미치 앨봄은 매사추세츠 월섬시에 있는 브랜다이스대학을 졸업했다. 그에게는 모리 슈워츠라는 은사가 있었다. 슈워츠는 청록색 눈동자를 가진 교수로, 귀가 크고, 코는 삼각형이며,  청록색 눈동자가 숱이 많은 잿빛 눈썹 아래에서 빛나는 은발의 노신사였다.

“계속 연락할 텐가?”하고 모리 교수가 물었고 “물론이지요”하고 미치가 말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오랫동안 미치는 모리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삶은 한가로운 게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다는 것은 그 한가롭지 않은 삶의 한복판에 뛰어든다는 것이고, 그곳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동안 미치의 마음 동네에서 모리는 점점 잊혀져갔다.

1994년, 모리 슈워츠 교수는 의사로부터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척수신경과 간뇌의 운동세포가 천천히 파괴되는 이 병은 파괴된 뇌가 지배하는 근육을 쓰지 못하게 한다. 루 게릭이라는 유명한 야구선수가 이 병으로 고통받다가 죽었기 때문에 근위축성측색경화증이라는 병명 대신 루게릭병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지독하게 고약한 병이다.

“죽을병입니까?”하고 모리가 물었고, “그렇습니다”하고 의사가 대답했다. “이런 진단 결과를 말씀드리게 돼서 정말 죄송합니다.”

병원 밖으로 나와 둘러보니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몸만은 예외였다. 얼마 안 있어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게 되었고, 다시 얼마가 지나자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걸을 수 없게 되었다. 혼자서는 수영복을 벗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제자의 도움을 받아 수영복을 벗어야 했는데, 이는 자신의 알몸을 남에게 전부 노출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해 가을, 모리 슈워츠 교수는 대학에서 마지막 강의를 진행했다. 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모리는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지팡이를 짚고 비틀비틀 강의실로 들어갔다.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루게릭병에 걸렸음을 말하고나서, 따라서 내가 이번 학기 강의를 다 마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의사는 모리에게 남은 삶의 기간을 2년 정도로 예측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부끄럽게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누구든 마지막엔 죽는다.    

“기왕이면 나의 죽음을 가치있는 일로 승화시켜야 한다. 나는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 생물의학적인 대상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인 교과서,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가에 대한, 한 전범으로서의 교과서.”

모리는 휠체어에 앉아서 지내야만 했다. 몸은 자유롭지 못했지만 정신은 달랐다. 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짧은 잠언으로 적었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인정하라”, “자신과 타인을 용서하는 법을 배워라”, “너무 늦어서 어떤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등등.

그 아포리즘이 친구들 사이에 알려졌고, 그것이 한 신문에 게재되었다. 1985년 3월, ABC TV가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는 텔레비전 화면에 잘 보이기 위해 멋진 옷으로 갈아입거나 얼굴에 화장하는 것을 거부했다. 평소의 모습 그대로 보이면서, 죽음을 맞는 자신의 마음 상태 또한 사실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사회자가 모리에게 물었다.

“천천히 쇠락하는 데 있어 가장 두려운 게 뭡니까?”
“언젠가는 누군가가 내 엉덩이를 닦아 줘야만 한다는 사실이 가장 두렵소.”

방송이 되던 날, 미치 앨봄은 은사와 1000마일 떨어진 자신의 집에서 문득 그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미치는 곧 은사를 찾아갔고, 그때부터 미치를 위한 모리의 마지막 강의가 시작되었다.

“마음을 나눌 친구를 찾았나?”하고 모리가 물었다. “지역 사회를 위해 뭔가 하고 있나?”하고 다시 모리가 물었고, “마음은 평화로운가?”하고, “최대한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고 있나”라고 또 모리가 물었다. 질문이 이어지는 동안 미치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죽어가는 것이 곧 불행해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불행한 사람들이 많지. 하지만 난 불행하지 않아.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 그런데 내가 왜 불행해야 하지?”
“난 질식해서 죽을 거야. 폐가 무너지고, 그러면 나는 숨이 막히겠지. 이 병이 내 다리를 다 잡아먹었어. 곧 팔과 손으로 올라오겠지. 그게 폐까지 올라오면…, 난 끝이야.”
그 ‘끝’이 올 때까지, 매주 화요일마다 두 사람은 만났다. 

모리가 말했다.

“나는 쇼핑을 갈 수도 없고, 은행 계좌를 관리할 수도 없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수도 없어, 하지만 나는 마음을 살 수 있고, 마음을 입금할 수 있고, 남들이 쓰레기처럼 버리는 인생의 의미라는 열쇠를 주울 수 있지.”

어느 날, 모리가 말했다.

“불교도들처럼 하게. 매일 어깨 위에 작은 새를 올려놓고는 ‘오늘이 내가 죽을 그날인가?’라고 묻는 거야.”

또 그는 말했다.

“나는 지금 ‘경험 벗어나기’를 하고 있네. 불교도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아나? 세상에 매달리지 말아라. 영원한 것은 없으므로.”
“경험을 하라고 하면서도 또 벗어나고 하는 건 대체 뭐죠?”

“경험이 자네를 온전히 꿰뚫고 지나가게 해야 하네. 그러나 감정을 자제하지 말게. 감정에 온전히 자신을 던지는 거야. 자신을 감정 안에 빠져들게 내버려 두면, 그래서 온몸이 쑥 빠져들어 가버리면, 그때는 온전히 그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되지. 그런 다음 말하게 되는 거야. ‘지금까지 감정을 충분히 경험했으니 이제 잠시 그 감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겠군’이라고 말이야.”
우리 불교계에서 위빠사나 명상이 알려진 지는 30여년이 되었고, 지금은 많은 이들이 이 명상법을 알고, 또 수행한다. 하지만 모리 슈워츠 교수는 우리 불교계에서 행해지는 설법과는 다른 어법으로 불교와 명상을 말하고 있다.

경전의 언어는 고대의 것이어서 현대인을 위한 번역 내지 부연이 필요하다. 죽음을 당면한 엄정한 환경에서 모리 슈워츠는 감정을 초연하게 지켜봄을 말한다. 필자는 적으나마의 명상 경험을 통해 모리 슈워츠가 말하는 ‘가정에 빠졌다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떤 것인지를 안다. 

모리 슈워츠는 불교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감정을 초연하게 지켜보고, 죽음을 초연하게 맞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기독교인이든, 무종교인이든, 그는 결국 불교인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86 / 2019년 4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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