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6 . 오도의 확률-상

기자명 강병균

윤회하는 생물체가 이번 생에 부처될 확률은 ‘0’

지옥·아귀·축생, 구경각 불가능
지금까지 부처가 1명뿐이라면
오도는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
삶은 무명만 낳는 화수분인가

불교는 인간으로 태어나는 게 맹귀우목(盲龜遇木)처럼 어렵다고 표현한다. 망망대해를 떠다니던 눈먼 거북이가 바다에 떠다니는 나무토막을 만나는 것처럼 어렵다는 것이다. 깨달음(구경각·究竟覺·아뇩다라삼먁삼보리: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깨달음이 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지옥·아귀·축생으로 태어나면 깨달음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고, 아수라로 태어나면 싸움질 하느라 바빠서 그리고 천인으로 태어나면 낙(樂)을 즐기느라 바빠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하니, 깨달음을 얻으려면 먼저 인간으로 태어나야 하므로 깨달음을 얻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분명히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얼마나 더 어려울까? 억 배? 조 배? 부처님 탄생 이후 지금까지 1000억명 정도 인간이 태어났다면, 그리고 부처가 된 이가 단 한 명뿐이라면, 깨달음을 얻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1000억 배는 더 어려워 보인다.

동전의 앞뒷면을 알아맞힐 확률은 2분의 1이고, 주사위 숫자를 알아맞힐 확률은 6분의 1이다.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수백만~수천만분의 1이다. 열 개의 수 중 하나를 고를 때 맞을 확률은 10분의 1일이다. 신이 자연수를 하나 택했을 때, 사람이 그걸 맞힐 확률은 얼마나 될까? 0이다. 자연수의 개수는 무한이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구골플렉스[googolplex: 1 뒤에 0이 10의 100승 개 있는 수] 자리 수를 택하면, 인간은 그 큰 수를 생각하는 데만도 수백억 년이 걸린다. 즉, 우주가 없어질 때까지도 불가능하다.

생물체가 부처가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불교에 의하면 생물체는 항상 존재했지 생겨난 적이 없으므로, 생물체는 무한한 세월 동안 무한히 윤회를 하며 살아왔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깨달음을 못 얻었다. 그러므로 생물체가 이번 (유한한) 생에 깨달음을 얻을 확률은 0이다. 무한대분의 1은 0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무한히 살고도 깨달음을 못 얻었다면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크다. 그냥 생물체가 아니라 고귀한 인간이라면 어떨까? 확률이 좀 올라갈까?

비둘기 집 원칙(pigeon hole principle)에 의하면, 지금 살아있는 생물체는 하계(지옥·아귀·축생)와 중계(인간)와 상계(아수라·천인) 중 적어도 한 곳에는 무한한 세월 동안 살았어야 한다. 세 곳에 다 각각 유한한 세월 동안만 살았다고 하면, 총 생존기간 역시 유한이 되기 때문이다(불교에 의하면 모든 생물체는 무한 살이라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만약 중계에 무한한 기간 동안 살지 않았다고 하면, 하계나 상계에 무한한 세월 동안 살았어야 한다. 이 경우 두 계 중 어느 한 계에만 무한히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리되면, 처음부터 악도(惡道)나 선도(善道)에 산 것이 되어 불교핵심 교리인 인과율(因果律)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계 사이를 윤회를 통해서 무한 번 들락날락했어야 한다. 이 경우 중간단계인 인간을 반드시 거쳐야 하므로(이걸 수학에서는 ‘중간값의 정리’라고 한다), 인간으로 산 횟수가 무한 번이 되어, 인간으로 산 기간이 무한하게 된다.

만약 태초 이래로 지금까지 깨달음을 얻은 사람 수가 유한이라면, 시간은 무한히 흘렀으므로, 깨달음을 얻을 (시간 대비 수학적) 확률은 0이다. 육도윤회를 하다가 인간으로 태어날 확률은 주사위처럼 산술적으로는 6분의 1이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을 확률은 0이다. 무한한 세월 아래서 유한 번 일어나는 사건은 일어날 수학적 확률이 모두 0이다.

인간의 삶이란 그런 게 아닐까? 아무리 오래 살아도 구원받을 확률에는 변화가 없는 게 아닐까?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화수분이 있다면, 삶이란 아무리 살아도 무명(無明)만 생산하는 화수분이 아닐까? 환망공상(幻妄空想)만 생산하는 게 아닐까?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이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 불교는 과거에 무한한 부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럼 확률 0을 벗어난다. 모든 문제는 인도인이 우주가 순환을 하고 인간도 생명체도 무한히 순환을 한다고 선언한 데 있다. 물론 인도인들의 주장에는 증거가 없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486 / 2019년 4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