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정호승의 ‘희방폭포’
100. 정호승의 ‘희방폭포’
  • 김형중
  • 승인 2019.04.23 09:40
  • 호수 14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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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념 정진해 깨달음 얻은 부처처럼
평화의 경지 갈구한 보리심 읊은 시

수행의 궁극 목표는 니르바나 
번뇌·삼독의 불길 사라진 세계
초발심 온전히 폭포에 내던져
도 닦아 부처님 되고 싶다 노래

이대로 당신 앞에 서서 죽으리
당신의 사리(舍利)로 밥을 해먹고
당신의 눈물로 술을 마신 뒤
희방사 앞마당에 수국으로 피었다가
꽃잎이 질 때까지 묵언정진하고 나서
이대로 서서 죽어 바다로 가리

폭포는 일직선으로 흐른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끊이지 않고 그대로 서 있는 듯이 흐른다. 내 마음을 임에게 보일 수 있다면 폭포처럼 하얀 마음을 굽힘이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보이고 싶다.

정호승(1950~현재) 시인은 ‘희방폭포’에서 부처님에게 시인의 마음을 폭포처럼 보이고 싶음을 노래하고 있다. 폭포처럼 그대로 서서 죽고 싶다고 표현한 것은 온전히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바쳐서 임에게 귀명(歸命)하고 싶음을 표현한 것이다.

정호승은 ‘그리운 부석사’에서도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고 읊고 있다.

폭포의 마지막 귀향처는 바다이다. ‘이대로 서서 죽어 바다에 가리’라고 하였다. 불교 수행의 궁극은 니르바나 열반(涅槃)이다. 육신의 번뇌와 삼독의 불길이 모두 사라진 고요한 죽음의 세계이다. 인간은 육신이 있는 한 고통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없다. 

시인은 소백산 희방사가 있는 희방폭포처럼 초발심이 온전하게 폭포 아래로 내던져서 백척간두 천 길 아래로 미련 없이 온 몸을 내던지고 싶다. 죽어서 고승에게 사리가 나오듯이 죽을  힘을 다하여 도를 닦아 희방사의 부처님이 되고 싶다고 노래하고 있다. 

“당신의 사리로 밥을 해 먹고/ 당신의 눈물로 술을 마신 뒤 희방사 앞마당에 수국으로 피었다가/ 꽃잎이 질 때까지 묵언정진하고 나서”라고 하였다. 수국(水菊)은 꽃모양이 부처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불두화(佛頭花)라고도 한다. 이 시에서는 성불하여 부처가 된 것을 상징하고 있다.

‘희방폭포’는 폭포처럼 투철하고 일념으로 묵언참선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어 마침내 불교의 최후 목표인 번뇌가 완전히 끊어진 평화의 경지인 열반에 이르고 싶은 보리심(菩提心)을 읊은 구도시이다.

그의 시 ‘폭포 앞에서’를 보면 죽음을 초월한 달관의 경지를 읽을 수 있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 떨어져 산산이 흩어져도 좋다 … 나는 이제 증오마저 사랑스럽다/ 소리 없이 떨어지는 폭포가 되어/ 눈물 없이 떨어지는 폭포가 되어/ 머무를 때는 언제나 떠나도 좋고/ 떠날 때는 언제나 머물러도 좋다” 애증(愛憎)과 시비(是非)의 분별을 떠난 도인의 깨달음의 경지를 내보이고 있다.

시인은 또 다른 폭포를 노래한 ‘불일폭포’에서 “폭포에 나를 던집니다/ 내가 물방울이 되어 부서집니다/ 폭포에 나를 던집니다/ 갑자기 물소리가 그치고/ 무지개가 어립니다/ 무지개 위에/ 소년부처님 홀로 앉아/ 웃으십니다”라고 읊었다. 

폭포에 절망에 빠진 자신을 던지고, 폭포 위에 피어나는 무지개처럼 부활 성불하고, 또 무지개 위에 소년부처님 홀로 앉아 웃는 모습을 본다.

시인은 폭포수 아래로 자신의 아만을 내던지고, 미련 없이 자신의 욕망과 집착을 버림으로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를 친견(親見)하려고 보타락가산이 있는 바다로 향한다.

정호승은 그의 시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기 위하여 … 눈사람을 기다리며 노래 부르네”에서 보여주듯이 자신의 눈물로 시를 쓰고, 인생의 무상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 긴 여운을 느끼게 하는 방장산(方丈山)에 앉은 시의 고수이다.

김형중 동대부여고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86 / 2019년 4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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