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이민경의 ‘절간의 만우절’(2003)
8. 이민경의 ‘절간의 만우절’(2003)
  • 문학산
  • 승인 2019.04.23 09:47
  • 호수 14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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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심으로 동승들에게 전해진 만우절 선물

화해지향 결말의 불교 단편영화
능산 스님과 동자승 일곱명의
만우절 일화 동화처럼 담아내

채식공양에 지친 동승들 위해
불상 속 파내 보시한 스님 자비

마음껏 고기를 먹고싶어 하는 
동승들의 귀여운 모습에 눈길

하늘에서 내린 ‘소시지 비’는 
능산 스님 특별한 선물이벤트
‘절간의 만우절’은 사찰에서 일어난 만우절 에피소드를 담은 불교 단편영화다. 사진은 영화 ‘절간의 만우절’과 동화책.

벚꽃은 4월의 길목에 피어나서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잎에게 자리를 내준다. 겨울의 동토라는 두꺼운 저항을 뚫고 단단한 나무 가지의 견고함을 이겨내고, 싹은 결국 돋아나 마침내 꽃을 피운다. 봄이 아름답다고 하나, 그 아름다움 속에는 잔인함도 들어있다. 어느 시인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느 감독은 4월을 아름다운 거짓말이 실현되는 달로 수정하려고 한다. 

이민경의 ‘절간의 만우절’은 만우절의 기억을 담아낸다. 4월1일은 누구에게나 허용 가능한 거짓말의 날이다. 그동안 얼마나 정직하게 살았으면 하루를 정해 서로를 위한 악의 없는 거짓말을 허용해 한 번 크게 웃을 수 있는 날을 지정해놓았을까. 아이는 거짓말과 가장 대척점에 있는 생명체이며 모두가 그들의 청정함과 순수함을 잃어버린 고향처럼 그리워한다. 철학과 종교 모두 동심을 숭배한다. 이런 연유로 아이의 마음은 예술에서 가장 빈번하게 견인하는 주제이다.  

가난한 절에 사는 능산 스님과 일곱 명의 동승이 만우절에 겪은 일을 동화처럼 담아낸 작품이 ‘절간의 만우절’이다. 이 작품은 단편영화이다. 

단편 불교영화는 대체적으로 세 가지 흐름을 보여준다. 첫째는 이지상의 ‘십우도-2 견적’ ‘십우도-4 득우 두 모과’와 같은 불교의 교리를 직접적으로 재현한 영화다. 두 번째는 코미디나 로드 무비의 장르 속에서 불교적 주제나 수도승이나 사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장르혼합 불교영화는 박정범·이형식의 ‘사경을 헤매다’와 김태희의 ‘붉은 나비’이다. 마지막으로 ‘절간의 만우절’과 유재욱의 ‘별리’와 같은 화해지향적 불교영화다. 이민경의 ‘절간의 만우절’은 동심을 다루며 화해지향적 결말을 보여주는 불교단편영화의 모범답안에 가깝다. 

첫 장면에서 사찰의 전경이 제시되고 다음 장면은 법당에서 예불을 올리는 이미지로 전환된다. 능산 스님은 불상 앞에서 고뇌하며 다음 컷에서 롱쇼트(long shot)로 창밖으로 내비치는 법당을 서성거리는 그림자를 통해 인간적인 그의 망설임과 고뇌를 암시한다. 

능산 스님은 모종의 행동을 거행하고 탁발 수행을 위해 절을 나선다. 동승의 맏형 지호는 해우소에서 법당의 소리를 들으면서 달력 습자지를 손으로 구겨서 화장지로 사용하려다 엉덩이 종기로 인해 신음 소리를 낸다. 지호는 종기로 고통을 받고 불상의 비슷한 부위도 동승들을 위해 수난을 겪는다.

동승들은 기상하여 세수를 한 다음 공양간에서 대화를 주고 받는다. 그들은 몇 년 전 만우절에 하늘에서 축구공이 떨어졌던 일을 말한다. 

채식 공양에 지친 동승은 통닭을 먹고 싶어한다. 지호는 모두에게 염불을 권하고 ‘반야심경’을 일제히 낭송한다. 아침 공양 장면에서 동승들은 시금치와 배추’를 버거워하고 고기 맛을 염원한다. 어린 동승들은 마음껏 고기를 먹을 수 없는 상황으로 곤란을 겪고 있으며 가장 큰 결핍은 육식을 섭취할 수 있는 기회의 부족이었다. 이 장면과 대사는 마지막 장면에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소세지와 통닭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한 동승의 희망 사항을 친절하게 대화로 제시해준다. 

지호는 법당에서 작은 꽃잎이 연화대에 깔려있는 것을 빼내기 위해 불상을 들어보는데 너무 가볍게 들려서 놀랜다. 그리고 불상을 살펴보다가 지호의 시점으로 불상의 뒤쪽 부분이 움푹 패여 있는 것을 목격한다. ‘부처님의 황금 고기살’(불상의 움푹 파인 곳)은 나중에 마지막 장면의 연출을 위한 능산 스님의 모종의 결정과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4월 초파일 행사 준비를 위해 동승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연등을 만든다. 보살 할머니는 동승들에게 새참으로 감자를 가져온다. 감자를 먹으면서 동승들은 개구리를 잡아먹자고 말하면서 고기를 먹고 싶은 그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드러낸다. 불가에서 살생을 금하지만 동승들은 고기 섭취에 대한 희망을 거듭 피력한다. 

결핍은 욕망의 직접적인 근원이다. 육식에 대한 욕구는 만우절 선물에 대한 기대를 부풀게 한다.  

능산 스님의 귀가가 늦어지자 지호와 여섯 동승들은 법당에서 저녁 예불을 올린다. 예불을 마치고 축구공이 떨어졌던 만우절의 기적을 기대하면서 마루에 누워 잠에 빠진다.

지호의 내레이션으로 마지막 시퀀스가 펼쳐진다. 스님을 기다리는 동승의 마음은 기둥 사이의 프레임에 담아낸다. 프레임 안 프레임의 구도는 동승의 순수한 염원과 기다림의 절실함을 관조하게 한다. 동승들이 모두 누워서 잠에 빠졌을 때 한 동승이 일어나서 눈을 부비며 마당을 바라본다. 그때 하늘에서 소시지가 하나 툭 떨어진다. 마루에서 맨발로 뛰어가 마당의 소시지를 든 동승은 “워매, 쏘세지구마”라고 전라도 말로 기쁨을 표현한다. 자는 동승들이 모두 일어나서 하늘에서 떨어진 소시지와 통닭을 짚어들고 환호를 보낸다.

사찰의 지붕 위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들은 ‘웰컴투 동막골’에서 옥수수 창고가 폭탄에 폭발하면서 세상을 팝콘으로 뒤덮은 환상적인 장면과 닮았다. 음식과 꽃잎이 불꽃의 폭죽처럼 축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하늘의 선물은 동승들의 부풀어 오른 기쁨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능산 스님은 부처님 앞에서 오묘한 미소를 짓고 있으며 지호는 결국 고통스러웠던 엉덩이의 종기가 터진다. 불상의 황금살은 폭죽처럼 하늘을 채우는 만우절의 선물로 동승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지호의 엉덩이 종기는 터져서 지호의 고통을 해소해준다. ‘절간의 만우절’은 능산 스님의 지혜로 법당 불상의 황금살을 보시하여 동승들의 행복하게 해주는 순정만화같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486 / 2019년 4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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