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법성게’ 제21구: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33. ‘법성게’ 제21구: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 해주 스님
  • 승인 2019.04.23 09:51
  • 호수 14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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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일음으로 중생 이익 되게 함이 연 따라 자재하다

부처님 서원·중생 지극함
해인 가르침 중생에 응해

허공과 같이 가없는 중생
두루 가르침을 입히므로
‘우보익생만허공’이라 함

​​​​​​​보배, 미진 찰토에 비 내려
모든 중생 이익을 얻게 해

‘법성게’ 제21구는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이다. “보배를 비 내려 중생을 도와 허공을 채우니”라는 이 구절은 이타행에 해당하는 4구 가운데 세 번째 구절이다.

“‘번출(繁出)’이란 치성하게 솟아나오는 것이 다함없기 때문이다. ‘여의(如意)’란 비유를 따라 이름붙인 것이니 여의보왕이 무심히 보배를 비 내려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데 연을 따라 끝이 없기 때문이다. 석가여래의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일음(一音)으로 펼친 것이 중생계를 따라 악을 없애고 선을 일으켜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데, 어디든 필요한 곳에 따라서 여의하지 않음이 없는 까닭에 ‘여의’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일승법계도’)

“번출여의부사의 우보익생만허공”을 풀이한 의상 스님의 말씀이다. 번출함이 자재하고, 여의를 번출하는 것이 마치 여의보왕이 보배 비를 내려 연 따라 끝없이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부처님이 일음으로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데 연 따라 자재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보익생만허공”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보익생만허공”이란 비유하면 마치 전륜왕이 갖고 있는 여의주가 왕의 창고 안에 있으면 보배를 비 내리지 않지만, 만약 왕이 이 여의주를 깃대 위에 내다 걸어두고서 중생이 청하면 그 필요로 하는 바를 따라 갖가지 물건을 비 내려서 뜻과 같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서원과 중생의 지극함으로써 해인의 가르침이 중생에 응한다. 창고 안에 있을 때는 부처님의 안으로 증득하심을 비유하는 것이고, 깃대 위에 내다 걸어 보배를 비 내리는 때는 부처님의 밖으로 교화하심을 비유한 것이다.(‘법기’)

‘여래출현품’에서 부처님의 음성에 10가지 모양이 있음을 설하고 있다. 여래의 음성은 두루 한량이 없으며, 내지 부사의하고 광대한 법 비를 내려 일체 중생의 몸과 마음을 청정케 한다. 이른 바 부처님은 보살뿐 아니라 독각과 성문과 선근 중생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위하여 넓고 큰 법 비를 내려 온갖 세계에 가득하니, 중생들의 욕망이 같지 아니함을 따라서 내리는 법 비에 차별이 있음을 보인다는 것이다. 

보살 계위 중 마지막 자리인 법운지도 법의 구름이 충만한 자리이다. 그래서 온 법계에 큰 법 비를 내리는 것이다. 

구례 화엄사 대웅전 삼존불. 보물 1548호로 지정돼 있다.

“우보익생만허공”에 대한 ‘총수록’ 삼대기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보배를 비 내려 중생을 도와 허공을 채우니’란, 허공이 가없으므로 세계가 가없고, 세계가 가없으므로 중생이 가없으니, 이 가없는 중생에게 이와 같은 가르침을 입히지 못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법기’)

“‘보배를 비 내려’란 가르침을 기준으로 하여 ‘보배’라고 말한다. 또한 중생이 수용하는 갖가지 보물이다. ‘허공을 채운다’란 중생이 불가사의한 가르침을 입으면 곧 범부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법성 허공과 더불어 단지 한 물건이어서 본래 스스로 원만함을 알기 때문이다.” (‘진기’)

“‘보배를 비 내려 중생을 도와 허공을 채운다’라는 것은 열 보법[十普法]을 비 내려 정위(正爲) 가운데서 온전히 응하니, 말하자면 한 줄의 붉은 도인이 원만히 나타난다는 것이다.” (‘대기’)

이처럼 허공과 같이 가없는 중생에게 두루 가르침을 입히므로 “우보익생만허공”이다. 또 중생이 법성 허공과 더불어 단지 한 물건이어서 본래 스스로 원만함을 알게 하려는 때문이다. 보배 비는 열 보법이니, 지정각세간을 드러낸 한 줄의 붉은 도인이 원만히 나타나는 것이 곧 열 보법의 보배 비를 내린다는 것이다. 

이타행 4구 중 제3구인 이 “우보익생만허공”을 ‘대기’에서는 제3중의 제3중 해인에 배당한다. 즉 오중해인 중 다섯째 어언해인(語言海印)을 다시 5중으로 배대하고, 그 중 네 번째 해인을 또 다시 5중으로 나눈 가운데 세 번째 해인이다. 3중의 오중해인을 도시하면 다음과 같다.

<표>에서도 보이듯이 언어문자로 된 ‘법성게’ 30구 또한 모두 해인삼매의 경계이다. 

설잠 스님은 해인삼매를 해인정광삼매(海印定光三昧)라고 명명하면서, 한 개의 여의보가 백천의 여의보를 유출하고[流出], 이 하나의 해인정광삼매가 백천의 해인정광삼매를 유출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해인정광삼매는 단지 열 부처님의 대인 경계에서만 홀로 증득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 중생이 각각 열 부처님의 대인경계인 해인정광삼매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끝없이 유출하여 그 이익이 허공에 가득함을 다음과 같이 펴서 보이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죽음에 이르고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혹 성내고 혹 기뻐하며 혹 말하고 혹 침묵하는 낱낱마다 각각 낱낱 해인이 있다. 낱낱 해인이 낱낱마다 중생의 번뇌 바다를 유출하고, 낱낱 번뇌 바다가 각각 진여법성(眞如法性) 바다를 갖추어 둘이 없고 섞임이 없기 때문에, 그 허공에 가득한 이익을 다만 두 팔 벌려[八字打開] 두 손으로 줄[兩手分付] 따름이다.” (‘법계도주’)

바다가 일체 존재를 다 도장 찍듯이 나타내는 것과 같이, 해인삼매도 동남·동녀·아수라 등 일체 색신을 다 나타낸다. 따라서 해인이 지정각세간 만이 아니라, 기세간도 해인이고 중생세간도 해인이다. 번출된 삼세간이 각각 다르나 모두 하나의 해인으로서 융통하고, 융삼세간으로서 하나의 해인이나 또한 삼세간이 각각 달라서 역연히 부동이다. ‘대기’에서는 이 삼세간 해인으로 도인을 관(觀)하게도 한다.

즉 ‘흰 종이와 검은 글자와 붉은 줄이 다 온전히 서로 거두어서 따로 취할 수 없지만 세 가지 물건이 각기 다르다. 이와 같이 삼세간이 융통하여 서로 거두어 섞여서 한 덩어리가 되지만, 문은 각기 달라서 역연히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하나의 도인은 만약 기세간의 문으로써 관하면 곧 기세간해인(器世間海印)이다. 중생의 문으로써 취하면 곧 중생해인(衆生海印)이며, 부처님의 문으로써 취하면 곧 불해인(佛海印)이다.

이처럼 해인이 부처님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망상이 다하여 마음이 맑아지는 뜻을 따라서 임시로 부처님의 해인이라 이름 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법성게과주’에서는 보배란 삼천위의 팔만세행(三千威儀八萬細行)이며, 이 다함없는 보배를 널리 미진 찰토에 비 내려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수행하여 이익[證真之益]을 얻게 한다고 “우보익생만허공”을 풀이하고 있다. 

아무튼 ‘화엄경’에서 신·주·행·향·지·불(信住行向地佛)의 모든 계위와 일체 방편행, 존재의 낱낱 모습이 법계에 충만한 법비임을 알 수 있다. 그 법비로 만물을 이롭게 하므로 “우보익생만허공”이라고 읊은 것이라 하겠다.

해주 스님 동국대 명예교수 jeon@dongguk.edu

 

[1486 / 2019년 4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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