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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를 바꾸는 이유들

기자명 심원 스님

며칠 전 불교계 신문에서 “부산 문수선원에서 여천 무비 대종사 전등법계 건당식(建幢式)이 봉행됐다. 무비 스님의 ‘화엄경’ 강의를 이수한 25명의 스님이 건당 입실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한국불교 대표종단인 조계종에선 출가 득도하여 계를 받을 때 반드시 은사스님을 정하도록 되어 있다. 일단 한번 맺어진 ‘은사-상좌(도제)’ 관계는 원칙적으로 파기할 수 없다. 은사의 역할은 상좌(도제)를 책임지고 보호하며 어엿한 승려가 되도록 가르침을 가지고 인도하는 것이며, 그 대신 상좌는 은사스님의 가르침과 지도에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실상 은사스님은 스승이라기보다 부모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이런 은사와는 별도로 참선 수행이나 경전 교학을 위해 모시고 공부하는 스승을 법은사(法恩師)라 한다. 이렇게 인연 맺은 법은사 밑에서 공부가 깊어져 다른 사람에게 불법을 전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스승에게서 법호(法號)를 받고 법맥이나 강맥을 이어받게 되는데, 이를 건당(建幢) 혹은 입실(入室)이라 한다. 즉 건당은 당(幢)을 세우고 법호(法號)를 받음으로써 스승의 법을 이어 지금부터 바야흐로 다른 이들의 스승이 될 수 있음을 공표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요즘은 건당을 ‘은사를 바꾼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종법(宗法)상 구족계를 받은 후에는 당사자 간의 이연 합의가 있다 하더라도 특별한 경우(사설사암을 소유하고 종단에 등록하지 않은 경우 등)가 아니고는 사승과 도제는 합법적으로 이연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건당이라는 편법으로 사실상 본래 은사스님을 떠나 새 스승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건당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물론 자신을 이끌어 줄 눈 밝은 스승을 찾아 건당을 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현재의 은사가 자신의 출세와 지위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 판단하고 경제력과 권력을 가진 스님이나 문중을 찾아 건당하는 것이다. 은사스님의 재력과 종단 내에서의 위상이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은사가 누구냐에 따른 불평등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일진대 건당하려는 상좌를 이기적이고 세속적이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사찰넷 구직등록’에 게재된 ‘건당(법)은사스님 찾습니다’라는 광고가 작금의 상황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구족계를 받고 강원과 율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중앙승가대 3학년을 휴학한 상태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연을 올렸다. 내용인즉, “은사스님과 인연이 아닌 것 같아 이연하려 해도 이연은 어렵고 그래서 법상좌로 건당을 하려고 한다. 은사스님으로부터 학비를 비롯해 여타 지원이 없어 너무 힘들게 공부했다. 소임을 준다고 한 지 2년이 지나갔지만 소식이 없다. 모두 자신의 불찰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학업을 계속해야 하고 3급 승가고시도 봐야 하는데 기도소임 보느라 필요한 연수도 못 받았다. 다른 도반은 벌써 학교도 졸업하고 3급 승가고시도 마쳤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속된 말로 은사복이 없어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는 경우다. 하지만 건당은 위와 같이 개인적 문제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종단의 정치 지형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본사주지를 비롯해 총무원장을 선거를 통해 뽑는 현재와 같은 제도 하에서는 자기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문중이나 계파를 동원할 것이고, 그럴 때 건당은 아주 요긴한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사 주지스님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건당하는 사례까지 있다고 한다. 이처럼 변질된 ‘건당’ 현상은 은사제도가 초래한 불평등 구조와 종단의 선거제도가 맞물리면서 빚어낸 필연적 부산물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건당’이 본래 의미대로 스승으로부터 인가받은 건당 제자들이 강맥을 전승하고 법맥을 이어서 곳곳에서 일가를 이루어 부처님 법의 깃발을 펄럭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승려 개개인은 물론 승가 구성원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승가 본연의 정신으로 돌아가 부처님 법대로 수행정진하려는 각고의 노력이 없다면, 아마도 건당 유감은 지속될 것이다.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강사 chsimwon@daum.net

 

[1487 / 2019년 5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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