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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남해관음

기자명 손태호

조선시대 화가가 그린 유일한 관음보살도

김홍도 말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
엄마 뒤 숨는 어린아이 같은 선재
기존 수월관음도에선 없는 표현
‘2014년 남해’ 연상시키는 작품

김홍도 作 ‘남해관음도’, 비단에 담채, 20.6×30.6cm, 간송미술관.
김홍도 作 ‘남해관음도’, 비단에 담채, 20.6×30.6cm, 간송미술관.

봄의 가장 절정은 몇 월일까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보다는 봄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4월이 봄의 가장 절정이 아닐까 합니다. 회색톤의 겨울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화사한 빛깔로 변화되는 4월. 그래서 강화 고려산과 대구 비슬산의 진달래축제, 진해와 여의도 벚꽃축제, 창녕과 부산의 유채꽃축제, 태안과 신안의 튤립축제도 전부 4월에 개최하니 그야말로 4월은 ‘꽃 같은 계절’입니다. 

그러나 4월이 되면 마냥 기쁘게만 보낼 수 없는 날이 있습니다. 4월16일. 그렇습니다. 2014년 4월16일, 전 국민을 울음바다로 만들며 하늘로 떠나갔던 많은 생명들. 그중에서도 당시 저의 큰아이와 동갑내기였던 고등학교 2학년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켠이 먹먹하고 쓰립니다. 그때 그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가 단원고이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안산시 단원구에 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단원은 바로 단원 김홍도에서 유래된 명칭입니다.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의 기록에 따르면 김홍도는 7~8세 때부터 안산에 칩거 중이던 표암 강세황 문하에서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하니 아마도 김홍도가 태어나고 유년기를 보낸 곳이 안산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안산에는 단원구가 있고 단원고가 있으며 안산시 문화활동의 중심인 단원미술관도 있습니다. 

김홍도는 어린 시절부터 못 하는 그림이 없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특히 인물과 풍속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올랐습니다. 붓질 몇 번에 표현하고자 하는 인물의 의태를 정확히 묘사하는 귀신같은 재주라는 칭찬이 당대에도 자자했습니다. 인물화의 경우 젊은 시절에는 주로 신선도를 많이 그렸지만 중년 이후 불교에 귀의하며 불교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여럿 남겼습니다. 그는 화성 용주사 대웅전의 불화 제작을 주관하기도 하였습니다. 

안산과 인연이 깊은 김홍도의 불교관련 작품 중 4월의 남해 바다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남해관음’이라 불리는 작품입니다. 머리에 화관을 쓴 관음보살님이 넘실거리는 바다 위에 서 있습니다. 보발은 길게 늘어졌고 대의는 아주 부드러운 필선으로 풍성하게 표현하였는데 이런 표현은 김홍도의 풍속화에서 보여주었던 강한 의복선과 전혀 다른 묘법입니다. 마치 떠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다는 행운유수묘(行雲流水描)라 불리는 묘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의복 표현은 수파묘(水波描, 물결을 그리는 기법)에도 동일하게 구사하여 바다와 관음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하나가 되어 마치 바다에서 솟아오른 듯한 생동감을 보여줍니다. 바다와 하늘은 둘 다 푸른빛이고 머리 뒤로는 두광 같은 달, 달 같은 두광을 표현했는데 달을 직접 그리지 않고 주변의 구름을 그려 마치 달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홍운탁월(烘雲托月)’ 기법은 동양화의 오랜 전통입니다. 

달이자 두광인 이중적 의미를 표현한 김홍도의 재치가 돋보입니다. 관음보살님은 몸을 살짝 돌린 채 얼굴만 좌측을 바라보며 세상 그 어떤 괴로움도 품어줄 것 같은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이런 자세와 미소는 기존 예배용 불화와는 다른 미감을 보여줍니다. 

관음보살 뒤에는 양류가지가 꽂힌 정병을 들고 선재동자가 서있습니다. 쌍계머리를 한 채 부끄러운 듯 마치 엄마 뒤에 숨는 어린아이처럼 얼굴 한쪽을 가린 채 앞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또한 기존 수월관음도에서 볼 수 없는 선재동자의 표현입니다.  

전체적으로 대자대비한 관음보살이 선재동자 앞에서 세상 그 어떤 고난도 다 막아주겠다는 듯 서있는 모습입니다. 우측 상단의 단원(檀園)이라 적고 사능(士能) 방형주문(方形朱文)의 인장을 한방 찍었습니다. 나머지 글씨는 후대에 송월헌이 쓴 글로 내용은 이렇습니다. 

‘쓸쓸히 홀로 벗어나 메인 데 없으니 구름 자취 학 모습 더욱 짝 할 수 없네 / 이미 삼천리 안에 앉지도 않았고 또한 삼천리 밖에 서지도 않았으니 / 이는 천리마가 봄바람 살랑이는 광야에 있는 것 같고 / 신령스런 용이 밝은 달 비추는 창해에 있는 것 같다고 할 수 있다.’ 송월헌 주인. 

‘남쪽 비니원(석가여래의 탄생지 룸비니) 가운데 연꽃 위에 탄생하시고 / 천하에 무위도를 실행하시어 고해에 빠진 이들을 건져 내시며 / 불난 집에서 불타는 이들을 구해 내셨으니 / 초연히 창해만리 밖에 우뚝 홀로 서 계시니 / 천상천하에 오직 내 홀로 존귀하다는 글 그대로구나.’

이 글을 쓴 송월헌(松月軒) 임득명(林得明, 1767~?)은 김홍도 한 세대 후 인물로 김홍도의 풍속화에 영향을 많이 받은 화가이자 여항문인입니다. 비록 불교에 밝지 못해 대승보살에 대해 정확한 이해는 부족하지만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화가의 불심을 이해하고자 고심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김홍도는 연풍현감으로 재직할 때 자신의 녹봉으로 조령산 상암사 소조불상의 개금을 시주하는 등 불교와 가까워집니다. 개금불사 이후 대를 이을 아들을 얻어 연풍현감의 녹을 시주하여 얻은 아들이란 뜻으로 이름을 연록(延祿)이라 지었으며 50대 후반부터는 여러 감상용 불화를 그렸습니다. ‘남해관음’은 낙관과 화풍으로 보아 김홍도의 말년에 그린 작품으로 추측되며 조선 화가가 그린 유일한 ‘관음보살도’입니다.    

2014년 4월16일. 대한민국 모든 어른들은 꽃 같은 아이들을 세상에서 가장 큰 고난의 파도 앞에 아무런 방패도 없이 세웠습니다. 그 후에도 일부 어른들은 자신의 잘못을 가리고,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하며 심지어 유가족 앞에서 어묵을 먹으며 조롱하였습니다. 그 업보를 어찌 다 감당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비록 그때는 아이들의 고난을 앞장서 막아주지 못한 못난 어른들이지만 이제는 아이들 앞에 서야 합니다. 무시무시한 파도 앞에, 뜨거운 불길 앞에 어린 아이들을 뒤로하고 어른들이 앞에 서야합니다. 마치 선재동자를 보호하듯 막아선 남해 관음보살님처럼 말입니다, 사고원인 및 진실규명을 통해 아이들과 유가족들이 더 이상 억울하지 않게 어른들이 맨 앞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당한 모든 영혼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487 / 2019년 5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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