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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반려동물] 2. 고승과 동물

거대한 뱀도 가냘픈 거위도 그 스님들에겐 무차별의 존재였다

인도 유식학 일으킨 무착 스님
병든 개 인연돼 미륵보살 친견
당 율사 신조 스님 기르던 개는
스님 입적하자 눈물 흘리다 죽어

북주 혜원 스님 법문 들은 거위
지개 스님 굶주린 개 50마리 돌봐
잠사리 스님은 쥐 100마리 키워
지장 스님은 개 데리고 구법행

신라 왕족으로 중국에서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불리는 지장 스님과 그 곁을 지켰던 삽살개(동경) 선청. 신라에서부터 동고동락했던 지장 스님과 선청은 지금도 구화산에서 함께하고 있다.법보신문 자료사진

무착 스님(無着, Asańga)은 대승불교의 큰 흐름인 유식학을 일으킨 4~5세기 인도의 고승이다. 젊은 시절 미륵보살로부터 직접 가르침 받기를 원했던 무착 스님은 비장한 결심으로 동굴에 들어가 혹독히 수행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6년이 지나도 미륵보살은 나타나지 않았다. 스님은 낙담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더욱 결연한 각오로 정진했고 다시 6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무착 스님은 깊이 절망했다. 미륵보살 친견은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다.

스님은 12년간 정진했던 동굴을 뒤로 하고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죽어가는 개가 눈에 들어온 것은 마을 입구에서였다. 큰 상처를 입은 개의 몸에는 구더기가 득실득실했다. 서둘러 치료하지 않으면 곧 죽을 것 같았다. 스님은 한 벌뿐인 자신의 옷을 작은 칼과 바꾸었고 그것으로 개의 상처를 도려내려 했다. 하지만 스님은 곧바로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개를 살리자니 구더기가 죽고, 구더기를 살리자니 개가 죽을 게 분명했다. 잠시 고민하던 스님은 칼로 자신의 살점을 도려내고 그곳에 구더기들을 조심스레 옮겨놓았다. 그때 미륵보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님은 깜짝 놀라 자신이 간절히 원할 때는 외면하더니 포기하고서야 나타나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이때 미륵보살은 이렇게 말했다.

“죽은 나무에서 꽃이 피지 못하고 자비심 없는 마음에서 진리를 보지 못한다. 그대가 나를 보고자 처음 발심했을 때부터 나는 그대 곁에 있었지만 자비 없는 마음이 나를 보지 못한 것이며, 이제 그대가 일체중생을 향한 대비심 일으키니 비로소 나를 볼 수 있게 됐다.”

무착 스님의 일화는 자비가 불교의 근간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부처님 가르침은 수많은 출가자들의 지침이 됐고, 동물과 관련된 숱한 사건과 일화들을 낳았다. 동물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놓거나 자신의 시신을 동물들에게 보시하는 스님들도 적지 않았다.

‘고승전’을 비롯한 출가자의 생애를 다룬 기록에는 스님들과 동물 사이에 각별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기록들도 꽤 많다. 6세기 북주(北周)의 무제가 혹독한 불교말살 정책을 펼 때 그 앞에서 “폐하는 지금 힘만 믿고 삼보(三寶)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아비지옥은 귀천을 가리지 않거늘 폐하는 반드시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이오”라고 외쳤던 정영사 혜원(慧遠, 523~592) 스님. 그도 거위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

혜원 스님은 정영사로 옮기기 전에 청화사라는 절에 머물렀다. 이때 거위가 혜원 스님의 강론을 듣는 것을 좋아해 모두들 신기하게 여겼다. 그런데 혜원 스님이 정영사로 떠나자 거위가 밤낮으로 슬피 울어 그곳의 한 스님이 거위를 정영사로 데려갔다. 그러자 거위는 곧바로 혜원 스님의 방으로 뛰어가더니 반갑다는 듯 푸드덕거렸다. 이후 거위는 혜원 스님의 법문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만 나도 강당으로 향했고 법문이 끝날 때까지 경청했다. 그렇게 6년 동안 스님의 법문을 빠뜨린 적이 없이 듣던 거위가 하루는 절 마당을 오가며 슬피 울기만 할 뿐 더 이상 강당에 들어가지 않았다. 거위가 울기 시작한 지 20여일이 지난 뒤 혜원 스님이 적멸에 들었다. 혜원 스님에 대한 거위의 지극한 존경이 누구 못지않았음을 잘 보여준다.

부탄의 고승 드룩파 쿤리 스님과 검은 개.

당나라 때 강백이자 율사였던 신조(神照) 스님은 개와 인연이 닿았다. 스님은 일평생 청정하게 살았으며, 59살 되던 해 자신이 머물던 사찰이 아니라 출가 본사에서 입적했다. 스님 생전에 함께 다니던 개가 있었는데 스님의 죽음이 가까워지자 슬피 울고 사나워졌다. 스님이 세상을 떠나던 날 밤새 200리 떨어진 출가본사를 갔다 돌아온 개는 종일 울부짖었다. 나중에 부고가 도착하고서야 대중들은 비로소 개의 행동을 이해했다. 이후 그 개는 종일 엎드려 눈물을 흘리고 먹지 않다가 죽었다고 기록돼 있다.

당나라 월주 가상사의 지개(智凱) 스님도 개를 각별히 여겼던 스님이다. 삼론종의 대가인 길장 스님 제자였던 지개 스님이 강원을 세우자 500여명이 모일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특히 스님은 정관 원년인 627년부터 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잡고 입적할 때까지 20년간 눕지 않았으며 절문을 나서지 않았다. 요즘 회자되는 용어로 장좌불와(長坐不臥)와 동구불출(洞口不出)인 셈이다. 강인한 의지로 정진해 선과 교에 두루 통달했던 스님은 자비심도 깊었다. 당시 월주 지역에 버려지는 개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개들을 데려오게 했다. 늘 30~50마리의 개들이 스님 주변에 있었고 스님의 처소가 더러워지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굶주림과 죽음의 두려움에 놓였다가 최고의 안식처를 얻은 개들이 스님을 늘 따랐음은 당연하다.

수나라 양주의 잠사리(岑闍梨) 스님은 쥐와 아주 각별했다. 기억력이 탁월해 외우는 경전이 무려 3000여권에 이르렀던 스님은 무명옷을 입고 걸식으로 식사를 해결했는데 발우에 남은 음식으로 100여 마리의 쥐를 키웠다. 스님이 방에 들어오면 쥐들이 반가워 몰려들었고, 때로 아픈 쥐가 있으면 스님이 손으로 아픈 곳을 정성껏 쓰다듬어주었다. 대중들 사이에서 이런 스님의 행동을 두고 말들이 많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이들과도 친해 함께 장난을 치며 놀았고 때때로 고정관념에 갇혀있는 스님들을 꾸짖었다고 한다.

수나라 진주 서쪽 소유산의 승집(僧集)이라는 스님도 독특하다. 산중에 살던 승집 스님은 문도들을 모아 수행을 지도했으며, 아무리 험한 일이 있더라도 뜻을 굽히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이 스님은 특이하게도 뱀과 쥐를 반려동물로 키웠다. 그들은 항상 스님의 좌우에 나타나 따라다녔으며 다른 스님들이 쫓아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반인들이 스님을 찾아올 때면 스스로 숨어버렸다고 기록돼 있다. 당나라 형주의 옥천사 혜유(慧瑜) 스님은 6m가 넘는 검은 뱀과 인연이 있었다. 이 거대한 뱀은 늘 스님을 수호하듯 했는데 10명의 도적이 사찰을 습격했을 때도 이 뱀이 나타나 물리쳤다고 ‘속고승전’에 전한다.

이 같은 고승과 동물과의 긴밀한 관계는 선사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선의 생태철학’(서재영, 2007)에 따르면 원숭이들과 벗하며 도토리와 밤을 주워 먹거리로 삼았다는 위산영우 선사, 낙락장송의 가지 위에서 까치와 함께 살았던 조과 선사, 사슴과 금낭조(錦囊鳥) 시봉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 행인 선사, 암자 주변에 호랑이와 늑대들이 우글댔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던 우두법융 선사, 동물들이 가져다준 음식을 먹고 기력을 회복했다는 범일국사 등 일화에서 알 수 있듯 선사들의 자연친화적인 삶과 함께하는 반려동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또 공양미를 빼앗으려는 도둑들로부터 호랑이가 이를 지켜줬다는 남양혜충 선사와 호랑이를 법제자로 두었던 선각 선사 등 기록은 동물들이 선사들과 교감하며 외호하는 역할을 담당했음을 보여준다.

신라 왕족 출신으로 중국에서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불렸던 지장(地藏, 김교각) 스님 곁에도 늘 선청이라는 흰 개가 있었다. 선청은 삽살개(혹은 동경)로 지장 스님이 24살에 출가해 구법의 길에 오를 때부터 함께 했으며, 구화산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정진을 할 때도 그 곁을 지켰다. 구화산을 중국 4대 불교성지의 하나로 만든 지장 스님에게는 선청이라는 반려동물이 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구화산 지장 스님 동상 앞에는 용맹하고 지혜로운 선청이 호법신장처럼 버티고 앉아있다.

부탄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다는 드룩파 쿤리 스님도 반려동물 애호가다. 15세기 때 고승인 드룩파 쿤리 스님은 밀교수행의 대가였지만 ‘괴승’ ‘미친 성자’라고 불릴 정도로 기이한 행동을 많이 남겼다. 신통력이 뛰어나 악귀를 내쫓고 백성들을 도왔다는 스님은 부탄 곳곳을 돌아다녔으며 그때마다 검은 개 한 마리와 항상 함께했다. 지금도 드룩파 쿤리 스님 관련 그림에 검은 개가 꼭 등장할 정도로 둘 사이의 인연이 깊었고, 후대사람들에게도 그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488 / 2019년 5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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