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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 당선작] 교정교화전법단장상-문선재(가명)

기자명 법보

불법 만나 인과법 알고 신행으로 인욕·정진하며 새 삶 찾아

죗값 20년 억울함에 항소·상고
불법 인연 맺고 인과 알며 수용
첫 법회 참석 때 하염없이 눈물
불서·법보신문 등 읽으며 공부

불교거실 생활하며 매일 108배
‘금강경’ ‘아미타경’ 등 암송하고
삼천 배·만 배로 신행 의지 다져
출소 후 만 배 백일기도도 발원

신행생활에 가족 일도 점점 원만
오는 9월 기계기능장 시험 도전
“인욕·정진하면 기회 올 것” 절감
모두 고난 디딤돌 삼아 성장하길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1988년의 IMF사태를 겪어오면서 세상살이가 참 쉽지 않았다. 그때 나는 불행의 열차에 실려 이승에서 지옥세계로 불리는 교도소에 들어오게 되었다. 20년이란 형량을 선고받았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20년형을 받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굴곡진 삶의 의혹을 풀어보려 불교에 입문했고 그것은 ‘행운’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이 되질 않는다. 처음엔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 상고도 했지만 불법을 만나  공부하면서 모든 것이 인과에 의해 열매 맺는 것임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부산교도소에 잠깐 머물 때, 공장출력을 신청해 부산교도소의 책상·의자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렇게 교도소 생활이 시작되면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과 가족의 생계문제까지, 모든 일들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후벼 팠다. 아내는 생계를 위해 직장을 다니면서도 일주일에 한 번은 접견을 와서 나를 달래곤 했다. 평소 글 쓰는 것을 보지 못했던 아내가 매주 한통씩 보내오는 편지는 감동이었고,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데 큰 힘이 되었다.

아내는 지금까지 십 수 년 직장을 다니면서 몇 번이나 일터를 옮겨야 했다. 남편이 감옥에 있다는 소문이 퍼질 때마다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숨죽여 살아가는 가족들 고통이 얼마나 큰지 최근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을 보면서 가슴 절절히 느꼈다. ‘범죄자 자녀’로 낙인 찍힌 채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자식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았다. 아빠 없이 여동생을 결혼시키면서 수없이 곤란을 경험했던 아들은 번듯한 직장을 다니면서도 결혼을 미룬 채 나의 출소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수형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아내와 아이들마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종교집회에서 불교를 선택해 처음으로 법회에 간 날, 그곳에서 놀라운 일을 겪었다. 수형자들이 부르는 찬불가 소리에 나도 모르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공장으로 돌아오면서 눈물의 정체를 떠올려 보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도 그렇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나였다. 그동안 억눌려있던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도 느꼈다. 업장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회의 눈물이었고, 그 기쁨은 법열감에 따른 환희심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부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이다.’

그때까지 구치소에 있는 책, 집에서 보내준 책에 푹 빠져 있던 나는 불교서적으로 눈을 돌렸다. 제일 먼저 읽은 경전이 교도소에 비치되어있던 ‘지장본원경’이었다. 어렵지는 않았지만 책 서문에서 100독을 권했기에 실천에 옮겼다. 처음엔 하루에 한번을 읽었고 10독을 지나면서는 한권을 읽는데 2시간30분 정도 소요되었다.

그렇게 100독을 어렵게 마치고 경전만으로는 완전히 이해가 힘들어 큰스님들이 쓴 서적도 구입해서 읽고 교도소에 지급되는 ‘법보신문’을 비롯해 여러 불교신문과 각 사찰에서 보내주는 간행물도 빠짐없이 읽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왜 이런 고난과 시련이 몰려왔고, 우리는 진리를 등진 채 헛되고 무상한 세계를 참된 세계인양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었던가? 서서히 의문이 생기며 눈이 떠지기 시작했다.

부산교도소에서 두 달을 보내고 당시 초범교도소인 진주교도소로 이감이 되었다. 진주에 가자마자 불교법회에 다니면서 법당 책장에 비치된 경전과 스님이 쓰신 책들을 골라 읽었다. 또한 ‘법보신문’ 등 각종 불교 신문을 놓치지 않고 읽었고 중요한 내용은 스크랩을 하여 반복해서 읽기도 했다. 당시 진주교도소에는 불교거실이 두 곳 있었다. 그곳에서 부처님 공부를 하는 수형자들이 몹시 부러웠다.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 하면 공부도 더 잘될 것 같았고 아침저녁으로 들려오는 목탁소리가 너무 좋았다. 또 법회시간 예불을 수형자가 진행하는데, 그 모습이 부러웠다. 나는 언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1년이 지날 쯤 수형불자회 봉사원으로 활동하는 친구에게 불교거실에서 제대로 공부해 보라는 권유를 받고 기쁜 마음으로 옮겼다.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거실의 8명 도반들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순서대로 씻고 상단에 마련된 관세음보살님 상에 감로수를 따르고 다함께 108배를 올린다. 주말에는 출력을 하지 않아 시간 여유가 있기에 1080배를 하거나 삼천배를 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108배를 마치면 새벽 6시쯤 아침예불을 모시는데 8명의 도반들이 매주 한 명씩 돌아가며 법주를 했다. 예불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내림목탁 연습부터 행선축원문을 외워야 했다. ‘반야심경’은 기본이고 칠정례, 예불문, ‘천수경’까지 매일 예불을 모시다보니 한 달 정도 지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외워졌다.

신입은 한 달 이내에 삼천배를 하는 것이 규칙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부분 삼천배를 했다. 교도소 환경은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이 압축되어 있는 곳이다. 매일 매일 매순간을 희로애락의 감정 속에 휘말려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울먹거리며 살아간다. 마음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교도소에서 연중 불교행사로 사월초파일 봉축행사와 불교퀴즈대회, 독경대회, 찬불가대회, 그리고 스님들께서 주관하는 천도재까지 치르면서 많은 공부를 하게 됐다.

불교봉사대를 맡고 있는 도반들은 이런 행사를 원만히 진행하기 위해 다른 불자들 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삶에 대한 진정한 공부이기에 더욱 신이 났다. 독경대회에서는 수백 명의 대중 앞에서 목탁을 치며 나 홀로 염불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달달 외우지 않고는 해낼 수가 없었다. 덕분에 ‘천수경’을 비롯해 ‘금강경’ ‘아미타경’ ‘화엄경약찬게’ ‘법화경약찬게’ ‘혜연선사발원문’까지 외울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어수선할 때, 또는 부모님의 기일이나 피해자의 기일에는 주말을 기해서 삼천배를 하며 참회를 한다. 매일 천배를 일주일 정도 한 다음 삼천배를 해야 무난히 마칠 수 있었다. 힘들었지만 일일 만배를 도전해본 경험은 인생에 너무 좋은 첫 경험이었다. 그 후로 두 번을 더 일일 만배에 도전하면서 만배 절수행이야말로 마라톤 42.195㎞보다 더 차원 높은 수행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일일 만배 절 수행은 의지력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일조했다. 자신을 담금질하는 데 이만한 수행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출소 후 일일 만배 백일기도를 해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이렇게 불자로서의 삶이 하루하루 축적되면서 매일매일 거울을 보면서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떤 일들이 내가 생각한 대로 술술 풀려간다는 것이었다. 늘 마음에 부담이 되었던 가정의 생활비 문제와 아이들의 학자금, 그리고 대학졸업 후 취업, 결혼까지 내가 염원한대로 풀려가는 것이 신기했다. 아내는 집에 좋은 일이 생기면 하루라도 빨리 알려주기 위해 접견을 왔다. 나는 모두가 부처님 덕분이라고 말하곤 했다.

진주교도소에서 10년을 불자로 생활하고 기계기능장이 되기 위해 이곳 청주교도소로 이감을 신청했다. 청주교도소에 이감을 오자마자 수형불자봉사원을 맡아 6년 동안 해왔다. 금년에 기능장시험이 있어서 아우에게 위임하고 지금은 6년에 한번 있는 시험대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난 3월에 필기시험을 무사히 통과하여 9월에 있을 실기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교도소 환경은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이 압축되어 있는 곳이라 항상 좋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이곳의 수형자들은 좁은 담장 안에서 ‘원증회고’와 ‘애별이고’를 몸소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한 생각 바꿔보면 이곳이야말로 세상 어느 곳보다 더없이 좋은 수행 장소이기도 하다. 교도소는 배움이 있는 학교요 수형자는 학생이다. 검정고시, 학사고시까지 응시해주고 배움의 기회를 준다. 또한 출소 후 취업을 대비해 각종 기술을 가르치는 훈련소이기도 하다. 때문에 교도소는 고통을 주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돕는 기회를 주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기술을 배우고 경영학독학사까지 도전하고 있다.

20년 형을 선고 받고 17년차를 살아오는 동안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불교를 선택했다. 그리고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서 고난이 주는 의미를 명확히 깨닫게 되었다. 고난을 통해 사람들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인내,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 주어진 작금의 현실을 뛰어넘어 더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비전을 얻게 되리라 믿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가지 감당 못할 것처럼 보이는 사유로 인해 죽음을 꿈꾸고, 또 그것을 실현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절실한 마음으로 말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고난은 온다. 하지만 인욕정진하면 고난은 도약과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고난의 주위에는 수많은 기회가 함께 있다. 따라서 어떤 고난을 당하더라도 인욕하고 정진한다면, 그 고난을 디딤돌 삼아 도약과 성장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1488 / 2019년 5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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