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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 당선작] 108산사순례회주상 - 이정희

기자명 법보

무늬만 불자가 90일 지장경 독송에 신심으로 불법홍포 발원

1년에 네 번 절 가던 초보불자
스님과 안거 ‘지장경’ 독송 약속
처음에는 건성으로 시작했으나
아픈 친정엄마 만나고 경건해져

시간 지나 주변 배려심 커지고
눈 내린 날 길가 청년 태워주며
닫힌 마음 열어준 부처님에 감사
90일 회향 전 몽중가피 경험도

나와 남 모두 행복한 세상 기도
‘금강경’ 독송·참선 공부도 발원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남쪽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타고 흐르는 물이 그동안 답답했다는 듯 하얗게 속살을 드러내며 봄소식을 전한다. 수선화·목련도 방긋방긋 미소 짓고, 앞산도 아련한 연록의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나는 불교신자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경전 한 구절 제대로 읽어 본 적 없다. 그저 정월초순, 사월초파일, 백중, 동지 때만 절에 갔다. 1년에 4번 절에 가는 신도들을 보고 우리스님이 웃으시며 말씀하시길 ‘보살님은 무늬만 불자’라 했다.

그렇다. 산수가 빼어나다는 배내골에 귀촌해서 신불산 백련사와 인연을 맺은 지 7~8년이 되었지만, 아직 ‘천수경’ ‘반야심경’도 외우지 못하는 초보 신자였다. 그런데 노스님 상좌인 주지스님이 새로 부임한 후 작년 10월 보름 동안거 결재일 법회에 참석한 신도들에게 ‘지장경’ 한권씩을 나누어 주셨다. 

‘오늘부터 이 ‘지장경’ 한권을 가지고 3편으로 나누어서 매일 한편씩 읽어보세요. 그러면 3일 안에 1권을 읽게 됩니다. 우리가 매일 밥 먹는 것처럼 경전도 매일 읽는다면 1년 동안 121번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집에서 읽되 매일 절에 온다고 생각하고 경을 읽을 때마다 1000원씩을 모으세요. 하루에 1000원을 보시한다고 생각하고 모아 두었다가 정월 보름날 동안거 해제 일에 부처님께 올리면 합동으로 회향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스님과 인연이 시작 되었다. 내 나이 칠십을 바라보도록 경전 한권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데 ‘지장경’을 읽을 수 있을까? 산속이라 초겨울 새벽 날씨는 춥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니,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 90일 동안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스님과의 약속이라 아침 6시에 일어났다. 거실에 나오니 춥기도 하고, 귀찮다는 생각에 전기장판만 켜두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누웠다가 나가야지 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잠깐 잠든 사이 무서운 꿈을 꾸었다. 백인귀신, 흑인귀신, 노랑머리귀신, 곱슬머리귀신 등 수많은 귀신들이 신나게 뛰어다니다가 내게로 몰려들었다. 순간적으로 “나무상주시방불 나무상주시방법, 나무상주시방승”을 크게 외쳤다. 그러자 귀신들이 가부좌를 하면서 모두 줄을 맞추어 내 앞에 앉는 것이었다. 

참 신기한 꿈도 다 있네 하면서 탁자 위에 올려두었던 ‘지장경’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소리가 나오지 않아 눈으로만 읽었다. 그러나 5장까지 읽으려니 너무 길어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온 몸이 뒤틀리고 힘이 들었다. 겨우겨우 읽으려니 1시간 넘게 걸렸다. 매일 ‘천수경’을 읽고 ‘지장경’까지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며 그저 건성으로 읽어가고 있었다.

나에게는 93세 된 친정 엄마가 계시는데, 얼마 전 들어간 요양원 생활을 힘들어 하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며칠 후 요양원에서 마음이라도 편해지실까 싶어 “엄마! 내가 한 달 전부터 ‘지장경’을 열심히 읽고 있으니까 조금만 견디시면 엄마도 좋아 지실거야”라는 말씀을 드렸다. 엄마는 마음에 위안이 되셨는지 계속 기도해 달라고 하셨다. 경전을 읽는다고 이야기했을 뿐인데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경전을 읽어보리라 다짐하면서 매일 1000원씩 모으며 기도하니 돈이 모이는 재미와 ‘천수경’도 ‘지장경’도 소리 내어 잘 읽어지고 뜻을 새기며 또박또박 읽게 되었다. 가끔씩 몸과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낄 때면 이게 업장 소멸일까? 라고 혼자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느끼는 감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TV 채널을 불교방송으로 돌리고 있었다. 선지식 강의도 자주 듣게 되고 스님이 쓴 책과 ‘불자의 길’이란 책도 읽으면서 조금씩 불교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다. 그 어렵다는 경전과 강의 내용도 조금씩 이해가 되고 재미있었다. “아! 나도 이렇게 할 수 있구나. 하면 되는구나!” 부처님 말씀 속에서 생활하려고 노력하니 차츰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음이 즐겁고 행복해졌다. 남편이나 형제 그리고 이웃들에게도 관대해지기 시작했다.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았다. 많이 베풀게 되고 상대 입장에서 바라보는 마음이 생겼다.

남편이 조금 싫은 이야기를 할 때면 날 가르쳐 주시는 부처님으로 여겨졌다. 어느새 눈으로만 읽던 경전을 큰 소리 내어 읽게 되었고, 50일이 지나면서 지금 살아있는 이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했다. 그리고 열심히 좋은 선근 심어서 다음 생엔 좋은 인연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벌써 삼동 결재의 끝자락, 정말 ‘지장경’에 나오는 내용처럼 지옥과 극락은 있는가? 그렇다면 ‘우주의 성주괴공’과 ‘만물의 생주이멸’ 인간의 ‘생로병사’ 그것들은 무엇인가? 중생들의 고통은 끝이 없는데 ‘모든 중생이 본래 부처라면 그 불성은 수많은 겁을 지내오면서 왜 탐·진·치 삼독의 무명 업식으로 두텁고 두텁게 가려져 있다고 하는가?’ 이 모든 것이 참으로 간단할 것 같은데, 이 일이 왜 한평생을 살면서도 내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세세생생을 살아도 욕심이 무한하여 마냥 되풀이 될까? 

이렇게 중생이 어리석은 까닭으로 만월 같은 얼굴로 인행을 닦으시고 지혜의 검으로 중생의 길을 인도하시는 지장보살님을 부처님이 찬탄하심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지옥에서 고통 받는 어머니를 제도하신 효심, 그리고 한 중생이라도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이 있으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하여 부처를 이루었음에도 보살로 남아계시는 지장보살님을 보고 어찌 부처님이 찬탄하시지 않을 수 있을까.

설이 지나고 눈이 내리는 날 외손녀를 봐주기 위해 에덴벨리 스키장 정상을 지나는데 한 청년이 나뭇가지에 의지해 서 있었다. 차를 기다리며 눈보라를 피해 나무를 의지하고 있는 듯 했다. 차를 돌려 그 청년을 태웠다. 그 청년은 꽤 오랫동안 그곳에서 차를 기다렸다고 했다. 히터를 올려 몸을 녹이게 했다. 그 청년이 부처님 같아 보였다. “부처님 제 차에 한 부처님을 모실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내가 오히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부처님을 내 차에 모신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부처님! 제가 선한 행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비와 지혜로 충만하신 부처님! 영겁의 윤회 속에서 어린 싹이 어김없이 꽁꽁 언 땅을 헤집고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로 잉태 하듯이 오늘 지금 이 순간 저의 닫힌 마음을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처님! 항상 저의 곁에 계신다는 것을 믿겠습니다. 부처님! 이 시대 그늘진 이웃을 돕겠습니다. 내게 다가오는 인연들이 어떠한 인연이든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헤쳐 나가겠습니다. 부처님! 이 청년이 제 차에 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청년의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고 나니 내 마음이 너무너무 행복했다. ‘부처를 이루는 길도 자기마음에서 시작되고 고통도 자기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언젠가부터 나 자신이 스스로 감사하며 행복하고 즐겁게 경을 읽고 있었다. 동안거 해제 전날, 약속을 지켰다는 들뜬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 아금문견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를 밤새 외우고 있었다. 뭔지 몰라도 기분이 무척 좋았다. 나도 모르게 “지장보살 지장보살”이 절로 입 밖으로 나왔다.

회향 법회를 마치고 스님께 그 동안 경전을 읽으면서 일어난 일들과 꿈에 있었던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스님은 ‘경전 열심히 잘 읽으셨네요. 보살님이 꿈에서 외운 것은 ‘천수경’에 나온 개경게로 부처님 법을 여는 진언입니다. ‘부처님 법이 아주 미묘해서 보통 사람들은 백천만겁이 지나도 만나기 어려운데 내가 지금 보고 듣고 외우고 받아서 지니고 있으니, 부처님 진실한 참 뜻 알아지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보살님은 90일 ‘지장경’을 읽고서 이렇게 귀중한 경험을 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인연이 어디 있겠습니까?’라며 칭찬해 주셨다. 스님은 또 ‘부처님께서 모든 진리는 다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마음 밖에서 진리를 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 법 또한 마음 밖에 법이 따로 없습니다’라고 하셨다. 

스님 말씀을 듣고 원을 세웠다. “부처님의 진리를 제 마음 안에서 찾겠습니다. 부처님 법도 제 마음 안에서 구하겠습니다. 제 마음 안에서 신심 내겠습니다. 억울한 맘도 화내는 마음도 다 내려놓겠습니다.” 이렇게 발원하니 모든 것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었다.

꿈에서처럼 부처님 법을 배우고 부처님의 진실한 뜻 알아서 부처님 법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여 다 같이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발원해 본다. 지금은 기초단계지만 주변의 모든 인연들과 같이 부처님 말씀대로 공부하고 실천하여 나와 남이 다 같이 행복하고 향기롭고 밝은 세상이 되기를 발원해 본다. 

“나의 이 서원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부처님 공부 게을리 하지 않겠나이다. 부처님 가피하여 주시옵소서!”

지금도 계속해서 ‘지장경’을 읽고 있는데 100일 지나면 ‘금강경’에 도전하고, 경전공부와 참선으로 마음수련 시간도 갖고 싶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1488 / 2019년 5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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