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수기 당선작] 중앙신도회장상 - 김영관
[신행수기 당선작] 중앙신도회장상 - 김영관
  • 법보
  • 승인 2019.05.07 15:42
  • 호수 14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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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렁텅이로 빠질뻔한 내인생, 108배와 사경으로 건너다 

절에 가면 즐거웠던 어린 시절
조리학과 진학, 대학까진 평탄

덜컹거리기만 했던 군생활 중
큰 교통사고로 치료 받았지만
뇌병변 장애판정 의가사 제대
힘겹던 그 시절 나를 지켜준건
재활 위해 매일 반복한 108배 

중앙승가대 학인스님과 인연
범종 스님 소개로 장애인모임
보리수아래 가입해 신행활동
낙산사 템플스테이로 친밀감
대만성지순례도 무사히 마쳐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어릴 적부터 계절 알레르기 때문에 밖에도 잘 못나가고 학교도 자주 빠졌다. 그러다보니 친구도 많은 편이 아니었고 늘 집에서 동생과 아니면 장난감과 지냈다. 가까이 살고 계시던 할머니 댁에 가서 친척 형, 누나와 작은 고모와 시간을 보냈다. 작은 고모가 망월사에 처음 데리고 갔던 걸로 기억이 난다.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자주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기가 끝났을 때는 자유롭게 다녔다. 그랬다. 어렸던 나에게 산 끝자락에 있는 망월사는 더 커보였고 더 웅장해 보였다. 절에 가면 마냥 모든 것이 신기했고 너무 편안하고 좋았던 것 같다. 절 밥도 맛있고 스님께서 주시는 다과도 너무 달고 맛있던 걸로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때 텔레비전에서 본 음식프로가 한 순간 요리사라는 꿈을 심어 주었고 될 때까지 하겠다는 마음으로 5번째 한식자격증 시험에 도전해 끝내 합격했다. 그리고 어느 대학의 호텔조리학과에 진학해 공부를 핑계로 잘 놀기도 했다. 그로 인해 종교 생활은 거의 잊고 살았던 거 같다.

군대에 가 훈련병 시절에는 교회에 가면 초코파이를 더 준다는 동기들 말에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초코파이를 받기 위해 열심히 다녔다. 우여곡절도 많아 평탄치 않았던 군 생활 중 휴가를 나와서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다. 국군통합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의가사 제대 판정을 받은 뒤 일반병원으로 옮겨 병원생활만 3년 넘게 했다. 남은 것은 뇌병변 장애 판정과 망가진 몸과 마음뿐이었다. 친구들과 술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힘겹고 고단했던 그 시절 나를 지켜준 것은 재활을 위한 108배였다. 처음에는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숙여가며 손으로 땅 집기가 어려워 많이도 꼬꾸라졌다. 그럼에도 서서히 절하는 회수가 늘어가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법화경 사경을 손 재활을 위해 해보라고 권해주셨다.

처음에는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슬슬 피해 다니며 기도에 집중하지 못했다. 오로지 108배만 꾸준히 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꾸준한 설득이 나를 스스로 움직이게, 꾸준히 사경기도를 하게 했다. 처음에는 ‘관세음보살 보문품' 108번만 써야지 했다가 다 쓰고 회향하고 ‘법화경’ 사경을 권유받아 3번 써보자는 하던 것이 1년 동안 모든 일을 접고 108배와 사경기도에 전념했다. 

어느덧 10번째 사경에 이르자 10번째 사경은 천안의 구룡사에 가서 회향하자는 마음으로 구룡사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나를 크게 바꿔 주신 스님을 만나게 된다. 그분이 바로 범종 스님이시다. 절 생활에 여러가지 도움을 주시고 기도하는 법도 알려주시며 혼자서는 생각도 못했을 것들을 같이 해주셨다. 그리고는 다시 어릴 때부터 연을 맺고 살았던 구담 스님 계신 절에 가 일주일 기도한 뒤 스님께서 절을 비우실 일이 생기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내 기도는 계속되었다. 절하고 사경 기도하고 지하철을 혼자서 타고 다니며 침 맞으러 서울로 왔다 갔다 하며 나름 산속 절에서 평화로웠던 그때의 기억으로 힘을 얻어 열심히 다니며 치료에 집중했다. 

추워지면서 거동이 불편해져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전과 같이 108배와 운동을 꾸준히 하던 중 복지관과 군대 후임이었던 친구의 도움으로 직장에 취직하여 지하철 타고 세 정거장을 지나야 가능한 출퇴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담당자가 없는 책상 정리로 일을 시작하여 폐지 수거 및 파쇄, 휴게실 이불 빨래를 하였고 1년 조금 넘어갈 무렵 우체국으로 우편물 붙이는 일을 했다. 일을 하던 중 범종 스님께서 다니고 계시는 중앙승가대학교의 학인 스님들이 봉사하고 있던 장애인 불자모임 보리수아래를 알게 되었다. 계속 어긋나는 일들과 머뭇거리며 참석하지 못하고 있던 중 범종 스님의 끝없는 설득으로 보리수아래 모임에 함께 하게 되었다. 처음 함께 한 자리가 1박2일의 낙산사 템플스테이였다. 처음인 자리인데도 모든 불자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스님 한 분이 배정되어 도움을 주셨다. 장애 불자와 학인 스님 일대 일 동행이었다. 나에게는 해원 스님이 짝이 되어 오셨다. 항상 웃으시며 뭐든 함께 하며 사소한 것까지 잘 챙겨주셨다. 그래서인지 멀미도 없이 낙산사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범종 스님을 빼고는 처음 본 사람들과 함께 한 자리가 많이 낯설고 어색했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듯이  함께 그 자리에 스며들어 템플스테이를 즐겁게 잘 다녀왔다.

어느덧 직장은 계약했던 2년이 끝나고 태어나 처음으로 실업급여라는 걸 신청하러 아버지와 같이 갔다 왔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아버지랑 함께 한 이유는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치고 난 이후부터 낯선 곳에 가면 불안 초조함이 심해져 그 상태에서 시간이 지나면 거친 언어와 행동들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사회생활에 힘든 적도 많았다. 인터넷으로 이곳저곳을 알아보다가 한 네이버 카페에서 홈쇼핑에서 중증장애인 대상으로 진행하는 취업 공고를 보게 되었고 지원하여 면접을 본 뒤 실무교육을 받고 다시 2년 동안 근무를 했다. 그 사이 보리수아래의 매월 한 차례 모임에는 착실히 나가며 사람들과도 어느덧 어울렸다. 그렇게 좋은 인연이 이어지면서 보리수아래 미얀마와 공동시집이 출판되고 책 전달을 겸한 성지순례 길에 동참하게 되었다. 

태어나 처음 나가보는 해외인지라 긴장도 많이 하고 행여나 돌발행동이 나오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보리수아래 회원들과 함께여서인지 장애도 잊을 만큼 의미가 컸던 성지순례를 잘 다녀왔다. 미얀마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느낀 것은 “왜 이렇게 조급하게 빨리빨리라고 외치며 살고 있나?”하는 의문이었다.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며 행동하면 실수도 줄고 더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부처님의 나라, 그리고 가피에 대해서도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어느덧 기도는 밥을 먹는 것처럼 당연히 하는 것이 되었고 오히려 못하는 날은 왠지 허전했다. 그렇게 어느덧 1년이 또 흐르고 또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이번에는 대만이었다. 대만, 내가 알고 있던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깨끗하고 성지순례 길를 잘 조성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대만이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불광산사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이었다. 크고 넓은데 하나하나에 눈이 가고 사람들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듯 장엄했다. 불타기념관의 무장애 길과 대만 사람들 앞에서 했던 보리수아래 작은 음악회도 잊을 수가 없었다. 누구나 가서 보면 또 오고 싶다고 느낄 만큼의 불교적 가치가 무궁무진한 곳이었다. 그렇게 순례를 잘 다녀온 뒤 베트남과 장애시인들과 공동시집을 출간했다. 이번에는 내가 쓴 시도 시집에 실리게 되었다.

보리수아래와 함께 하면서 큰 변화도 많이 일어났다. 중증의 장애를 가진 회원들 각자마다 능력과 소질에 맞게 키워주고 신행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최명숙 회장님의 노력이 숨어 있는 결과였다. 불자로 예술인으로 생각지도 못해봤던 일들이 일어나고 혼자서는 쉽게 행동에 옮기거나 이루지 못했을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가고 있다. 

첫째는 내가 쓴 시에 콩나물이 더해져 아름다운 음악이 되어 보리수아래 음반에  실렸고, 둘째는 내가 쓴 시가 책에 실려 아시아장애인공동시집에 실려 출간됐으며 베트남 시인들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내가 다시 사람들과 즐겁게 웃으며 그 자리에 함께 어울릴 수도 있게 됐다는 점이다.

교통사고로 다친 후에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힘들어지고 사람들과의 소통에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정신줄을 놓는 내가 무서웠던 시절이 있었다. 집에서 기다려도 보고 술에 지탱해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부처님은 나를 떠나시지 않고 나를 잡아주셨다. 불제자로서 살아가는 일이 행복하고 앞으로 더 수행 정진해야겠다는 다짐을 늘 하곤 한다. 참 평범한 사람 같으면 꿈에도 못 꿀 롤러코스터를 탄 듯 한 내 인생, 자칫 잘못하면 저 아래 구렁텅이로 깊이깊이 빠질 뻔한 내 인생, 그런 인생을 잡아준 것은 꾸준히 해온 108배와 사경기도였다. 옆에서 구렁텅이로 빠지지않게 잡아준 가족들, 그리고 새로운 길도 있다고 알려주고 잘 갈 수 있게 이끌어준 범종 스님, 함께 손잡고 동행해 준 보리수아래 가족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좋은 인연의 시작은 부처님의 법이었던 것 같다. 108배 기도를 하면서 몸은 점점 좋아지고 사경기도하면서 마음과 일상이 조금씩 차분해졌다. 보리수아래와 함께 하면서 제일 중요한 ‘함께’라는 것을 배웠고 어느덧 그렇게 부처님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모두의 좋은 인연에 감사드린다.

감사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부모님! 감사합니다 범종 스님! 감사합니다 보리수아래! 감사합니다 친척들 친구들!

 

[1488 / 2019년 5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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