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수기 당선작] 포교원장상-최옥란
[신행수기 당선작] 포교원장상-최옥란
  • 법보
  • 승인 2019.05.07 15:43
  • 호수 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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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성한 어머니는 이생에 화현하신 나의 불보살님이었네

피해 망상증 시달리는 어머니
연변 뒤로하고 한국으로 유학 
피해망상과 딸에 대한 집착이 
극심했던 어머니의 정신 분열 

유학생활중 발견 자궁경부암
분노로 뭉친 가슴의 한 극한
사기꾼 탓에 법정에 선 어머니
구하려 연변 돌아가 법정다툼

지칠대로 지쳐 돌아온 한국서
폐관수행 정각 스님 정법 만나
풀리지 않는 어머니와의 고통
눈녹듯 풀려 하염없이 눈물만

어머니와 마음의 전화로 위로
통화하는 어머니 늘 즐거워해
몸도 마음도 몰라보게 회복돼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태어나서부터 나는 고국인 대한민국에 오기 전까지 한 번도 사찰을 방문해본 적도, 가사를 입은 스님들을 만난 적도 없는 그야말로 불법의 불모지에서 살아온 중생이었다. 비록 육조혜능 대사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선종의 5가7종이 꽃을 피운 중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내가 태어난 연변이란 곳은 조선족 교포들이 모여 사는 변방의 산촌으로 변변한 사찰 하나 없었던 곳이었다. 오로지 박사학위를 받아 교수가 되면 앞날에 탄탄대로가 펼쳐지리라는 출세의식에만 젖어 시작한 유학생활이었지만 나는 고국인 이곳 대한민국에서 부처님을 만났다. 

어찌 보면 도망치듯 온 유학이었다. 중국 속담에 어느 집에나 말 못할 고통이 있다는 뜻을 가리키는 “집집마다 풀이하기 힘든 경전이 있다”(家家都有 念的經)는 말이 있듯이 나는 정신분열증의 일종인 심한 피해망상증에 시달리는 어머니 때문에 큰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왔다. 내가 어려서부터 어머니는 당신의 딸이 암세포의 침습을 받아 오래 살지 못하고 곧 죽게 된다는 망상에 빠져 한 달에도 몇 번이고 큰 병원에 데리고 가 정밀검사를 받게 하고 피를 뽑는 고통에 시달리게 했다. 이 세상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죽어가는 딸을 구한다고 한 겨울 나를 들춰 업고 집 문을 나서려던 어머니의 모습과 “저 미친년이 애 하나 잡겠다”며 필사적으로 말리던 외할머니의 싸움이었다. 어머니의 집착은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미행으로까지 이어졌고, 급기야 나를 해치려고 하는 마구니들이 득실댄다는 병적인 광기를 부릴 지경까지 이르렀다. 정신병자하고는 도저히 살 수 없다며 맨날 어머니를 구타하시던 아버지는 끝내 이혼을 하고 집을 나가셨다.

정신병원에 여러 차례 입원을 시켜봤지만 정신적 장애인들에 대한 인권의식이 부족한 그곳에서 함부로 환자들을 대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마음이 약해져 다시 집으로 데려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머니의 증상이 극에 달한 것은 내가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뒤부터였다. 어머니는 급기야 딸이 건장한 남자들한테 능욕을 당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 검은색 승용차만 보면 딸을 해치러 오는 것이라 착각하며 눈에 독기를 품고 차를 향해 돌진했다. 

세상과 어머니와 벽을 쌓고 공부에만 매진하던 나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유학 생활을 하는 도중 나는 자궁내막증식증에 걸려 한차례의 수술을 받게 되었고 급기야 2년 뒤에는 자궁경부암 1기 판정을 받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분노로 똘똘 뭉친 내 가슴의 한이 응어리가 되어 다시 자신을 후려치면서 우울증에 걸려 3년 간 정신분석 상담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독기를 품고 살아왔던 내가 부처님의 정법을 만난 것은 2016년 9월이었다.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가 결국 큰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사기꾼들이 딸을 구하려는 일에는 목숨을 걸고 나선다는 것을 알고 우리 집을 팔아넘겨 돈을 챙겨 도망갔고 어머니의 얼마 안 되는 퇴직금 통장마저 앗아갔다. 연변인민법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나는 뒷수습을 하기 위해 미움과 한이 서려 있는 고향에 갔다. 결국 8개월 정도 긴긴 법정싸움을 벌리다가 나는 온 몸의 에너지를 모조리 소진한 상태로 한국에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열심히 수행을 하면 복을 쌓을 수 있다는 지인의 소개로 나는 불교를 접하게 되었다. 기도한다고 모든 게 다 좋아질 수 있을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꽉 차 있었지만 그때 나는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인분은 태국에서 제8회 세계청년불교심포지엄이 열리는데 한국에서 22년 동안 폐관수행을 하신 미륵사 정각 스님이 북방불교의 대표로 ‘불교의 평화관’에 대한 법문을 하시게 되었는데, 참석자 대부분이 중국인이라 현장에서 순차통역을 맡아줄 수 없는지 부탁해 왔다. 

그렇게 나는 마음이 피폐하던 찰나에 종교나 한번 가져볼까 하는 얕은 생각으로 불교를 접하게 되었다. 동시통역 경험을 많이 쌓아서 나름 이 분야에는 일가견이 있는 편이었지만 불교 통역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우연한 것이 없다고 지금 돌이켜보면 불교 통역을 시작한 것도, 또 이를 계기로 스승님이신 정각 스님을 만나게 된 것도 인연법에 따른 이치이겠지만, 그때 6개월간 불교 통역 트레이닝을 받고 같은 경전과 생활불교 서적에 대한 중국어와 한국어판본 두 개를 비교하면서 시작했던 불교 공부는 비로소 나를 정법으로 인도하였다.

무엇보다 말법시대에 22년 동안 폐관수행을 하고 나오셨다는 정각 스님이 궁금해졌다. 또 실타래같이 엉켜버린 나의 마음을 정화해줄 스승님을 만날 것 같은 기대감에 처음으로 한줄기의 서광을 본 것 같았다. 정각 스님과의 첫 인연이었다. 나는 어머니와의 풀리지 않는 인연법이 궁금해서 처음 뵌 스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법문을 청했다.

“자고로 스승들은 제자들의 미혹된 점을 일깨워주기 위해 스스로 허물을 뒤집어 쓰지, 어머니는 옛날부터 자네에게 큰 가르침을 주셨던 스승일세. 지금 생에도 마찬가지고. 번뇌의 씨앗을 보리의 씨앗으로 승화시키게. 어머니는 아주 수승한 영혼의 소유자일세.”

뭔가 가슴에 꺽 막혀오는 묘한 감정이 들어 오열을 하였다. 어머니가 나의 스승이었다니. 불편하다고만 느꼈고 내 발목을 잡는 존재라고만 생각해서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고만 생각했지, 진정으로 어머니의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정각 스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나는 자주 스님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고 법문을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머리 굴리지 않고 스승님이 주는 가르침 그대로 행해보려고 노력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참회합니다.”

108배를 매일 하다 보면 어머니가 좋아지겠지 하는 얄팍한 기대를 품고 시작한 게 아닌 진정으로 어머님께, 그리고 자신의 영혼에 참회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굽혔다. 그렇게 108배를 시작하고 매일 경전 공부를 하고 정진을 하던 어느 날, 명상을 하려고 눈을 감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갑자기 정신분석 상담을 받을 때 반복적으로 꿈에 나타났던 힘 없는 여성을 구타하는 남성의 모습이 아주 오래전의 ‘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매를 맞던 여성은 전생의 나의 스승이자 지금의 어머니로 인연을 맺은 최인자 보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했다. 나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이른 새벽 정각 스님께 전화를 드렸다.

“이제 뭔가 제대로 알아가는 것 같구려. 꿈과 현실이 둘이 아니라오. 묵은 숙제를 풀면 찬란한 광명의 지혜가 나타날 것일세. 부디 그대의 영혼을 소중히 여기시오.” 

스님께서는 내가 이번 생에 어머니의 영혼을 구해줘야 하는 서원을 세우고 왔다며 이제부터는 적당한 방편으로 어머니께 법문을 해주라고 숙제를 내주셨다. 어머니의 참나는 알아들을 터이니 진심으로 영혼과 영혼의 대화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열어보라고 하셨다. 

나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매일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불교, 죽음, 영혼이라는 말을 하면 거부감이 들 수 있으니 “엄마, 여기서 어떤 스님을 만났는데 아니 글쎄 그 분이 저 120세까지 무병장수한대요. 하하.” 

그런 방편을 써가면서 어머니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 하실 때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어머니는 딸과의 통화시간을 즐거워하셨다.

기적이 일어났다. 2019년 나는 중국에 계시는 어머니를 모셔와 미륵사에서 정각스님과 함께 구정을 보내며 한 달 가까이 머물게 하였다. 딸을 구한다며 통장에 있던 중국돈 8000위안(한화로 150만원)을 탈탈 털어 인천행 비행기에 오르셨던 어머니가 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몸도 마음도 건강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갔다.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는 주변인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변하셨다. 무명이 벗겨지고 눈 밝은 명안존자로 재탄생되신 것이다. 구름 뒤에 가려져 있던 밝은 달에 구름이 걷히니 진면목을 드러냈다. 어머니는 매일 스님이 내주신 ‘관세음보살보문품’ 3회 독송을 열심히 하며 등산도 다니고 다리 운동 삼아 아침마다 108배를 시작하셨다. “우리 딸을 살려주십시오”라는 기도에서 “저에게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십시오”라고 기도 제목도 바뀌었다.

정각 스님의 가르침대로 외부세계에서 부처를 찾으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성불에 귀의해서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티끌의 구함도 없으려고 노력했다. 어머니는 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중생의 탈을 쓰고 나의 어리석은 미움을 열어주기 위한 제불보살의 화현이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나의 고국 대한민국에서 나는 부처님을 만났다.

 

[1488 / 2019년 5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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