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수기 당선작] 총무원장상 - 이정희
[신행수기 당선작] 총무원장상 - 이정희
  • 법보
  • 승인 2019.05.07 15:46
  • 호수 148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생 스님의 갑작스런 입적…허망한 삶 돌려 부처님 품에 안기다

프랑스에서 수행 중 입적한 동생
참담한 슬픔 속에서 불연 싹 터

불교 공부하며 옹졸했던 삶 반성
참선과 기도로 조금씩 마음 열려

말기암 투병 속 두려워 떨던 남편
‘금강경’ 들으며 꽃바람에 떠나

49재 지내며 매일 절에서 기도
남편 떠난 지 4년째 변함없어

불법 만난 것이 이생의 큰 행복
죽음, 두렵지 않을 때까지 정진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해 열린 제 6회 신행수기 공모에서 이정희 불자의 ‘진흙에서 핀 연꽃처럼’이 대상인 총무원장상을 수상했다. 조계종 중앙신도회가 주최하고 법보신문과 불교방송이 공동주관 한 신행수기 공모에는 총 162편이 접수됐다. 수상작 20편 중에 총무원장상을 비롯해 포교원장상, 중앙신도회장상 등 10편을 지면에 소개한다. 편집자주

출근길에 내가 다니고 있는 절 죽림사에 들렀다. 죽림사는 도심 절이지만 대나무와 산으로 둘러 쌓여있어 아늑함이 느껴지는 포교당과 불교대학이 있는 사찰이다. 전생부터 지은 죄업을 참회하는 108배를 올리고, 법당 주변을 청소한다. 내 마음도 함께 닦아지길 서원하면서 상쾌한 마음으로 출근했다. 

불교와의 인연은 막내였던 남동생이 출가하면서 시작됐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똑똑했다. 우리는 중학교 졸업이 전부이지만 부모님은 막내에게만은 각별해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대구로 전학해서 공부를 시키셨다. 우리 가정의 희망이었다. 대학도 졸업하고 결혼도 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다. 그러다가 IMF로 실직을 하고, 삶의 회의를 느꼈던 것 같다. 동생은 출가 이후 선방에서 20안거를 성만하고, 프랑스 플럼빌리지에서 안거를 나던 중 건강이 나빠져 급히 귀국하게 됐다. 그리고 20일이 채 못 되어 구도의 여정을 멈춘 채 원적에 들었다.

동생과 유별나게 우애가 좋았던 나에게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번민과 무기력 속에서 괴로웠다. 나는 스님이 플럼빌리지에서 쓰러지셨을 때 도움을 주셨던 분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얼마 뒤 플럼빌리지에서 회신이 왔다. 안타깝다는 말과 함께 스님이 안거에 드셨던 분들과 찍은 사진이 도착했다. 서양의 스님들 사이로 환하게 웃고 있는 스님의 모습을 보니 살아있는 듯 무척이나 반가웠다. 문득 스님이 어떤 공부를 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서점에서 책을 사서 보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도중 전율과 함께 몇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마음 관찰하기’ ‘알아차림’ 같은 낯선 낱말이었다. 

불교 공부는 그렇게 시작됐다. 포항에서 1시간 걸리는 보경사에서 기초교리 강의를 한다기에 배우러 다녔다. 참선반에도 들어갔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소를 사고파는 중개를 하셔서 장날마다 우시장을 다니셨다. 농사일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밭이 많아서 어머니는 종일 밭일에 매달리셨다.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저녁이면 취하셔서 세상을 향해 분노를 폭발했다. 그래서 큰소리가 나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다. 불안하고, 두려웠다. 어머니는 현모양처였다. 자식들에게 큰 소리 내신 적도 없고, 아버지를 원망하신 적도 없었다. 

어머니를 힘들게 하셨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성장해가면서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 분노를 잘 조절할 수 없었고, 적개심이 많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 셋을 낳았는데 말단 공무원이었던 남편도 술을 좋아하고, 친구들이 많았다. 집안일보다 나다니는 걸 좋아했다. 나는 어린 시절 가난이 싫어서, 아이들을 떳떳이 공부시키고 싶었다. 식당에서 하루 12시간 일만 했다. 종교는 관심이 없었고, 나를 돌볼 여유도 없었다. 오로지 아이들 잘 먹이고, 공부시키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아이들은 빗나가지 않고 잘 자라주었다. 불교공부를 하면서 틱낫한 스님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5살 아버지를 만나보라고 했다. 

나는 조용히 5살 아버지를 명상해 보았다. 열다섯 식구가 가난과 굶주림으로 산으로 들로 밭으로 모두 나가, 혼자 남겨졌을 5살 아기는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까. 배고픔과 무관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했을 몸짓이 보았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버지에 대한 뜨거운 회한이 밀려왔다. 술을 드시지 않은 아버지는 인심이 좋으셔서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술을 권하고, 집에 오는 사람은 그냥 보내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힘드셨지만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이제 두 분은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한번도 어머니와 터놓고 이야기 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관절염으로 뒤틀린 손을 한 번이라도 따뜻하게 잡아드리지 못한 미안함, 그리고 약주를 좋아하시는 아버지께 술 한 잔 권해드리지 못한 옹졸함이 나를 아프게 했다. 그러나 바늘구멍 보다 작던 내 소견이 참선과 기도를 하면서 조금씩 열리게 됐다.

그러던 중 남편에게서 암이 발견됐다. 직장도 그만뒀고 웃음도 사라졌다. 여러 장기로 암은 퍼져나갔지만, 남편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육체적 고통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나는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살려달라고 부처님께 매달렸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남편의 두려움의 눈빛을 보면서 내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내가 진정 남편을 위하는 일은 무엇일까? 말 한마디가 마음의 상처가 되어 더 큰 분노와 좌절이 될 수 있기에 가족들도 행동을 무척 조심했다. 며칠을 고민하다 용기를 내었다. 나는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여보, 한번 놓아보세요. 팽팽하게 잡아당겨져 있는 고무줄,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무서웠던 그 줄이 손에서 놓는 순간 긴장되고 불안했던 마음이 사라지는 것처럼, 당신이 잡고 있는 삶에 대한 애착을 한 번 탁 놓아보세요.”

남편의 눈빛이 흔들렸다. 며칠이 지나자 남편의 표정에서 평온함이 느껴졌다. 수시로 ‘금강경’도 들려 줬더니 얼마 후 스스로 ‘금강경'을 듣고 있었다. 그렇게 10개월의 투병 생활을 뒤로 한 채 벚꽃이 흐드러지게 만발한 봄날, 남편은 꽃바람을 타고 흰 구름 따라 사랑하는 가족들 곁을 떠나셨다. 

31년을 같이 살았다. 미운 정, 고운 정,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는 동반자였다. 아이들을 기르고 살 때는 소중함을 몰랐다. 늘 옆에 있을 줄 알았다. 투병 생활을 하며 같이 했던 시간들, 우리는 한마음으로 아팠고 애틋했다. 남편의 인간적인 면을 보았고, 여리고 나약함에 울었다. 꿈처럼 환영처럼 함께했던 31년의 시간은 행복했다. 49재를 지내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절에 가서 기도 하면서 마음을 추슬렀다. 법당 청소도 하고, 절 주변을 청소했다. 남편이 떠난 지 4년이 된 지금도 변함이 없다.  

부처님 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제 아이들도 자리 잡아 잘 살고 있다. 그래서 하지 못한 취미 생활을 살려 60세가 가까워져 오는 나이에 동양화에 도전해서 배우고 있다. 모르는 것을 알아간다는 건 신나는 일이다. 그림이 완성되어 가족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주면 일취월장했다고 붕 띄운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2년 과정의 불교대학도 졸업을 했다.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불교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과정이라고 본다. 참 불자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이다. 불교 대학을 졸업하면서 좋은 점은 도반이 많이 생긴 것이다. 템플스테이도 가고, 성지 순례도 다닌다.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법회도 하고, 교리 공부도 하면서 부처님 법을 공유 할 수 있어서 참 좋다. 또 주지 스님께 허락을 받아 1년 전 시민선방을 만들었다. 일주일에 4일을 퇴근하고 난 뒤 2시간씩 참선을 한다. 스님의 지도로 청규도 만들고, 죽비 소리에 맞추어 좌복 위에 앉는다. 

스님께서 노력 없는 깨달음은 없다고 하셨다. 참선을 하면서 나에게 변화를 느꼈다. 예전에 그냥 흘려보냈을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 물소리, 스치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아름다운 꽃에 감사 할줄도 알게 되었다. 모두가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한 발짝 물러서서 나를 바라본다. 해야 할 말, 하지 말아야 될 언행들, 내면에 나를 볼 수 있는 것도 조금씩 변화돼 가는 내 모습이다.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내 안으로 돌리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 화내는 마음 조용히 바라본다. 이 마음이 어디서 왔는가. 수 없이 묻고 묻는다.  잠자리에 들기 전, 신묘장구대다라니 21독과 ‘금강경'을 독송한다.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한다.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 될 소중한 하루, 그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건강했던 남편이 생로병사의 죽음 앞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았고, 죽음을 앞두고 화두를 챙기면서 얼굴에 편안한 미소를 띠고 계셨던 스님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내게 죽음이 찾아왔을 때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이 자유자재 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정진할 것이다. 

나를 바꾸어 가는 길, 마음을 닦아가는 공부가 최상의 행복에 이르리라는 걸 오롯이 믿는다.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는 내가 백천만겁 지나도 만날 수 없는 불법을 만났으니 내 이제 보고 듣고 받아지니니 부처님의 진실한 뜻 알아지이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1488 / 2019년 5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