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와 지역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공동체 ‘불자마을’
낙산사와 지역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공동체 ‘불자마을’
  • 임은호 기자
  • 승인 2019.05.07 15:51
  • 호수 14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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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낙산사 불자마을

2017년, 낙산사 인근 용호리
국내 최초 불자마을로 재탄생 
낙산·사천리·손양면도 잇따라

매달 1회 낙산사서 법회 봉행
장거리·고령화 지역 특색 맞춰
스님이 찾아가는 법회도 성황

주지 금곡 스님, 2005년 화재 때
복지 불사 1순위 삼고 주민 챙겨
사찰과 지역 공동체 상생 협력

“낙산사, 양양지역 주민 이웃이자
더불어 사는 의지처 역할 할 것”
불자마을 주민들은 낙산사와 긴밀한 관계 속에 자발적으로 부처님 법을 따르며 생활한다. 불자마을은 종교를 넘어 우리 전통문화 속에서 지역민들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지역 문화를 조성하고자 기울인 오랜 노력이 맺은 소중한 결실이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불자님 생일 축하합니다.”

따스한 봄날, 생일 축하 노래가 ‘낙산불자마을’에 퍼졌다. 이날 주인공은 20년 넘게 낙산사 아래서 건어물을 파는 어경희씨. 어씨는 생일날 케이크를 직접 들고 찾아온 낙산사 포교국장 수미 스님에게 연거푸 감사인사를 전했다. 스님은 “항상 건강하고 집안이 평안하기를 기도드린다”며 진심어린 축원까지 잊지 않았다.

스님이 즉석에서 사진을 뽑아 선물하자 어씨는 “상가 전체가 불자마을이 된 후 스님께서 생일이면 꼭 찾아와 축원까지 해주시니 앞으로 일이 더 잘 풀릴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

불자마을 회원 300여명의 생일을 빼놓지 않고 다 챙기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수미 스님은 기뻐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 오히려 힘이 난다. 이처럼 생일을 꼬박꼬박 챙기는 것은 양양 낙산사 주지 금곡 스님의 당부에서 시작됐다. 어르신들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나누자는 취지였다. 수미 스님은 “멀리 사는 자식들이 평일 생일을 챙기는 게 쉽지 않기에 더욱 살뜰히 살피려고 노력 한다”고 말했다.

낙산불자마을은 낙산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마을공동체로 4개 불자마을 중 한 곳이다. 불자마을 주민들은 낙산사와 긴밀한 관계 속에 자발적으로 부처님 법을 따르며 생활한다. 사찰을 중심으로 불자마을을 만든 것은 낙산사가 처음이다.

낙산사 불자마을은 2017년 탄생했다. 낙산사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강현면 용호리가 그곳이다. 주민들은 7월10일 낙산사에서 ‘낙산 불자마을’ 창립법회를 봉행하고 불자로서의 삶을 서원했다. 마을 입구에는 ‘불교인의 마을’이라는 간판이 내걸렸고, 마을 안에는 수미탑도 세워졌다. 용호리 마을 입구 건너편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서핑 핫플레이스’로 통하는 설악해수욕장이다. ‘불교인의 마을’이라는 간판을 보고 호기심에 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부쩍 늘어나면서 적막했던 마을이 점점 활기를 띠고 있다. 용호리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불자마을을 만든 것은 낙산사가 물심양면으로 마을 주민들을 도운 결과다.

낙산사는 2013년 용호리에 ‘가스 정업 관리소’를 설치하려는 한국가스공사의 결정에 반발하며 마을 주민들과 함께 사업부지 이전을 촉구하는 데 힘을 보탰다. 당시 용호리 대책위와 낙산사는 “문화재보호구역에서 5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가스공급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주민들과 문화재의 가치를 외면하는 처사”라며 이전을 촉구해 양양군으로부터 건축 불허를 끌어냈다. 낙산사는 이어 2016년 11월, 마을 공동체가 중심이 돼 소득을 창출하는 ‘기업형 새농촌 도약마을’에도 용호리가 선정될 수 있도록 적극 도왔다. 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대량 구매하면서 지역 상권에도 큰 도움을 주는 등 상생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언제든 나섰다. 용호리 주민들은 연이은 낙산사의 도움에 감사의 뜻을 표하며 매해 부처님오신날과 김장철이면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해 힘을 보탰다.

사찰과 이웃 주민의 연계가 지역발전에 큰 견인차가 될 수 있겠다고 여긴 용호리 마을 주민들은 낙산사에 자매결연을 먼저 제안했다. 이후 마을 총회를 거쳐, 자매결연에서 한발 더 나아간 불자들이 국내 첫 불자마을을 결정한 것이다.

이동근 용호리 불자마을 이장은 “불자마을이라는 타이틀 하나로 동네에 대한 자긍심이 생기면서 주민들이 너와 내가 아닌 공동체로서 마을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며 “스님들로부터 좋은 법문을 듣는 것도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용호리가 불자마을이 된 지 1년 반, 그사이 불자마을은 4개로 늘었다. ‘낙산불자마을’ ‘사천리불자마을’ ‘손양면불자마을’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 중 ‘낙산불자마을’은 주민 상당수가 사찰 아래 건어물 상가 상인들이다.

“낙산사 덕분에 자식들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보냈지요. 가게 문을 열기 전 홍련암에 가서 뜨는 해를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탈 없이 장사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 올린답니다.”

이들은 지역과 상생하는 낙산사에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용호리가 불자마을이 된 것을 보고 먼저 제안을 했다. 뜻을 같이한 상인과 주민은 약 120여명 정도다. 이들은 매달 회비로 1만원씩 걷어 사찰과 지역을 위해 사용한다. 최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는 자체적으로 상가 연등행렬 행사를 갖기도 했다. 부처님오신날 즈음은 관광객이 많은 성수기로, 일손을 놓을 수가 없기에 미리 당겨 부처님 오심을 축하한 것이다.

용호리와 낙산, 사천리 불자마을은 매월 첫째 월요일 저녁 7시 낙산사 보타전에서 법회를 연다. 참석인원은 150여명 정도인데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매회 조금씩 늘고 있다. 예불과 법문 후에는 사찰 예절교육이 이어진다. 합장부터 절하는 방법, 목탁 치는 법 등 직접 참여하는 사찰문화에 주민들의 호응이 매우 높아 앞으로 합창단과 함께하는 찬불가 수업도 계획하고 있다. 낙산사는 늦은 저녁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사찰을 찾아오는 불자마을 주민들에게 작게나마 김이나 커피 등 마음이 담긴 선물을 전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이지만 인근 지역 주민들과 법회를 통해 만남의 시간을 갖다보니 결집력도 생겼다. 지난 3월에는 4개 불자마을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체육대회를 열고 신명나는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낙산사는 앞으로 주민 모두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낙산사는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찾아가는 법회도 진행 중이다. 낙산사와 꽤 떨어진 ‘손양면불자마을’ 어르신들을 위해서다. 지난 4월9일 창립한 손양면불자마을에는 유난히 고령의 어르신들이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동을 불편해하는 어르신들이 많아지자 낙산사에서 이동식 법회를 제안했고 이것이 불자마을로까지 발전하게 됐다. 매월 둘째 화요일 저녁 7시, 손양면 마을회관은 사찰로 변한다. 낙산사 스님들이 직접 마을을 찾아 봉행하는 법회에는 평균 80여명의 어르신이 참석한다. 매번 반응이 좋아 참석자들이 점점 더 늘고 있는 추세다.

이처럼 낙산사 인근 마을들이 하나 둘 씩 불자마을이 된 이면에는 2005년부터 시작된 낙산사의 포교 원력과 노력이 있었다. 2005년, 낙산사는 화재로 도량 대부분이 전소되는 참사를 맞았다. 전 국민의 관심이 천년고찰, 문화재 복원에 집중됐다. 하지만 가장 큰 아픔을 겪은 이들은 낙산사와 함께 화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웃들이었다. 복원에 앞서 낙산사는 먼저 물심양면으로 마을 주민들 돕기에 나섰다. 당시에도 낙산사 주지였던 금곡 스님은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고 도량을 복원한다는 것은 ‘중생의 이익과 행복’이라는 부처님 가르침과 맞지 않았다”며 “낙산사가 도량복원이라는 힘에 부치는 불사를 진행하면서도 지역주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했던 것은 바로 그곳에 사람들의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낙산사는 도량 복원이라는 첫 삽을 들며 화재로 상처 입은 양양군민의 마음을 보듬는 복지 불사에 뛰어들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의 복구활동을 돕는 자원봉사가 그것이다. 대다수 용호리 주민들을 포함한 이재민 160여 가구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농산물상품권을 전달하고 화재로 집을 잃은 주민들에게는 낙산사 산하 노인요양시설을 임시거처로 제공했다. 낙산사에서도 사찰 관람료를 폐지하고 무료 국수 공양을 시작했다. 지역주민들과 아픔을 함께 하겠다는 낙산사의 진심은 단단하게 옹이져있던 주민들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 관음보살의 천수가 됐다.
금곡 스님은 “낙산사 복원 불사는 수년만에 마무리 되었지만 지역 주민들의 상처를 보듬지 않았다면 낙산사는 지역 주민들의 마음에서 멀어지게 됐을 것”이라며 “지난해 열반하신 설악무산 큰스님께서 언제나 지역의 어르신들을 부처님같이 모시라는 가르침을 실천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낙산사의 자비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도량 복원보다 복지 불사를 1순위 과제로 삼았다. 전체 군민 수가 3만여명이 채 되지 않는 양양군은 65세 이상 노년층 비율이 전체 군민의 20%에 육박할 만큼 노인이 많았다. 이러한 지역 환경에 맞춰 낙산사의 복지활동은 노년층 보듬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낮 시간 동안 보살피는 센터를 대폭 확장하고 노인요양원인 상락원을 개원했다. 또 무료급식소를 열어 하루 평균 250여명의 어르신에게 무료 점심 식사를 제공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매해 설과 추석, 부처님오신날 등 3차례 이상 어르신들에게 만발공양을 올린다. 낙산사가 마련하는 어르신 큰잔치는 이미 지역 명물이 돼 매번 2000~4000명의 어르신이 참석한다. 낙산사는 거리가 멀고 고령의 어르신이 많은 마을에는 버스를 보내 더 많은 어르신이 만발공양에 참석하실 수 있도록 배려한다.  

금곡 스님은 ‘마을 공동체’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스님은 “낙산사는 양양지역 주민들의 이웃이자 평생 더불어 살아갈 의지처”라며 “불자마을은 종교를 넘어 우리 전통문화 속에서 지역민들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맺은 소중한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이어 “낙산사는 양양의 중심인 동시에 지역주민들의 도량”이라며 “불자마을을 통해 불교가 우리 일상 속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양-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1488 / 2019년 5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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