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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나무(木)와 나무(南無) ② - 동은 스님

기자명 동은 스님

나무 아래서 태어나고 깨닫고 열반에 들다

부처님은 무우수 아래서 탄생
명상에 도움준 건 염부수나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고
열반은 사라쌍수 지켜 보았네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의미로
‘나무’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그러니 나무(木)=나무(南無)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대왕이시여, 제가 이제 아기를 낳을 때가 되었습니다. 친정인 데바다하(천비성)로 가서 그곳에서 아기를 낳고자 합니다.” 

천지에 봄꽃이 만발한 어느 날, 마야왕비가 정반왕께 이야기 했다. 정반왕은 기뻐하며 마야왕비의 출궁을 허락하였다. 마야왕비는 길을 나섰다. 카필라성과 데바다하의 중간에, 마야왕비 어머니의 이름을 딴 ‘룸비니’ 동산이 있었는데 ‘무우수’ 나무로 우거져 있었다. 이 동산을 지나던 왕비는 동산의 아름다운 모습에 끌리어 이곳에서 쉬어가고 싶어졌다. 왕비는 가마를 무우수 나무 숲 속으로 옮기게 하였다. 신하들은 가마를 메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마야왕비가 숲으로 들어오자 나무들은 모두 꽃으로 장엄을 하였으며 새들도 천상의 소리로 지저귀면서 날아다녔다. 동산은 마치 도리천에 있는 환희의 동산인 ‘난다나’ 같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왕비는 가마에서 내려, 많은 나무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무우수나무 아래에 이르렀다. 왕비가 꽃이 활짝 핀 가지를 잡으려고 팔을 뻗어 올리자 가지는 스스로 내려와 왕비의 손 가까이에 닿았다. 왕비가 그 꽃가지를 잡자 곧 산기(産氣)가 일어났다. 이윽고 왕비는 그 꽃가지를 잡고 선 채 오른쪽 옆구리로 아기를 낳았다. 부처님이 태어난 이 나무가 바로 무우수(無憂樹), ‘근심이 없는 나무’이다. 

“시이 사바세계 남섬부주 동양 대한민국······.” 

스님들이 매일 사시불공을 드리고 읽는 축원문의 한 구절이다. 남섬부주(南贍部洲)는 수미산의 남쪽 염부수 숲이 있는 인도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인간 세계를 의미하는 말로 개념이 확장되었다. 화창한 봄 날 싯다르타 태자는 아버지 정반왕과 함께 농경제에 참석했다. 농부들이 힘차게 땅을 갈자 숨어있던 벌레들이 꿈틀거리며 기어 나왔다.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어디선가 날아온 새 한 마리가 벌레를 낚아채 갔다. 그런데 벌레를 채간 새를 독수리가 다시 잡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환희에 찬 봄날에 태자는 약육강식의 현장을 목격한 것이었다. 

충격에 빠진 태자는 숲속으로 들어가 깊은 사색에 빠졌다. 축제에 정신이 팔려있던 대중은 태자가 없어진 것을 알고 온 숲을 찾아 나섰다. 저 멀리 태자가 나무아래 앉아 사색에 잠겨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주변의 나무들은 모두 해를 따라 그늘을 옮겨가는데 태자가 앉아 있는 나무는 그늘을 옮기지 않고 계속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정반왕은 자기도 모르게 아들 싯다르타 태자에게 허리를 숙여 예를 올렸다. 이때 싯다르타 태자의 명상을 도와준 나무가 염부수(閻浮樹)이고 이를 일러 ‘염부수 아래의 정관(靜觀)’이라고 한다. 

“내가 이제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출가를 하나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이 문을 다시 들어오지 않으리라. 내가 출가사문이 되는 것은 세속을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혜와 자비의 길을 찾기 위함이라.” 

세속의 어떠한 환락도 결코 생사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절감한 싯다르타는 대를 이을 수 있는 라훌라가 태어나자 드디어 출가를 한다. 

“보전에 주인공이 꿈만 꾸더니 무명초 몇 해를 무성했던고. 금강보검 번쩍 깎아버리니 무한광명이 대천세계 밝게 비추네.” 

게송을 읊은 후 혼자 삭발을 한 태자는 같은 날 태어나 친구처럼 지냈던 울고 있는 마부 ‘찬나’와 애마 ‘깐타까’를 성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지나가는 거지와 옷을 바꿔 입고 수행의 길을 나섰다. 

스승을 찾아다니며 설산에서 뼈를 깎는 고행을 한지 어언 6년. 궁극적인 깨달음에 이르기에는 부족함을 느낀 싯다르타는, 결국 고행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강물에 지친 몸을 씻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마을 소녀 수자타가 주는 우유죽을 마셨다. 기력을 회복한 싯다르타는 자리가 반듯하고 전망이 탁 트인 곳의 우람한 나무를 찾아 그 아래 길상초를 깔고 앉았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하고 깊은 삼매에 들어갔다. 마침내 납월 팔일, 완전한 깨달음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붓다’가 되니, 태자가 앉았던 나무는 ‘깨달음을 얻은 나무’ 즉, ‘보리수(菩提樹)’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자 아난이여! 이 두 그루 사라나무 사이에 머리가 북쪽으로 되도록 자리를 준비하여라. 나는 이제 피곤해서 누워 쉬고 싶구나.” 

아난이 자리를 펴자 부처님은 머리를 북쪽에 두고 얼굴은 서쪽으로, 오른쪽 옆구리를 자리에 붙인 채 두 발을 포개어 옆으로 누웠다. 그러자 사라나무가 갑자기 꽃을 피웠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니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슬픔에 학처럼 하얗게 변했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정근 기도할 때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을 독송하기도 한다. 붓다의 열반을 지켜본 이 나무는 사라쌍수(沙羅雙樹)라고 하며 인도에서 신성시되는 나무가 되었다.

부처님의 생애를 보면 중요한 사건들에 나무가 등장한다. 태어날 때는 무우수 아래에서 태어났고, 농경제를 벗어나 명상을 할 때는 염부수 아래였다. 6년간의 고행 후 깨달음을 얻었을 때는 보리수 아래였고, 지친 몸을 이끌고 열반에 드실 때도 사라수 아래였다. 초기불교 조각에는 부처님이 있을 자리에 보리수를 표현하여 부처님을 상징했다. 부처님은 곧 존경과 귀의를 나타낸다. 귀의란 뜻의 범어는 ‘나모(Namo)’이다. 그 나모가 음사되면서 ‘남무(南無)’가 되었고, 이후 ‘ㅁ’이 탈락되면서 ‘나무’가 되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등에 쓰이는 ‘나무’가 바로 그 나무이다. 옛날에는 절을 창건할 때 반드시 은행나무를 심었다. 훗날 불상을 조각할 때 그 은행나무로 조성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목불상은 거의 은행나무이다. 그러니까 나무속에 이미 부처님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우연인지 나무(木)와 나무(南無)는 글자가 같다. 어쩌면 우리 선조들은 나무에서 이미 부처의 성품을 보고 귀의하는 의미로, ‘나무(南無)’로 부르지 않았을까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그러니까 나무(木)는 곧 나무(南無)이기도 하다.

동은 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dosol33@hanmail.net

 

[1488 / 2019년 5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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