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4. ‘법성게’ 제22구: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기자명 해주 스님

부처의 음성은 일음(一音)이나 중생들 근기 따라 달리 알아들어

허공에서 가득 비가 내리나
그릇들 크기 따라 받아들여
근기란 바로 그 그릇의 크기

여래 지혜 순서 구별 없으나
중생 선근 따라 각 차별 생겨

근기는 곧 차별적 근기 아닌
여러 근기임을 반시로 보여

실제 중생 모두 화엄행자로
일승 최상근기인 보현 근기

‘법성게’ 제22구는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이다. “중생이 근기 따라 이익을 얻는다”라는 이 구절은 이타행 4구중 마지막 구이다. 해인삼매의 힘으로 내리는 가르침의 법비가 삼세간을 두루 이익 되게 하는데, 중생들이 근기 따라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근기란 예를 들면 허공에서 가득 비가 내리나 그릇마다 그 크기에 따라 받아들이는 빗물의 양은 다르니, 그 그릇이 근기인 셈이다. 

중생의 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시’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반시’의 그림에서 일도는 일승이고 54각은 삼승을 의미하며, 글자의 굴곡 차별은 삼승의 근기와 욕망이 다른 점을 나타낸다. 부처님은 일음(一音)으로 말씀하시는데 중생들이 근기 따라 다 달리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여래출현품’에서는 ‘부처님이 한 음성 가운데서 한량없는 음성을 내어 중생들의 차별한 마음을 따라 골고루 이르러서 그들로 하여금 해탈케 하신다’고 한다. 또 ‘여래의 음성이 한량없는 중생을 이익케 하는데 언제나 중생의 응당 들을 바를 따르는 것이, 마치 대해의 조수(潮水)가 시한을 어기지 않은 것과 같다’고 한다. 

조수가 시한을 어기지 않는 바다의 공덕은 십지 가운데 선혜지(善慧地)의 지위에 비유되고도 있다. 선혜지는 보살이 걸림 없는 변재[四無礙智辯]를 얻어서 대법사가 되고 법사의 행을 갖추어 여래의 법장을 잘 수호하는 지위이다.

그래서 불보살님의 음성을 해조음(海潮音)이라고도 한다. 해조음이란 바다 조수가 밀물과 썰물의 기한을 어기지 않고 물결이 한결같이 밀려들고 밀려가는 파도소리이다. 특히 관세음보살이 중생들에게 맞추어 이익을 주는 그 해조음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장소로서, 낙산사 홍련암과 중국 보타산 불긍거관음원의 조음동(潮音洞)이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 보타산 불긍거관음원의 조음동.

이처럼 글자가 각각 달라 차별한 것과 아울러, 54각이 큰 모서리에서는 크게 굽어지고 작은 모서리에서는 작게 구부러져 구불구불한 것은 중생의 근기가 다 다름을 따라서 모두 이익 얻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반시’에서 일도와 54각이 분리되지 않고, 또 54각이 없으면 일도가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이것은 일승에서 흘러나오는 것[所流]이 삼승이고, 삼승이 목표로 하는 것[所目]이 일승이므로 일승과 삼승이 주반상성(主伴相成)으로서 서로 다르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흰 종이와 검은 글자와 붉은 줄이 다르지만 세 가지가 한 자리에 있어 서로 여의지 않는다. 삼세간의 문이 각기 달라서 역연히 움직이지 않으나 삼세간 각각에 다른 세간을 갖추어 서로 여의지 않고 융통함을 보인 것이다.  

‘법성게’의 “중생수기득이익”에 대하여, 의상 스님의 법손들은 아래와 같이 이해하고 있다.

“중생이 근기 따라 이익을 얻는다”란, 이 여의(如意)의 가르침이 삼승· 오승· 무량승(無量乘) 등 일체의 중생 가운데서 각각 근기에 칭합하여 이익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문. 만약 그렇다면 이 화엄에서 삼승의 별도의 과보를 얻는가?

답. 없다. 말하자면 이 '대경' (화엄경) 중에 무량승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 경이 갖추고 있는 무량승 가운데 ‘대품경’ 등에서 별도의 과보를 얻을 뿐이다. (법기) 
“근기 따라 이익을 얻는다”란, 산왕(山王)의 두루 넓은 근기[普機]는 총상의 가르침을 얻고 차별한 작은 근기는 차별의 가르침을 얻으니, 각기 스스로 이익을 이루기 때문이다. (진기)  

‘산왕’은 ‘보왕여래성기품’에서 여래의 몸을 설하는 내용 중 일출고산(日出高山)의 비유에 나온다. 즉 태양이 떠서 먼저 대산왕(大山王)을 비추고 대산, 대지 등의 순서로 비추듯이. 여래의 지혜광명도 보살마하살을 먼저 비추고 연각, 성문, 선근중생, 일체중생의 순서로 비춘다. 여래의 지혜에는 이러한 순서의 구별이 없으나 중생의 선근에 따라서 갖가지 차별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처럼 중생이 근기 따라 이익을 얻으나, 그 이익이 삼승의 별도의 과보가 아니다. 근기를 따르는 굴곡의 일도이므로 여의의 가르침인 것이다. 육도 윤회 중생으로부터 소승과 삼승 내지 일승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인과를 22가지로 본 22위가 다 보현위임을 ‘총수록’에서 소개하고 있다. 의상 스님도 이 모든 지위가 보현의 22위이고 보현의 근기임을 강조하고 있다. 각기 다른 삼승의 근기가 실은 일승의 다양한 근기인 것이다. 

이 점은 비유하면 법비가 차별 없이 골고루 내리는데, 중생이 근기 따라 달리 법비를 받아도 각기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도리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중생이 근기대로 각기 달리 얻은 그 보배비가 조금도 모자라지 않은 것이다. 허공에서 평등하게 비가 내리나 큰 나무는 많이 받고 작은 나무는 적게 받는다. 큰 나무는 많은 물이 필요하고 작은 나무는 적은 물이 필요할 뿐이니 수즉수(須卽須)이다. 작은 나무는 적은 물로 충분하다. 물이 적어도 모자라지 않다. 많은 것이 많은 것이 아니고 적은 것이 적은 것이 아닌 것이다.   
설잠 스님의 다음 말씀도 이러한 도리를 잘 드러내준다고 하겠다. 
 

낙산사 홍련암 관음굴 입구.

큰 부자의 집안에는 그릇마다 다 금이고 해인정(海印定) 가운데는 법마다 다 참[眞]이지만, 다만 크고 작음과 모나고 둥글음과 물들고 깨끗함이 다를 뿐이니, 그 얻은 바의 이익이 다른 법은 아니다. 다만 큰 것을 크다 말하고 작은 것을 작다 말하며, 모난 것을 모나다 말하고 둥근 것을 둥글다 말하며, 물든 것을 물들었다 말하고 깨끗한 것을 깨끗하다 말할 뿐이다. 작은 것을 넓혀서 크게 하며 모난 것을 깎아 둥글게 하며, 물든 것을 고쳐 깨끗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알겠는가? 산이 텅 비었으니 바람이 돌에 부딪히고(山虛風落石)/누각이 고요하니 달빛이 문에 들어오도다.(樓靜月侵門) (법계도주)

의상 스님이 ‘화엄경’을 자리행·이타행·수행으로 파악하여 그 핵심을 담은 7언30구에서도 모든 근기를 포섭하고 있다. 자리행의 증분은 증지의 경계이니 불경계이다. 연을 따르는 연기분 14구와 이타행 4구 그리고 수행방편의 4구에서, 해당되는 근기가 일단 다 달리 표현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연기분에서는 전체를 “십불보현대인경”이라고 했으니, 연기분의 근기는 보현보살 근기이다. 보현보살은 십불의 외향이고 십불은 보현보살의 내증이다. 다음 이타행에서 말하는 “중생수기득이익”의 중생근기는 해인삼매의 힘에 의해서 이익을 얻는 근기이니, 삼매 안에서 얻는 이익을 삼매 밖에서 설하여 보이고 있다. 그리고 수행방편에서는 ‘행자’의 근기를 시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근기에 대하여 삼대기에서 오중해인과 연관시켜 자세히 논하고 있다. ‘대기’에서는 “중생수기득이익”의 경우, ‘중생수기’를 제4중해인, ‘득이익’을 제5중해인에 배대시켰다. 어언해인(‘법성게’)에서 이타행에 해당하는 네 번째 해인을 다시 다섯으로 나눈 가운데 제4중과 제5중의 해인이다. 

바로 앞 제삼중해인의 “우보익생만허공”은 교화하시는 부처님이 열보법[十普法]의 보배를 비내려서 보현보살의 근기를 이익 되게 하신다고 하며, 제사중과 제오중에 대해서는 그 근기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뒤의 구(중생수기득이익)는 제사중에서 여의교의 붉은 도인이 근기의 굴곡에 알맞기 때문에 “중생이 근기따라 [衆生隨器]”라고 하며, 제오중에서 언설의 법을 일으켜 중생이 믿고 알며 행하고 증득하게 하는 까닭에 “이익을 얻는다.[得利益]”고 한 것이다. (대기) 

그리고 이와 같이 이익을 얻는 근기로서 초회의 보장엄동자 즉 대위광태자와 마지막 회인 ‘입법계품’의 선재동자를 예로 든다. 보현보살이 별교일승 화엄의 근기라고 한다면, 별교와 아울러 동교일승의 근기로서 대위광태자와 선재동자를 내세운 것이다. 그래서 그 이익도 화장세계의 과(果)와 선지식의 티끌 수 해탈법문 등이다.  

‘대기’에서는 또 수행방편에서 언급되고 있는 ‘행자’가 삼승의 근기로서 동교일승의 교화대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를 기준으로 하면 모든 뛰어난 이가 화엄 행자라고 회통하고 있다.  

이를 부연한다면 만약 자리행의 연기분을 기준으로 하면 별교일승으로서 보현보살의 근기이고, 만약 이타행을 기준으로 하면 별교와 동교일승으로서 대위광과 선재동자의 근기이고, 수행방편을 기준으로 하면 동교일승으로서 삼승 근기가 행자이다. 그러나 실제를 기준으로 하면 이 모든 근기가 다 뛰어난 보현보살의 근기이다.    

따라서 “중생수기득이익”의 근기로는 수행의 인(因)이 잘 나타나 있는 대위광태자와 선재동자를 대표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생들이 모두 다 화엄행자로서 일승의 최상근기인 보현근기이다. 

근기는 바로 원력이라고 하겠다. 선재동자도 보현보살의 십대원(十大願)으로 다시 회향하는 행원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해주 스님 동국대 명예교수 jeon@dongguk.edu

 

[1488 / 2019년 5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