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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화무안수일전(葵花無眼隨日轉)

꿈을 강요하는 사회

중학생 아들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희망진로를 묻는 내용이었다. 아이와 부모가 쓰는 칸이 달리 있었다. 아들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 또한 아이에게 딱히 바라는 희망진로가 없었다. 그래서 ‘없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내심 궁금했다. 선생님은 어떤 답을 원했을까? 아마도 구체적인 직업군을 원했을 것이다.

희망진로는 쉽게 꿈으로 치환된다. “꿈이 뭐야”라는 질문은 “어떤 대학을 가고 싶어. 희망하는 직업은 뭐야”와 같은 말이다. 학교에서, 기업에서, 방송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광고가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라는 표어다.

그래서 우리는 꿈의 과잉시대를 살고 있다. 과잉은 곧 강요다. 그래서 아이들은 끊임없이 꿈을 강요당하고 있다. 직업체험이라며 뻔한 직업군을 견학하고, 적성검사라는 이름 아래 꿈은 획일화된다. 

그러다보니 꿈을 찾아가는 과정은 생략된다. 청소년기 배움의 과정은 꿈을 좇는 과정이다. 다양한 책을 읽고 경험하며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자신에게 맞는 혹은 삶을 관통하는 꿈을 정하고 가꿔나가야 한다. 그 꿈이 의사, 변호사, 국회의원 같은 명사로 끝나는 직업군일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나 채식주의자, 인권운동가, 소확행하는 평범한 시민 같은 삶의 철학이나 목표가 꿈일 수도 있고, 알지 못하는 다른 직업군일 수도 있다. 특히 아이들은 4차 산업시대를 맞아 대다수 직업군이 사라지는 혼란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획일화된 꿈을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미래를 빼앗는 일이다.

대혜 스님 말씀에 파초무이문뢰개(芭蕉無耳聞雷開) 규화무안수일전(葵花無眼隨日轉)이 있다. 

“파초는 귀가 없으나 우레소리에 꽃을 피우고 해바라기는 눈이 없으나 해를 따라 움직인다”라는 뜻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꿈을 꾸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해바라기가 때가 되면 스스로 해를 향해 얼굴을 돌리듯이 말이다.

김형규 법보신문 대표 kimh@beopbo.com

 

[1489 / 2019년 5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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