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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걸사(乞士)와 탁발(托鉢)

기자명 현진 스님

걸사, ‘구걸하는 선비’라는 의미로 비구의 한문 옮김

탁발은 먹을 것 구함으로써
수행자가 하심하도록 이끌고
보시하는 재가불자들에게는
불교에 귀의하게 이끄는 기능

불교의 비구를 비롯한 인도 수행자의 명칭을 몇 가지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바라문(婆羅門, Brāhmaṇa)은 인도의 최대종교인 힌두교의 전신인 바라문교의 성직자이자 인도 사성계급의 최고위직으로, 요즘은 원음에 따라 ‘브라만’으로 발음한다. 인도인들은 고대로부터 그들이 절대상태로 여기는 브라흐만(Brahman)과 하나 됨[合一]을 흡사 불교의 해탈처럼 여기는데, ‘브라만’이란 명칭에는 ‘브라흐만이 되고자 하는 자’란 의미가 담겨있다.

사문(沙門, Śramaṇa)은 전래의 브라만교에 대항하여 새롭게 일어난 신흥종교들의 출가수행자를 ‘사문’이라 일컫는데, 부처님도 사문으로 출가하신 셈이다. 전통적인 사회적 의무를 마치고 숲으로 들어가 수행함으로써 모든 이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브라만과는 달리 사문은 그 틀을 깨고 사회적 의무나 계급에 상관없이 출가함으로써 수행을 위해 숲에 머물더라도 존경의 상징이자 삶의 기반인 공양(供養)이 제공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에겐 탁발을 통해 먹거리를 해결해야 하는 등의 몇몇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렇게 어려움도 마다않고 수행하려는 그들을 ‘어려움을 무릅쓰고 노력하는[śram] 이’란 의미에서 싀라마나(śramaṇa) 즉 사문이라 불렀다.

비구(比丘, Bhikṣu)는 구걸하다(bhikṣ)란 말에서 온 ‘구걸하는 이(bhikṣu)’의 음역이다. 출가수행자인 사문으로서 겪는 어려움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먹거리의 해결방법을 밝힌 말에서 생긴 명칭이 바로 ‘비구’인데, 불교수행자에 대한 고유명칭이다.

구루(Guru)는 ‘무거운’이란 의미이다. 이 말은 우리의 ‘스승’에 해당하는 명칭으로 초기 베다(Veda)시대부터 등장한다. 특정 수행자 집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도의 모든 종교나 사상에서 지혜로운 선각자 또는 인도자의 의미로 지금까지 널리 사용된다.

불교에서 출가수행자를 가리키는 ‘비구’란 명칭은 ‘사문’과 유사한 성립배경을 지닌다. 비구집단은 공동생활을 하므로 무리를 지어서 지내는 이들이란 의미로 상가(saṁgha)라 일컬어지는데, ‘상가’를 뜻옮김한 말이 이젠 비속어가 된 중(衆)이며, 소리옮김한 말이 승가(僧伽)이며 줄여서 승(僧)이다. 흔히 쓰이는 존칭의 의미인 ‘스님’은 승단 전체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한 분 한 분의 수행자를 가리키므로 ‘승(僧)+님’에서 변한 말로 보기보단 ‘스승님’의 줄임말로 보는 것이 타당한데, 승(僧)은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서의 승가 전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비구를 한문으로 옮긴 말이 걸사(乞士)이다. 비구의 뜻이 구걸한다는 의미의 걸(乞)이란 한 글자로 충분하지만 사(士)란 보조어로 의미를 보충하고 있다. ‘구걸하는 선비’ 정도로 풀어쓸 수 있는 ‘걸사’란 말은 자칫 걸인(乞人)으로 비천하게 치부될 수 있는 ‘비구’란 명칭이 ‘구걸로 연명하지만 수행하는 선비의 모습을 잃지 않은 이’ 정도로 여법하게 느껴지도록 만들고 있다.

부처님께선 무슨 까닭에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는 명칭을 굳이 ‘구걸하는 이’란 말로 정하셨을까? 승가에서 구걸(求乞)이란 표현은 탁발(托鉢)이란 말로 대체되어 나타난다. 탁발은 수행자가 먹거리를 구하는 행위를 통해 아집과 아만을 내려놓을 수 있는 하심(下心)에 그 의의가 있으며, 아울러 보시하는 불자로 하여금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열도록 하는 개심(開心)의 기능도 겸한다. 그래서 비구는 수행자로서의 첫발을 탁발을 통해 이루고 불자는 신행자로서의 첫발을 보시를 통해 이룬다고 일컫는 것이다.

조계종은 개혁종단이 들어서며 사회에 불편을 끼친다는 이유로 탁발이 종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어쩌면 재가의 작은 불편을 덜어주고자 승가의 너무 큰 수행의 첫 단추를 스스로 풀어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489 / 2019년 5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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