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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은하철도 999를 다시 보다 ① - 진광 스님

기자명 진광 스님

“메텔은 백의관음, 철이는 선재동자 상징이었다”

철이와 메텔을 주인공으로 한
은하철도 999, 화엄경 모티브
창작했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
메텔은 라틴어로 어머니란 뜻

우리 현실에 고통 깃들어 있듯  
행성마다 중생 고통 항상 존재
철이, 타인의 아픔 나누고 공감 
그의 순수한 동심은 늘 긍정적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마다 TV로 방영되는 ‘은하철도 999’라는 만화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어릴 적 공상의 나래를 펴며 우주여행을 하는 상상과 함께 신비의 여인 메텔의 존재는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나중에야 이것이 바로 화엄경 ‘입법계품’을 모티브로 한 창작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놀랍고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철이와 메텔의 우주여행’으로 요약되는 이 만화영화는 죽음과 기계문명, 노동과 환경, 인간복제와 자기 정체성 등 온갖 철학적 주제들을 다루기에 어른들이 되어서 봐야 비로소 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는 마츠모토 레이지 원작을 일본 후지 TV가 1978년 첫 방송하였고 이어 우리나라에서 1981년 수입해 방영함으로써 공전의 히트를 친 작품이다.  

기계인간이 되어 영생을 얻겠다는 ‘호시노 테츠로’(철이)와 신비로운 여인 메텔이 기계 육체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안드로메다의 어느 별로 가기 위해 우주공간을 달리는 열차에 탑승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중간중간 수많은 별에 들러 혹은 상황에 맞닥뜨리며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우리의 일상과 빼닮았다. 철이와 메텔이 달리는 우주가 곧 세상인 것이다. 

이러한 줄거리들은 ‘은하철도 999’가 바로 화엄경의 ‘입법계품’을 모티브로 탄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날아라 슈퍼보드’가 현장 스님의 구법여행기인 ‘서유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듯이 말이다. ‘메텔’은 라틴어로 ‘어머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여행 중 많은 생명이 죽음을 당하는데 애도의 의미를 담아 처음부터 상복을 입은 것으로 설정했다”는 저자의 설명처럼, ‘철이’는 선재동자를, 메텔은 백의(白衣) 관세음보살을 상징한다고 할 것이다.

“터널을 지날 때 우주를 본 듯했다.” 

마츠모토 레이지가 이 만화를 쓸 때를 회상한 대목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8세에 도쿄로 올라오는 편도행 기차에 올랐다. 그 열차가 바로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큐슈와 혼슈를 연결하는 간몬터널에서 그는 “우주를 나는 열차를 상상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꿈의 공간이었던 우주를 자신의 위대한 작품으로 실현한 것이다.

‘은하철도 999’라는 제목 또한 자못 철학적이다. 저자는 인터뷰에서 “1000은 소년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999’는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이야기를 상징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니 아무리 오래 살더라도 인생은 불완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철이는 여러 행성을 지나며 여러 상황과 맞닥뜨리며 끊임없이 묻고 주저하고 절름거리면서 결국엔 나름의 해법을 찾아간다. 모든 별에는 저마다의 고민과 슬픔과 희망이 있고 그 별을 기어이 통과해내야만 비로서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 나만의 별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렇듯이 작은 한마디 말이 나를 계속해서 살아가게 만들 수도 있고 죽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던 그 실수가 지금에는 더없이 소중한 보석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생인 것이다. 애플 CEO였던 스티브 잡스의 “여정(旅程), 그 자체로 보상이다”라는 말처럼, 모든 평범한 일상의 우연적인 인연의 합(合)이 바로 필연이자 진리가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삶의 매 순간은 우리가 죽는 그 순간까지 수많은 화두를 던져준다.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 하고 번민을 거듭해 궁구한다면, 그만큼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뜻일 게다. 타인의 아픔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함께 아파하는 ‘철이’처럼 순수한 동심은 영원히 매력적이고 희망적이다. ‘메텔’의 관세음보살과 같은 자비와 친절, 그리고 여성성만이 마침내 우리를 영원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우리가 지향할 것은 완전의 ‘1000’이 아니라 불완전하지만 인간적인 ‘999’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은하철도 999’를 ‘청춘에 대한 송가(頌歌)’라고 한마디로 정의했다. 메텔은 청춘을 상징하는 인물이고 철이가 보는 환상이기 때문이다. 그는 혹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계 몸으로 바꿀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영생을 산다면 대충대충 살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한정된 시간을 사는 것이다. 시간은 꿈을 배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치 있는 삶을 위해 꿈도 시간을 배신하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답한다.

무엇보다 ‘은하철도 999’는 화엄경 ‘입법계품’의 현대적 버전이다. 앞서 말했듯이 철이는 선재동자이고 메텔은 바로 관세음보살의 현신과도 같다 할 것이다. 특히 전편을 관통하는 주제는 ‘마음은 하나의 우주’라는 화엄의 인간관과 우주관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할 것이다.

알다시피 선재동자는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힘차고 당당하게 남쪽으로 순례하면서 53분의 선지식들에게 법을 청했다. 그는 우리 마음속에 고동치고 있는 진리를 향한 힘찬 발걸음이므로 오히려 각자 나 자신일 수도 있는 것이다. 선재동자의 구도 여정은 깨달음의 차원이 인고의 척박한 땅덩어리에서 실제로 피와 땀이 뒤엉킨 중생의 살 냄새에 부대끼면서 열린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진리의 길로 이끄는 사람이라면 모두 착한 벗(善友)이다. 그 사람이 잘났건 못났건, 노인이든 어린 아이든 그 누구라도 진리를 깨우쳐 준다면 그는 선지식(善知識)이다. 53선지식은 그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선지식이 53분뿐이겠는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자연과 사람들이 모두 우리의 선우이자 선지식이며 불보살과 같은 것이다.

그러할진대 우리도 어린왕자나 선재동자가 되어 진리의 길을 떠나보자. 인생 전체가 바로 ‘입법계품’ 선재동자의 구도여정이며 궁극에는 깨달음의 꽃인 ‘화엄(華嚴)’의 세상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부디 길과 원수 맺지 말고 이 길 위에서 잘 살아가기를 빌어마지 않는 바이다.

진광 스님 조계종 교육부장 vivachejk@hanmail.net

 

[1489 / 2019년 5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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