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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인연

기자명 임연숙

정서적 공감대로 삶의 진정성 전달

미술은 시대정신 담은 시각예술
인물화에도 경험·동시대성 담겨
무표정함에서 현대인 초상 발견

고찬규 作 ‘인연’, 117×91cm, 한지에 채색, 2010년.
고찬규 作 ‘인연’, 117×91cm, 한지에 채색, 2010년.

최근 다양한 작가들이 작가 개인의 경험과 동시대성을 담아내 시대적 공감과 다양한 인물화의 폭을 넓히고 있다. 미술이 시대의 정신을 담아내는 시각예술이라는 측면으로 볼 때 현대 작가들의 인물화 속에는 다양한 현대의 인물이 등장한다. 최근 젊은 여성을 그린 새로운 측면의 ‘미인도’가 등장하는 것 또한 그러한 경향의 일환이다. 젊고 발랄한 현대여성의 미인도는 대중의 인기를 함께 누리고 있기도 하다. 

작가 ‘고찬규’의 작품은 다른 의미의 시대성을 보여준다. 한국화의 전통 채색화 기법과 과슈와 아크릴을 사용하기도 하여 인물화의 현대성을 추구하면서 인물의 대상은 생활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계층과 연령, 성별을 표현한다. 여성에 대한 표현도 ‘미인’이라는 측면이 아닌, 어머니, 부인, 딸, 누이와도 같이 우리 삶과 함께하는 인물들이다. 깡마른 몸에 툭 불거진 광대를 가진 얼굴은 고찬규 작가 인물들의 특색이다. 특유의 무표정은 배경과 함께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인의 정서 또는 미감’이란 한국인만의 경험과 체질 그리고 한국인으로서의 자의식이 만들어 낸 정서적인 공감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에 대한 진솔한 표정을 가진 한국적인 얼굴을 통해, 삶의 진정성이 담겨져 있는 우리 스스로의 초상을 발견하고자 함이다.” (작가 노트 중에서)

정면을 향한 젊은 여성은 마른 몸과 광대뼈가 도드라진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화려한 의상이나 치장도 없고, 욕망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모습이다. 보통 젊은 여성의 그림을 ‘미인’이라는 측면에서 이상적인 형태로 접근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작가는 여성의 미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나 획일화된 모습이 아닌 개별의 인간으로 접근하는 듯하다. 시각적인 형상이 아닌 현실의 삶을 담담하게 살아가고 있는 일상에서 만나는 인격체로서 말이다. 텅 빈 붉은 여백과 티셔츠에 부끄럽게 그려진 하트가 그저 이 여성이 그리 무미건조한 사람은 아니라는 듯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외롭고 고독한 현대인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지만 그 속에는 선하고 착하고 순수함이 담겨있다. 고찬규 작가는 꽤 오랜 세월 이런 형식의 인물을 그려왔다.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생활 속의 인물들을 통해 일관되게 삶의 노정과 끊임없는 자기 물음을 하고 있다. 일상을 대하고 자신이 선택한 삶을 받아들이는 모습인 것이다. 

한지 위에 먹으로 밑 작업을 한 위에 채색을 여러 번 덧바르는 기법으로 그려진 인물화는 전체적으로 색감이 두텁고 곱다. 한복으로 치면 모시나 깨끼와 같은 질감이 아닌 색을 입힌 광목이나 광택이 없는 양단이나 공단 같다고 할까. 반면에 손가락의 표현이나 인물의 필선은 섬세하고 탄력이 느껴진다. 이러한 조합이 과장된 얼굴표현이나 위에서 내려다본 듯한 하체의 표현에도 전체적으로 인물을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한다. 

작가는 평소 과장된 표정과 극적인 포즈를 통해 자신만의 특색 있는 인물을 표현했다면 이 작품은 정면을 바라보는 정적인 포즈이다. 차분하고 관조적인 느낌을 통해 한국적 미감에 대한 작가의 고민 또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간의 흐름과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예술교육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89 / 2019년 5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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