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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봉축 탑등 최선인가

  • 데스크칼럼
  • 입력 2019.05.27 11:18
  • 수정 2019.05.27 13:35
  • 호수 1490
  • 댓글 1

매년 더 장엄·정교해지지만
탑은 탄생보다 열반과 직결
새 봉축 장엄물 조성 필요

지난 4~5월 전국 곳곳에는 형형색색의 연등이 나부꼈다. 서울시 전역에도 5만여 가로연등이 내걸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가장 존귀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땅에 오셨음을 찬탄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는 빛의 장엄은 불자들에겐 볼거리를 넘어 환희로움이다.

우리나라 연등의 역사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됐다. ‘삼국사기’에는 866년 경문왕이 ‘정월대보름, 황룡사에 거둥해 연등을 구경하고 백관들에게 잔치를 열어주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 전통은 고려로 이어져 보름 연등회와 사월초파일 연등회, 팔관회로 성대하게 펼쳐졌다. 고려말 신돈 스님이 주도했다는 사월초파일 행사에는 연등이 무려 100만개를 헤아리고 그 모양도 이채롭고 정교했다고 한다.

유교를 표방한 조선시대에도 연등은 만들어졌다. 태종 12년 정월대보름에 ‘용과 봉황, 호랑이와 표범 모양으로 섞어 만든 등 500개가 걸렸다’고 한다. 또 조선후기 때 인물인 홍대용의 담헌서에는 1775년 사월초파일 궁궐 풍경을 묘사하는데 ‘양각등, 옥등, 비단등, 유리등, 진주등, 난간등’이 나타나고 물 위에 등을 띄웠다고 쓰여 있다.

해방 이후 지금의 연등회와 유사한 제등행렬이 시작한 것은 1955년이다. 당시 신문보도에 따르면 부처님오신날 조계사 법당에는 여섯 상아 코끼리등, 반야용선등, 거북등, 어용팔각등, 봉황등, 칠성등을 비롯해 1만 등이 밝혀졌다고 한다.

서울역에 있던 봉축 장엄물은 1970년대 초 서울시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무렵 장엄물은 ‘부처님오신날’이라는 큰 글씨가 쓰인 선전탑 형태였다. 그러다 1990년부터는 아기부처님과 연꽃 등 새로운 장엄물을 설치했으며, 2008년부터는 한지를 이용한 전통등을 선보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1300여년 역사를 지닌 봉축행사의 서막을 알리는 것은 서울 광화문광장 점등식이다. 각 종단 대표자와 불자, 시민들이 참여해 정성껏 만든 장엄물에 점등하면서 모두들 지혜의 빛이 중생들의 억겁무명을 환히 밝히기를 서원한다. 올해 광화문을 밝힌 조형물은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탑이었다. 높이가 20m의 미륵사지탑은 40호 크기 한지 500여장을 사용해 느낌은 화려하되 은은한 멋을 살렸다. 1996년 상설된 전통등연구회의 정성과 오랜 노하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광화문 장엄물이 해마다 정교해지지만 일부에서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나치게 탑으로 정형화된 것 아니냐는 얘기들이다. 실제 2011년부터 올해까지 시청과 광화문을 장엄한 것은 모두 탑이었다. 2000년대 중반 종종 등장했던 연꽃과 탄생불 형태의 장엄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탑이 장엄물로 정착된 것은 장중한 느낌을 주면서도 국보를 모델로 만들었기에 대중들에게 친숙하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우리 한지를 사용해 장엄물을 제작하기에 용이하고, 오래 전부터 부처님오신날 탑돌이를 했다는 기록들도 탑 장엄물 흐름에 영향을 줬으리라 여겨진다.

그렇더라도 탑 모양은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다. ‘분묘(墳墓)’의 의미를 갖는 탑(stūpa)은 탄생보다 열반과 깊은 관련이 있다. 더욱이 광화문 장엄등은 일반 사찰의 신행공간과 달리 부처님오신날을 알리는 홍보전시 기능이 크다. 그렇기에 탄생의 기쁨과 환희로움을 직접 드러낼 수 있는 장엄물 조성이 어렵더라도 최선일 수밖에 없다.

이재형 국장

또한 매년 새롭게 정하는 봉축표어와 장엄물이 유기적인 관계를 갖도록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봉축표어가 세상을 향한 불교의 이념적인 메시지라면 장엄물은 형상을 통한 메시지로 결코 둘이 될 수 없다. 종단과 불교단체들도 봉축표어와 장엄물 메시지에 걸맞은 활동을 펼침으로써 대내외적인 역량을 높여가야 한다. 불교계의 연등행사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세계인이 찾는 축제의 장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묵묵히 일해 왔던 이들의 신심과 열정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제 머리를 맞대고 한 걸음 더 내디딜 방안을 찾을 때다.

mitra@beopbo.com

 

[1490호 / 2019년 5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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