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 . 공부(工夫)와 도구(道具)

기자명 현진 스님

공부, 사유하거나 도를 판별하는 일에서 유래

중국 선종에서 사용된 용어로
용맹정진으로 수고하다는 의미
도구, 불도 수행하는데 필요한
기구를 모두 합쳐 이르는 말

누구나 어릴 적 지겹게 들었을 이 말, 공부! 정작 자기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책상머리에서 몇 시간을 끙끙거리며 그날의 숙제를 말끔하게 끝내고는 ‘엄마! 나 공부 다 했어요!’라며 칭찬이라도 받을까 싶으면 ‘공부를 그리 찔끔 해놓고는 다했다고 그러냐! 공부는 평생 하는 거야’라는 말에 속이 상하곤 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 숙제 다 했어요!’로 레퍼토리를 바꾸었더니 ‘그럼 이제부터 공부해라!’ 하셨으니, 어린 마음에 공부가 뭔가라는 화두가 다 생길 것 같았던 기억이 있다. 화두란 게 있는지도 몰랐던 때이지만.

생활 속에 들어와 있는 불교용어는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이 ‘공부’라는 말만큼 무슨 의미인지는 물론 심지어 사용하고 있는지도 느끼지 못한 채 그 채찍에 매섭게 당하고 있는 것은 드물 것이다. 공부(工夫)라는 단어의 산스끄리뜨어는 발견되지 않는데, 이는 불교용어지만 인도에서 건너온 것이 아닌 중국 선가(禪家)의 용어이기 때문이다. 공부는 한문으론 ‘功夫’로도 쓰며, 선가에서 수행할 때 사유하거나 도를 판별하는 일을 일컬을 때 사용되는 말이다. 크게는 수행의 정도나 경지 또는 ‘용맹정진 등으로 수고하다’란 의미로 나뉜다.

대혜 스님의 ‘서장(書狀)’에, “이 마음은 비록 한 생각도 물러선 적이 없으나 결국엔 공부가 한결같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니(自覺工夫終未純一) 의지와 원력은 크되 역량은 작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이는 공부가 수행의 정도나 경지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 예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조주록(趙州錄)’에, “어떤 것이 대인의 모습입니까?”라고 묻자 스님께서 “노승은 붙좇는 수고를 하지 않는 한가한 사람일세(老僧無工夫趨得者閑漢)”라고 답하셨다 하였다. 이는 공부가 무엇을 하고자 괜히 애쓰는 것, 즉 수고하다란 의미로 쓰인 예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쓰는 연장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도구’라 한다. 그래서 2차적인 의미로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을 일컫기도 하는데, 정작 그 본래의 의미는 불교용어로서 불도[道]를 수행하여 이루는데 필요한 기구[具]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출가비구는 여섯 가지 물건만이 그 소유가 허용되는데, 세 가지 옷인 삼의(三衣)와 공양구인 바리때, 물속에 섞였을 생명체를 걸러내고 물을 마시는 데 쓰이는 거름망인 녹수낭, 간단한 좌구로 쓰이는 니사단 등 여섯 가지로서 비구육물(比丘六物)이라 일컫는다. ‘백장청규’에는 주장자와 불자 및 염주 등을 더한 13종의 도구를 규정해놓는 등 불가의 용어로만 사용되었는데, 나중에 일상생활의 연장이나 연극무대를 설치할 때 쓰이는 용구 등으로 확대되어 사용되었으니 와전(訛傳)인 셈이다.

승가는 부유할지라도 스님은 가난하단 말이 있는데, 스님이 가난하다기보다 스님은 수행을 위해 무소유의 청정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래서 비구육물의 현대적인 표현으로 수행자는 두 손으로 들 수 있는 만큼의 물건만 소유가 허용된다는 말이 있었다. 애초엔 그 말이 선승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요, 얼마간의 책무더기가 필요한 학승은 책이 예외란 우스갯소리도 곁들여 있었다. 지금은 아무리 많은 책이라도 컴퓨터에 모두 집어넣을 수 있으니 또 다시 시류에 따라 변화를 갖는 셈인데, 어찌 ‘도구’가 물질로서의 도구만을 문제 삼아 비구육물이니 양 손이니라고 한 것이겠는가.

티베트인들은 얼마만큼의 돈을 모았나보다 얼마만큼 마니차를 많이 돌리고 꼬라를 많이 돌았나를 참된 재산으로 여긴다고 하니, 그것을 이승으로 가져갈 수 있는 참된 공부로 본 것이다. 그런 면에선 우리가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라는 말로 서로를 세뇌시켜가며 생활 속의 불교용어를 통해 하는 줄도 모르고 해나가고 있는 공부들은 오히려 더욱 참된 재산이 아닌지 모르겠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490호 / 2019년 5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