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전 누리고 있는 지금, 화근 깃들고 있음 알아야”
“복전 누리고 있는 지금, 화근 깃들고 있음 알아야”
  • 허만항 번역가
  • 승인 2019.05.28 10:46
  • 호수 14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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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공 스님의 '무량수경청화' 법문 ㊽] 육도 중생의 병통

재물과 색욕에만 탐착하여 
보시를 베풀려고 하지 않고 
서로 양보 않고 계속 싸우면 
서로 죽이는 재앙에 직면해

복덕을 오랫동안 누리려면 
부지런히 복덕을 닦아야해 
누리는 것 절제하지 못하면 
복덕은 이내 사라지기 마련
정공 스님은 서로 양보하지 않고 싸운다면 서로 죽이는 재앙만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정공 스님은 서로 양보하지 않고 싸운다면 서로 죽이는 재앙만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원수들은 함께 모여 서로 해치고 죽이려고 하나니 이러한 원한은 미세한 업인에서 시작되어 크나큰 곤란과 극렬한 보복으로 바뀌느니라(共其怨家 更相殺傷 從小微起 成大困劇).” 

이 경문은 부처님께서 인(因)의 차원에서 우리를 깨우치고 거듭 인도하고자 노파심에 하신 말씀입니다. 서로 보복하며 원한을 갚으려는 마음은 이따금 매우 작은 업인, 하찮은 인연에서 시작되어 처참한 결말로 변하고 맙니다. 격심한 고통은 전생의 원업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불법을 배우는 사람은 시시비비를 따지지 말고 어느 곳에서든 참고 양보할 줄 알아야 하며 언제든지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특별히 경쟁이 치열한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작은 손해를 보고 작은 속임수에 넘어갈지라도 이를 액땜으로 여긴다면 더 큰 곤란을 면할 수 있으니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모두 재물과 색욕에 탐착하여 보시를 베풀려고 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쾌락만 탐하여 더 이상 도리를 모르고 어리석음과 욕망에 떠밀려 자신만 중히 여기고 싸워서 이익을 취하려고 하기 때문이니라(皆由貪著財色 不肯施惠 各欲自快 無復曲直 癡欲所迫 厚己爭利).”

이는 육도 중생의 병통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의견이 충돌하는 것은 모두 재물과 색욕을 탐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서로 양보하지 않고 싸우다가 끝내 서로 죽이는 큰 재앙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선뜻 보시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도우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과거 생에 세세생생 학불하고 염불하며 무량무변한 제불여래께 공양한 적이 있다면 왜 왕생하지 못하였겠습니까? 무량겁의 수행에도 성취하지 못한 것은 재물과 색욕을 탐하여 스스로를 망쳤기 때문입니다. 금생에도 이를 내려놓을 수 없다면 여전히 생사윤회하여야 합니다.

재산이 있는 사람은 보시할 줄 알아야 복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습니다. 만약 재산이 있는데 주는 법을 모르고 자신만 누릴 줄 알면 “한 집이 부유하면 천집이 원망한다”는 말처럼 다른 사람으로부터 시기질투와 분노원망을 들을 것입니다. 당신 집에 불이 나도 “잘 탔네. 부자가 되려고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더니만!” 등의 악담을 듣고 집에 강도가 침입하고 좀도둑이 들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잘 빼앗겼네!”라고 할 겁니다. 이렇듯 세상 사람의 인심은 냉담함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이웃을 항상 돌보면 그들은 당신에게 감사하며 돈을 많이 벌라고 덕담을 할 것입니다. 당신이 돈을 벌면 모두 덕을 보기 때문에 당신이 돈을 많이 벌수록 모두 즐거워할 것입니다. 당신의 집에 무슨 일이 있으면 모두 와서 도와주려 할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지혜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복이 있을 때 다시 복을 닦을 줄 알아야 하고 결코 자신이 그 복을 모두 누려서는 안 됩니다. 

자신만 누리고 자신만 즐기려고 한다면 그는 이 같은 복 속에 화근이 숨어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인께서는 “복에는 화가 숨겨져 있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복을 누릴 때 화근은 이미 그 밑에 잠복해 있으니 이는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도리를 몰라 제멋대로 횡포를 부립니다. 어리석음과 욕망에 이끌려 온갖 죄업을 짓습니다. 그들은 모두 작은 이익을 추구하다가 실재로는 큰 손해를 봅니다. 이 이익을 어떻게 다툴 수 있겠습니까? 다툴 수 없습니다. 자신의 운명에 이익이 있어야 다툴 수 있습니다. 이치에 밝은 사람은 다투지 않습니다. 운명에 있으면 구하지 않아도 반드시 얻고, 없으면 아무리 다투어도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리에 밝은 사람은 이익을 얻으려고 다투지 않습니다.

“부귀영화를 얻어 당장의 쾌락만 즐길 뿐, 절제할 줄 모르고 선을 닦는데 힘쓰지 않아 그 위세는 얼마 가지 않아 악업을 따라서 닳아져 없어지느니라(富貴榮華 當時快意 不能忍辱 不務修善 威勢無幾 隨以磨滅).”

인간이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고 그 시간은 매우 짧습니다. 고인께서는 그것은 우담발화처럼 문득 한번 나타나고 전광석화처럼 스쳐간다 하셨습니다. 자신이 누리는 것을 절제할 수 있으면 그 부귀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고, 나아가 다른 사람도 도울 수 있습니다. 가장 총명한 사람,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재산을 자신에게 얼마나 사용하려고 할까요? 자신의 생활에 필요한 것만 취하고, 남은 것은 가능한 한 보시하여 사람을 돕는 것이 큰 지혜요, 큰 총명입니다. 

인광대사께서 가장 찬탄하신 분은 송나라 범중엄(範仲淹) 선생입니다. 소주(蘇州) 범씨 집안은 범 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지금까지 거의 1천년동안 집안의 도가 쇠퇴하지 않으면서 대를 이어 현인을 배출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을 닦고 덕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따뜻하게 입을 수 있으면 충분하며, 남은 것은 모두 사회를 위해 쓰고 고난 받는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했습니다. 

범 선생은 공부를 할 때 집안형편이 매우 가난하여 절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는 매우 궁핍한 생활을 보내면서도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이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그는 매 순간 고난 받는 사람을 생각하고 자신을 생각하지 않았으며 또한 한평생 이런 생각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는 받은 봉록으로 의숙(義塾)을 열어 빈곤한 학생들을 가르쳤고 또한 의전(義田)을 만들어 300여 호의 가정을 먹여 살렸으며 구호사업을 일으켜 가난한 사람을 제도하였습니다.

자신의 타고난 복을 오랫동안 누리려면 계속해서 복덕을 닦아야 합니다. 누리는 것을 절제하지 못하고 한 번에 다 써버리면 복은 이내 사라져 버립니다. 사람은 복을 누리는 환경에서는 쉽게 자신의 성품을 잃어버리고, 절제하지 못하고 선을 닦지 않으며 오히려 죄업을 짓습니다. 

진실로 선을 닦고, 진실로 덕을 쌓으려면 힘들고 고통스런 생활을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불법에서는 ‘중생의 고통을 대신하는 삶’을 말합니다. 자신은 부유하게 지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고통의 나날을 보내면서 다른 고통 받는 사람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것이 보살의 마음이고, 진실한 대자대비심입니다. 그래서 눈 밝은 사람들은 부귀영화의 시간은 너무나 짧다고 보고 근검절약하며 다른 사람을 돕습니다. 그러나 미혹전도 된 사람은 이를 알지 못하여 인내하지 못하고 향락을 탐하며 선을 닦으려 노력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매우 위풍이 있고 세력이 매우 큽니다. 그러나 그의 위풍과 세력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지금 현재 큰 복이 있을 뿐, 계속해서 선을 닦지 않으면 언젠가는 사라질 것입니다. 특히 복을 누릴 때 오악과 십악을 범한다면 그 복은 재빨리 사라져버립니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490호 / 2019년 5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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