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장일호의 ‘석가모니’(1964)
10. 장일호의 ‘석가모니’(1964)
  • 문학산 교수
  • 승인 2019.06.04 11:08
  • 호수 14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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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님 일대기 영화로 집대성한 역작

1960년대 종교영화 제작 과정의
여러 난관 극복하고 흥행에 성공 
탄생부터 출가·성도·설법까지
방대한 일대기 효과적으로 축약
팔상도 기준으로 핵심장면 표현

컴퓨터 그래픽 기술 없이 제작
한장면 위해 3000명까지 동원
제작비·낙후한 기술 고충에도
관객 눈높이까지 고려한 명작
장일호 감독의 ‘석가모니’는 1960년대 종교영화 제작의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한 역작이다. 사진은 영화 ‘석가모니’ 스틸컷.

1960년대 종교영화 제작은 도박에 가까웠다. 종교영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대중성이 떨어진다. 하나는 관객층이 협소하다. 특정 종교의 신도들은 지지하겠지만 비 신도는 외면하여 관객층이 제한된다. 다른 하나는 해탈이나 영생과 같은 주제의 무거움과 사상의 난해함이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제작 과정의 어려움도 따른다. 종교영화는 대체적으로 2000년 전의 배경으로 제작해야하므로 역사적 고증을 통한 오픈 세트장이 필요하며 수많은 엑스트라와 의상도 마련해야한다.

장일호 감독의 ‘석가모니’는 수많은 장애물을 통과하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짧은 시간에 담아냈다. 서사 방식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여덟 장의 그림으로 표현한 팔상도(八相圖)와 유사하게 설정하였다. 팔상도는 도솔내의(兜率來儀)에서 탄생의 장면인 비람강생을 거쳐 사문유관(四門遊觀)과 성을 떠나는 유성출가(逾城出家), 도를 터득하기 위해 수행하는 설산수도(雪山修道)로 나아간다. 이어서 수하항마(樹下降魔)를 이루고 나서 설법을 전하는 녹원전법(鹿苑 轉法)을 거쳐 열반에 드는 쌍림열반까지이다. 영화 ‘석가모니’의마지막 단계는 중생들에게 법을 전하는 장면에서 마무리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프레임에 담아내는 것은 강물을 양동이 하나에 모두 채우는 일만큼 어려운 작업에 속한다. 우선적인 어려움은 관객의 눈높이에 맞게 작품의 완성도를 유지하는 일이다.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기독교인의 수난이나 영웅의 전투장면을 스펙터클로 담아낸 할리우드의 영화에 익숙한 한국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해야한다. 장일호 감독은 대작 영화로 정면 승부하여 로마시대 원형 경기장 같은 세트에서 싯다르타(신영균 분)와 그의 사촌인 타이바(박노식 분)의 결투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장일호 감독은 오래전 영상자료원에서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영화 제작의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원형경기장의 결투 장면은 엑스트라 3000명을 동원하였으며 넓은 장소를 물색하다가 결국 한양대 대운동장을 빌려서 군중씬 촬영에 착수했다. 그날 한 장면을 위해 동원된 수 천명의 엑스트라들이 사극의상을 착용하는데 걸리는 시간만 오전 다섯시에서 오후 2시까지 9시간이 소요됐다니 그 규모가 짐작된다. 지금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군중씬과 난해한 배경을 해결하지만 기술적으로 낙후한 1960년대는 엑스트라를 동원하여 정직하게 촬영해 제작비 상승과 제작과정의 어려움은 하안거 수행하는 스님의 고행만큼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군중 장면에 견줄만큼 힘든 장면은 지옥의 나락에 빠진 사촌을 구제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특수효과를 통해 빛의 기둥으로 인물을 끌어올렸다.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광학적으로 처리하는 어려운 특수효과를 통해 한 장면 한 장면을 완성한 흔적들이 역력하며 종교영화라는 새장을 열기위한 감독의 고뇌가 묻어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석가모니’는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 싯타르타의 일대기에 충실한 1960년대 대작 한국영화로 완성되었다.  

석가모니(釋迦牟尼 Sakya-muni)의 석가는 종족의 명칭이며 모니는 진리의 깨달음을 얻은 성자라는 뜻이다. 석가모니는 석가족 출신의 진리를 깨달은 성자라는 의미이며 부처님을 지칭한다. 장일호의 ‘석가모니’는 고타마 싯다르타의 일대기를 담아낸 역작이며 1964년의 어려운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특수효과와 세트를 통해 완성하였다. 그해 한국 관객 38만명을 동원하며 좋은 흥행성적을 얻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출생과 열반 연도에 대한 논의가 불분명하지만 무비 스님의 ‘직지강설’에 의하면 기원전 624년에서 기원전 544년까지 생존하였던 것으로 세계 불교도대회에서 공식채택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출생에서부터 출가 후 깨달음을 전하기 시작하는 지점까지 사건을 축약하여 연대기적으로 펼쳐간다. 불교의 팔상도는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기간으로 구분하여 탄생에서 출가를 거쳐서 고행을 통해 성도에 이르고 설법을 하신 다음  열반에 드시는 순서로 이루어졌다. 이미 밝힌 바대로 장일호의 ‘석가모니’는 탄생과 출가 그리고 성도에서 설법까지를 담아낸다. 싯다르타는 아들 라후라가 태어날 때 기쁨보다는 인간의 탄생에 대한  고통을 고뇌한다. 부인인 야수다라(김지미 분)에게 인생의 낳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을 찾아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출가하겠다는 결심을 전한다. 가족들이 숙면을 취하고 있는 침실을 바라보면서 성을 떠난다. 팔상도의 단선적 구도에서 벗어나 사촌 형제와 경쟁 관계를 설정하여 선악의 대결구도로 영화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실제 석가모니 부처님은 29세에 출가하여 6년 동안 고행과 수행을 거듭하면서 35세에 성도하게 된다. 도를 깨달은 다음 카필라성으로 돌아와 아들인 라후라와 종형제 아난을 제자로 삼았다. 이어 양모인 마하프라자파티와 아내인 야수다라를 제자로 받아들여 비구니 승단을 이룬다. 이 사실은 영화에서 적극 수용하여 비구니 승단의 형성까지 담아낸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부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정반왕의 임종을 맞이하여 카필라성으로 귀환해 부친을 제도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부친에게 ‘선업을 쌓았기에 극락에 가게 되었다’고 설법한다. 이 장면은 석사모니 일대기를 담았지만 그 당시 한국영화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960년대 한국영화는 ‘마부’와 같은 가부장의 희생과 아들의 성공 서사가 한 축을 이루었다. 가족의 해체나 경제적 고난은 가족구성원의 시험 합격이나 사업 성공으로 가족이 복원되고 가부장의 인정으로 해피엔딩된다. 성불하여 카필라성으로 귀환한 아들은 성공하여 금의환향한 가족 구성원의 이미지와 닮았다. ‘석가모니’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문법적으로 담은 영화면서 동시에 한국관객의 눈높이를 고려한 한국불교영화의 소임에도 충실한 영화이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491 / 2019년 6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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