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아잔타 석굴
10. 아잔타 석굴
  • 알랭 베르디에
  • 승인 2019.06.04 16:31
  • 호수 14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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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세월 지어진 불교 건축예술 최고 걸작품

기원전 2세기경 부터 건축 추정
초기불교 역사 세밀하게 묘사한 
벽화·조각품 등 최고 가치 간직
건축학 측면에서도 중요한 유산
아잔타 석굴 중 대표적 예배용 공간인 26번 석굴.

아잔타 석굴은 인도의 마하라슈트라주에 위치한 불교 건축 예술 최고 걸작품으로 뽑힌다. 불자가 아니거나 건축과 역사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한번은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유적지이다. 고지대에 위치한 아잔타 석굴은 76m 높이를 지닌 절벽을 말굽의 편자 모양으로 깎아 내면서 건축됐고 이 기발한 건축 양식 때문에 모든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30여 개의 환상적인 구조를 지닌 경전을 공부하는 방이자 염불을 위한 방, 그리고 계속 이어져 건축돼있는 크고 작은 사원 등은 이곳이 칭송받는 이유를 금방 이해하게 한다. 

이 아잔타 석굴은 사실 1819년이 돼서야 우연히 발견되었다. 석굴이 만들어지고 그 후 1000년 동안 주변에 서식하던 야생 동물과 그 인근에 살던 빌족(인도 중서부 산악지방에 사는 인종) 몇 명을 제외하고는 이곳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기원후 500년경 지어졌던 이 멋진 건축물이자 위대한 건축가들의 작품은 그렇게 세상 속에 존재하지 않고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영국 출신 존 스미스 장교가 호랑이 사냥 중 강 위로 동굴의 입구같이 보이는 곳을 발견하게 된다. 동굴 입구를 막고 있던 나뭇가지들을 헤치며 들어선 존 스미스는 놀랍게도 희미하게 그려진 벽화들로 가득한 방들을 발견하게 된다. 돔 모양의 구조 아래로는 가부좌를 튼 부처님이 그려진 벽화가 있었고 앞에는 스투파도 세워져 있었다. 곧 이 놀라운 건축물에 관한 소식이 여기저기 퍼져나갔다. 1844년 로버지 길 시장은 로얄 아시아협회로부터 동굴 내 벽화들을 복원하라는 임무를 지시받게 된다. 

복원 사업은 경전을 외우던 법당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 주변 사원들로 이어졌다. 복원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 석굴에 관한 정보를 줄 수 있는 실마리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먼저 그들이 발견한 사실은 이 석굴들이 매우 단단한 돌들을 깎아서 만들어 낸 것이며 이는 두 단계의 건축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자료들을 토대로 보면, 다섯 개의 법당들은 기원전 1세기 혹은 2세기에 건축됐으며 스님들의 거처로 쓰였던 나머지 25개의 사원은 기원후 5세기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복원 작업은 살인적인 더위, 거주하던 빌족들의 위협 등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이처럼 사연 많은 발굴 역사를 지닌 아잔타 석굴은 건축 역사의 걸작품으로 간주될 뿐만 아니라 고대 인도의 불교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벽화들이 잘 보전된 곳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석굴 내의 벽화들은 초기 불교 역사를 잘 묘사하고 있으며 그 당시 불자 사이에서 만연하던 신화들과 전설들을 표현하고 있다. 벽화들뿐만 아니라 조각품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석굴 내 조각상들은 불교 철학들과 신학으로서의 불교를 잘 설명해 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건축학적 측면에서도 인도는 물론 세계 그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기술로 지어져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잔타 석굴은 소중한 불교 건축 유적지일 뿐만 아니라 그 옛날 뛰어난 과학 기술을 지녔던 인도의 발달된 문명을 증명해주는 유산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원전부터 사람들은 왜 쉽게 돌을 세워서 건물을 짓는 대신 어렵게 석굴을 파내고 사원을 만들었던 것일까? 이 질문에 따른 대답은 아직도 미궁 속에 남아있고 수많은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은 서로 다른 주장과 가설을 내놓고 있다. 석굴은 자연 현상에 의해 저절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손에 의해 잘리고 다듬어져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만이 모든 이로 하여금 경이로움이라는 똑같은 감정을 느끼게 할 뿐이다.  

오랫동안 아잔타 석굴을 연구해 온 고고학자나 역사학자들은 아잔타 석굴 내에서 스님들이 거주했다는 내용을 짐작할 만한 자료들을 발견했고 또 이 석굴 내에서 스님들의 임명식이나 경전 공부와 같은 스님들의 일상이 행해졌다는 것도 알아냈다고 한다. 

아잔타 석굴 전경.

아잔타 석굴은 현재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면서 제1 석굴에서 제29 석굴까지 번호가 매겨져 계속 이어진다. 지금은 석굴과 석굴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계단식으로 길을 만들어 동굴을 연결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석굴과 석굴들이 연결돼 있지 않은 채 서로 다른 입구를 지니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잔타 석굴 내 보전돼 있는 예술품들은 하나같이 걸작품처럼 느껴질 정도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몇몇 벽화들은 남방불교의 철학을 바탕으로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부처님 모습 자체를 보여주길 피하고 부처님 발자국이나 왕좌 등만을 상징적으로 그려놓은 데서 이해될 수 있다. 한편 다른 석굴에 들어서면 대승불교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화려한 색상들로 장식된 벽들은 부처님의 생애와 다양한 보살들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방불교 예술과는 다른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아잔타의 석굴 중에도 가장 중요한 석굴은 26번 석굴이다. 26번 석굴은 대승불교 법당으로 쓰였던 곳인데 이 석굴이 중요한 이유는 기대어 누워있는 자세로 조각된 거대한 크기의 와불 때문이다. 이 불상은 부처님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을 묘사한 불상이라고 한다. 대승불교를 대표하던 17번 굴 또한 그 안을 장식하고 있는 잘 보존된 벽화들 때문에 반드시 방문해야 할 석굴로 꼽히고 있다. 이 17번 석굴의 천장에는 극락에서 내려온 음악가들의 모습과 선녀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벽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들이 여인의 모습으로 변신해 심할라 왕자와 만나는 순간을 잘 그려놓았다. 

16번 석굴은 대승불교를 신봉하던 스님들의 사원으로 순다리 공주에게 남편이 다가와 자신은 스님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이 그려져 있다. 10번 석굴은 남방불교 법당으로 쓰였던 곳으로 아잔타의 모든 석굴 중에 가장 오래된 석굴로 간주되고 있다. 아치 모양의 창문을 지닌 9번 석굴은 3m 높이의 거대한 스투파를 보기 위해서라도 방문해 볼 만 하다. 대승불교 스님들이 머문 사원이었던 2번 석굴 정면에는 나가 왕국 왕들의 모습이 묘사돼있고 천장에는 거대한 만다라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곳곳에 새들과 악귀들의 모습 또한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제1번 석굴은 아잔타 석굴에서 방문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석굴이다. 이는 석굴 내 사방에 장식된 벽화들이 복구 작업을 거치지 않고 원래의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입구의 문가에는 커다란 보살의 보습이 잘 그려져 있고 석굴의 옆쪽 벽화에는 부처님의 일생, 특히 부처님이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는 순간까지를 잘 표현해 놓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아잔타 석굴은 인도 불교 예술의 발달성을 잘 보여주는 잘 보전된 벽화들은 물론 석굴 하나를 파내 만들어 내는 데 무려 30여 년이 걸렸을 정도로 힘든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걸작품이라는 점에서 불교 역사뿐만 아니라 일반 세계사에서도 중요하게 교육되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알랭 베르디에 저널리스트 yayavara@yahoo.com

 

[1491 / 2019년 6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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