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인식주체의 문제: 근견설과 식견설②
69. 인식주체의 문제: 근견설과 식견설②
  • 김재권 교수
  • 승인 2019.06.11 15:21
  • 호수 14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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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은 인과관계만 있을 뿐 어떤 주체도 없다

근견가인 설일체유부에서도
“식 함께 해야 인식” 견해수정
세친은 근견‧식견의 문제를
연생법이라는 관점서 설명

인식주체는 인식현상을 설명할 때 인식과정을 주도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이해되기 십상이다. 어떤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은 어느 작용주체(kartṛ)가 어떠한 인식행위(=인식작용, kriyā)를 통해서 대상을 파악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즉 인식행위는 행위자, 즉 작용주체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인식주체나 경험주체의 문제는 일상적인 인식이나 경험의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인정된다. 하지만 인식주체는 초기불교 이래 모든 현상을 조건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설명하는 연기설의 해체적인 관점에서 본질적으로는 부정된다. 

‘구사론’의 계품에서는 인식현상과 관련하여 감관(根, indriya)과 식(識, vijñāna)의 작용력과 그 차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선 ①근견가는 눈 등의 근은 대상에 저해받기(有對) 때문에 가려진 것에 대해서는 활동력이 제한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반면에 ②식견가는 안식 등의 식은 대상에 저촉하는 장애가 없는 것(無對)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감관(根)과 식(識)의 작용력과 그 차이를 근거로 근견가와 식견가는 다양한 관점에서 상대의 허점을 서로 공략하는 논의들을 보여준다. 

예컨대 ①근견가는 ‘만약 식이 보는 것이라면, 식은 저촉하는 장애가 없는 것(無對)이기 때문에, 벽 등에 저해 받는 일 없이 색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덮여 있는 것(=장애 있는 것)에 대해서 안식은 생기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한편 ②식견가는 ‘눈은 저해받기(有對) 때문에 가려진 것은 보지 못한다고 하는데, 구름·유리·수정·물 등에 장애(障碍)되는 것은 어떻게 보느냐? 그러므로 눈은 저해받기(有對) 때문에, 가려진 색에 대해서 견(見)의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빛이 방해받지 않을 때, 가려진 색일지라도 안식이 생긴다. 하지만 빛이 막혀 있을 때는 안식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가려진 색을 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인식주체의 문제와 관련하여, ①‘근이 보는 것(근견)’ 혹은 ②‘식이 보는 것(식견)’이라는 어느 한쪽에 치우친 입장은 다소 제한적이고 설명할 수 없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른바 근견가인 유부도 ‘안근은 안식과 함께 작용연관(同分, sabhāga)을 가졌을 때는 볼 수 있고, 다른 때는 보지 못한다’고 자신의 견해를 보완한다. 예컨대 안근이 바로 눈앞의 대상을 볼 때, 딴 생각을 하거나 식이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는 대상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근견설과 식견설의 입장을 절충하는 근식화합론의 설명방식이 비교적 합리적인 견해로 이해된다. 

사실 ‘구사론’에서 세친은 이러한 인식의 문제 등 여러 가지 현상을 연생법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예컨대 세친은 근견·식견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인식의 인과관계로 설명한다. 즉 “경전은 ‘눈과 색을 연하여 안식이 생긴다’고 말한다. 거기에는 보는 감관(根)도 없고 보여지는 대상(境)도 없다. 거기에는 어떠한 보는 행위도 어떠한 보는 주체도 없다. 그것은 다만 원인과 결과의 작용일 뿐이다. 다만 일상적인 언어용법에 따라 ‘눈이 보고, 식이 분별한다’고 임시로 가설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비유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세존은 ‘세간의 언어에 집착해서도 안 되고,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말씀 하셨다.”

요컨대 인식이나 경험의 차원에서는 내가 본다거나 인식하거나 경험하는 주체로서의 내가 대상을 보거나 인식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세친이 연생법의 관점에서 설명하듯이, 이는 단지 인식의 인과관계만을 의미할 뿐이다. 결국 세친의 연생법이나 연기적인 관점에서 인식주체 등의 문제는 무아사상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

능인대학원대학교교수 marineco43@hanmail.net

 

[1492호 / 2019년 6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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