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백담사 극락보전 전두환 친필 현판
101. 백담사 극락보전 전두환 친필 현판
  • 이병두
  • 승인 2019.06.11 15:27
  • 호수 14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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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왕조 시절 벗어나지 못한 불교

과거의 현판은 사찰 위상을 대변
현재 사찰들도 대통령 글씨 서각
독재자 현판 자랑 아닌 부끄러움
전두환이 쓴 백담사 ‘극락보전’, 문수사 ‘삼각산천연문수동굴’.
전두환이 쓴 백담사 ‘극락보전’, 문수사 ‘삼각산천연문수동굴’.

옛 스님들의 행적이 담긴 문서기록과 비문을 읽다보면 ‘사자사문(賜紫沙門)’이라는 표현이 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임금이) 자색 (법복)을 내려준 (명망 높은) 고승’을 가리키는 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조시대에는 출가수행자와 성직자도 왕에게 공식으로 인정받아야 자신이 속한 교단과 일반대중에게 그 위상을 드러낼 수 있었으므로, 이 ‘사자사문’이라는 표현만 갖고 “당시 불교가 너무 권력에 의존했다”고 비판할 것까지는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 시대에, 그것도 다종교사회에 들어와서까지도 대통령을 전제왕조시절 임금과 같은 존재로 여기며 그에게 인정받는 것이 교단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이것은 역사의 흐름을 크게 거스르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 몇 명이 쓴 글씨가 전국 주요 사찰 현판에 새겨졌던 일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승만은 ‘해인대도량’(합천 해인사 1953), ‘부석사’(영주 부석사 1956) 현판을 그리고 1960년 초에는 82세의 고령에 북한산 문수사에 올라 ‘문수사’ 현판을 쓴 일이 있다. 노태우는 ‘동화사통일대불’(대구 동화사 1993), 전두환은 ‘극락보전’(설악산 백담사 1988~1990 사이)과 ‘삼각산천연문수동굴’(북한산 문수사 2000) 현판을 써서 남겼다.

이승만이 문수사까지 찾아가 현판 글씨를 쓴 것은 “어머니가 고향 황해도에서 이곳에 와서 동굴 속에 모셔진 오백나한상에게 치성을 드린 끝에 아들을 낳았다”고 해서 고마운 마음을 담아낸 것이라고 하니 순수하게 봐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인사와 부석사 글씨는, 그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마음이 편치 않다. 1953년 5월 ‘사찰을 보호‧유지하자’는 내용의 대통령 담화문이 나왔고, 1954년 5월에는 “대처승은 사찰에서 물러나라”는 ‘제1차 불교정화유시’가 그해 11월과 12월에는 제2차‧제3차‧제4차 ‘정화유시’가 연이어 나왔다. 

1955년 6~8월에는 제5‧제6·제7차 ‘정화유시’를 내놓으며 불교 내부 문제에 적극 간섭하던 때였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비구승 측에서는 이승만의 대통령 출마 지지를 호소하러 경무대를 예방하고 조계사에서 기도회를 여는 등 권력의 힘을 빌려 내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던 시절이어서, 두 사찰의 이승만 친필 현판에서 ‘어둡고 부끄러운 불교 역사’를 보게 되는 것이다.

노태우와 동화사의 경우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떠나 인연이 있던 곳이고 퇴임 이후에 한 일이니 ‘그럴 수 있다’고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전두환의 친필을 새긴 백담사 극락보전 현판은 그의 죄가 명백히 드러난 뒤에 쓴 글씨를 새겨서 걸어야 할까. 굳이 그의 글씨를 현판으로 달아 역사의 교훈을 삼고자 한다면, 그 앞에 그 내용을 담은 설명문이라도 세워서 시민들이 “저런 식으로 살면 안 되겠다”며 마음을 갖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92호 / 2019년 6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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