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아수라
22. 아수라
  • 현진 스님
  • 승인 2019.06.11 16:02
  • 호수 149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래 선신이었지만 훗날 악신의 대명사로 변화

인도서 악신의 무리로 간주
초기 베다서 선신으로 등장
인드라 등장에 악신으로 묘사
불교에서도 악신·선신 혼재

아수라장이란 아수라왕과 제석천(인드라)이 싸운 장소를 말하는데, 싸움 등으로 시끄럽고 혼란한 곳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 되었으며, 그러한 상태를 아수라판이라 한다. 우리에겐 불교를 통해 알려진 아수라는 악신인지 선신인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경전과 설화 등에 악마로 등장하기도 하고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신중의 한 무리로 산정되어 있기도 하다. 개별적인 신이 아니라 한 무리의 신족인 아수라는 험악하게 생긴 세 얼굴에 근육질의 여섯 팔로 표현되는데, 그 가운데 두 팔은 합장을 한 모습이다.

인도의 신은 선신에 해당하는 데바(deva) 무리와 악신으로 간주되는 아수라(asura) 무리로 나뉜다. 비록 두 부류는 항상 대립과 다툼을 일삼지만 우빠니샤드에 언급되어 있듯이 인간과 더불어 셋 모두 창조주 쁘라자빠띠의 자식으로 표현된다. 데바는 빛나다(div)라는 말에 어원을 두어 ‘빛나는 자’란 의미를 지니며, 인간[manu]은 생각하다(man)라는 말에 어원을 두고 있기에 ‘생각하는 자’란 의미가 있는데, 아수라의 어원에 대해선 다음의 두 가지 의견이 있다.

아수라는 신을 의미하는 수라(sura)에 부정관사가 붙어 형성된 것이기에 ‘신이 아닌[非神]’이란 의미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숨쉬다(aś)라는 말을 어원으로 볼 경우엔 부정적인 의미는 사라지고 ‘숨 쉬게 하는 자’ 등이 되는데, 초기 베다에는 아수라가 강력한 힘을 가진 선신이었다가 인드라가 새롭게 등장하자 아수라가 그와 대립하며 악신의 대명사처럼 정착하게 되었다는 설화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인도와 동일한 인도유럽어족인 이란은 선신으로서 최고의 신이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마즈다(ahura­mazda)이며 악신 가운데 어둠의 정령들은 다에바(daeva)라고 불린다. 인도에서 데바와 아수라였던 것이 이란에선 아후라와 다에바로 선신과 악신의 명칭이 정확히 뒤바뀌어 있는데, 이 또한 아수라 어원의 두 번째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는 인도와 이란의 역사문화적인 대립이 낳은 결과물로 보기도 한다.

옛날 인도 동부 어느 지역에 ‘가야’라 불리는 아수라가 살았다. 그는 혹독한 고행으로 높은 수행력을 갖추어 인간들로부터 추앙을 받게 되었는데, 이에 두려움을 느낀 신들이 그를 어찌해보려 하였으나 그의 털끝 하나 손상시킬 수 없었다. 그러자 신들이 그들의 우두머리인 인드라에게 달려가 해결해줄 것을 애원하였는데, 인드라 또한 별 수 없이 가야에게 물러나줄 것을 종용할 수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수행이 어느 정도 무르익었음을 깨달은 가야는 스스로 들판에 누워 신들에게 마음대로 하게 하였으나, 신들이 히말라야 산정을 옮겨와 가야의 몸을 눌러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이에 가야는 거듭되는 인드라의 재촉을 받아들여 스스로 입멸하게 되는데, 대신 자신이 입멸하는 곳이 향후 금강의 땅으로 바뀔 것이니 그곳의 이름을 ‘가야’라 불러달라는 부탁만 남기게 된다. 그래서 ‘가야’라 불렸던 금강의 땅으로 후에 석가모니께서 오셔서 깨달음을 얻으니, 그곳이 바로 지금의 ‘부다가야’다.

아수라가 악신인지 선신인지 불분명한 것처럼, 불교에서의 위치 또한 제석천의 대립자와 팔부신중의 한 무리로 그 두 면이 모두 반영되어 있다. 그래선지 아수라도(阿修羅道)는 혹은 선도에 혹은 악도에 속하며, 어떨 때는 아예 빼버리고 육도(六道)윤회가 아닌 오도(五道)윤회를 말하기도 한다. 이런 아수라의 양면성에 앙굴리마라의 설화가 더해진 것이 일본불교에서 사무라이 문화와 만나 ‘살생을 저지르더라도 공덕을 닦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착하며 막부의 참모로 많은 승려가 참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앙굴리마라가 아라한의 지위에 오른 뒤 자신의 악업을 금생에 씻기 위해 군중의 돌에 맞아죽는 비참한 죽음으로 마무리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간과한 것 같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492호 / 2019년 6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