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수닷타 장자의 발원
11. 수닷타 장자의 발원
  • 고명석
  • 승인 2019.06.11 16:54
  • 호수 14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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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든 많든 나누고 비우며 보시공덕 쌓아 탐욕서 해방

‘고독한 사람 돕는 사람’ 수닷타
죽음 공포 일깨운 부처님에 환희
미련 없이 전 재산 거는 정성으로
기념비적인 도량 기원정사 보시
급고독장자로 불리는 수닷타 장자가 부처님께 공양한 기원정사.법보신문 자료사진
급고독장자로 불리는 수닷타 장자가 부처님께 공양한 기원정사. 법보신문 자료사진

부처님의 초기교단, 그리고 부파불교를 넘어 대승불교 시대에 이르기까지 교단 발전에 빠져서는 안 되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도시 발달과 더불어 상공업을 통해 부를 형성한 장자(長者) 집단이다. 오늘날의 기업체를 운영하는 리더이자 대표라 할 수 있겠다. 부처님 교단은 이러한 장자들의 귀의를 받아 이들의 보시를 통해 가람을 마련하고, 안거 기간 동안 한 곳에 머물러 수행하며 법을 설하였다. 가람은, 다시 말해 사원은 수행과 포교 거점으로서 법과 수행공동체가 살아 숨 쉬는 도량으로 자리 잡아 불교 발전의 큰 축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기원정사(祇園精舍)는 불교사에서 기념비적인 사원이다. 이 사원을 건립하여 부처님 교단에 보시한 주인공이 수닷타(Sudatta) 장자이다. 수닷타라는 이름은 잘 베푸는 사람이라는 뜻. 그의 별칭은 급고독(給孤獨, Anāthapiṇḍika)인데, 아프고 힘들어도 도움의 손길이 가 닿지 않는 고독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그에게 왜 이러한 이름과 별칭이 붙게 되었을까?

부처님이 큰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4년째 접어들 때쯤이었다. 당시 북인도는 마가다국과 코살라국 양 대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맨 처음 나무 밑이나 동굴 등에 머물며 일정한 거처 없이 유행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최초의 절, 죽림정사가 마가다국 빔비사라왕의 원력으로 마련되어 부처님 교단에 기증되었다. 그곳은 대나무 숲으로 울창하긴 했지만, 방사와 같은 별다른 시설은 없었으며 많은 대중들이 머물기에는 다소 불편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수닷타 장자는 프라세나지트 왕이 다스리는 코살라국 출신의 장자였다. 그가 사업차 친구이자 매제인 마가다국 한 장자의 집에 들르게 된다. 두 사람은 매우 절친했고 인품도 훌륭했기에 서로에게 보이는 신뢰나 우대는 각별했다. 그러나 그 날 장자의 친구는 성대한 공양 준비에 손수 각별한 신경을 쓰느라 수닷타에게 따스한 눈길마저 주지 않았다. 그 사연인즉슨 다음날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초청하여 공양을 올린다는 것이었다. 

수닷타 장자는 부처님이 오신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부처님, 깨달음을 이룬 분,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한 성자를 만나볼 수 있다니, 장자는 그런 부처님을 뵐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잠은 오지 않고 세 번이나 잠자리에서 깰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여명이 채 밝아오지 않은 어두운 새벽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때 부처님은 죽림정사를 나와 한림(寒林)에 머물고 있었다. 한림이란 시체를 매장하는 묘역이다. 죽은 사람들의 뼈나 해골, 썩은 사체가 뒹구는 공동묘지 구역이다. 장자는 그 주검들이 즐비한 길을 걷는다. 길은 아직 캄캄하다. 인적도 없다. 두려움으로 전율이 온 몸을 휘감는다. 털이며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그런 길을 걸으며 장자는 다시 돌아갈까 망설인다. 어디서 소리가 들려온다. 

“백 마리 코끼리와 말도, 백 개의 화려한 가마와 아름다운 여인도, 진귀한 보석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의 16분의 1만 못하다. 앞으로 나아가라 장자여, 앞으로 나아가라 장자여.”

그렇게 갈팡질팡하며 길을 걷는데 어둠 속에서 빛이 밝아오며 부처님이 모습을 드러낸다. 장자는 부처님께 말한다. “부처님이시여 밤새 편안히 잘 주무셨습니까?” 이 물음은 이렇게 시체가 나뒹구는 곳에서 두려움 없이 어떻게 편안하게 지냈느냐는 의미다. 그러자 부처님이 말씀하신다.

“번뇌의 불꽃이 소멸하면 편히 잔다. 애욕에 달라붙지 않고, 청량하며 의지할 바가 없으며, 일체의 집착을 끊고 마음의 번뇌를 조복 받으면, 적정하여 편히 잠을 이룬다. 마음이 적정하면 그러하다.”

장자는 신 새벽 묘역을 걸으며 두려움에 떨었다. 자신이 그 동안 쌓아놓은 부귀와 값진 보물은 엄습해오는 죽음의 불안과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두려운 곳에서 부처님은 편히 잠을 잔다. 번뇌와 모든 집착을 끊어 욕망이 잠자고, 마음이 고요하고 맑으니 두려움이 있을 리 없다. 장자는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이후 부처님은 장자에게 보시, 지계, 하늘나라에 이르는 생천(生天)의 가르침, 탐욕이 불러오는 재난과 소유를 떠남으로 인한 즐거움, 그리고 사성제를 설한다. 수닷타 장자는 그 자리에서 눈이 열려 성인의 경지인 수다원과에 이른다. 기뻤다. 환희로웠다.

수닷타 장자는 소중한 법을 들려준 부처님께서 자신이 사는 곳인 슈라바스티[사위성]에 들러 안거에 드시기를 간청한다. 이어 그는 부처님과 상가를 위해 큰 가람을 세울 것을 서원한다. 장자는 고향으로 돌아와 슈라바스티 인근,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 수행하기 좋은 곳을 물색한다. 그 적지인 아주 훌륭한 숲을 발견한다. 그것은 코살라국 기타태자가 소유하고 있던 제타바나(Jetavana)였다. 기타태자는 그 숲을 사려면 그곳을 모두 금화로 깔라고 요구한다. 장자는 서슴없이 그 조건을 수락한다. 자신의 전 재산으로 그 넓은 대지에 금화를 깔기 시작하여 거의 태반 이상을 깔아가자, 그 정성에 감동한 태자는 그만하면 됐다고 말한다. 자신의 이름을 가람의 명칭으로 사용할 것을 조건으로 숲을 주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해서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 jetavana-anāthapiṇḍadasya-ārāma), ‘기타 태자의 숲에 고독한 사람에게 베푸는 장자가 지은 가람’이 탄생한다. 이곳을 약해서 기원정사라고 한다. 부처님은 이곳에서 19회 안거를 지낼 정도로 많이 머물렀다. ‘아함경’ ‘금강경’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경전에서는 부처님이 사위성, 기수급고독원에 머물면서 법을 설하였음을 밝힐 정도다. 

수닷타 장자는 부처님으로부터 보시제일로 불리며 외롭고 힘든 사람들을 위하며 끝없는 베풂의 길을 간다. 

재가자에게 재산은 중요하다. 부처님도 재가자에게 돈을 많이 벌어 잘 살라고 했다. 다만 그 재물에 애착하지 말고 보시하고 나누라고 했다. 자신을 비워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애착과 욕망에서 해방될 때,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하며,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평가물어(平家物語)’ 서문에 등장하는 다음 구절은 재물과 삶의 무상성을 잘 일러준다. 

“기원정사의 종소리, 제행무상의 울림이어라./사라쌍수의 꽃 색조, 성자필쇠(盛者必衰)의 이치를 보여주네.//사치스러운 자 오래가지 못하고, 단지 봄밤의 꿈과 같아라./용맹한 자 결국 사라지고, 모두 바람 앞의 티끌과 같나니.” 

이렇게 법을 통찰하면 재산을 쌓아둘 리 없다. 적든 많든 그 재산을 나누며 보시 공덕을 쌓으면 마음이 즐겁고 편하며 두려움이 없다. 특히 고독한 자, 아프고 힘든 자, 배고프고 목마른 자를 향해 한없이 낮추고 비우며 베푼다. 그는 자신을 옭아매던 욕망에서 해방된다. 그런 베풂을 받은 고독한 사람들의 마음 또한 촉촉이 열린다. 그러할 때 급고독 장자의 마음이 진정 행복하고 기쁘지 않겠는가.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492호 / 2019년 6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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